젊은 부티지지 돌풍 이유 있다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49
  • 승인 2020.02.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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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피터 부티지지 후보(사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젊고 신선한 그의 중도적인 공약이 먹히고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부티지지의 숙제이다.
ⓒAP Photo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깜짝 후보의 돌풍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38세의 중앙정치 무경험자인 피터 부티지지. 그는 2월3일 민주당 경선 첫 시발지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2월11일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도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에 이어 간발의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내내 탄탄대로를 달리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물론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조차 무명의 정치 신인에게 참패했다. 14개 주에서 예비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3월3일 슈퍼 화요일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부티지지의 예상치 못한 활약을 미국 시민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부티지지는 몰타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수재형’ 정치인이다. 대학 졸업 후 한때 컨설팅 회사에서 3년 정도 일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해군 정보장교로 7개월 복무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 경력이라곤 고향인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시에서 2012년부터 올해 1월까지 시장을 연임한 게 전부이다. 그는 시장 재직 중인 2015년 동성애자라고 밝혔고, 같은 해 선거에서 무려 80% 이상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되었다.

그런 그가 2019년 1월 대선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주요 언론은 거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실제 그는 지난해 내내 주요 언론의 관심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언론이 바이든 전 부통령, 대권 재수생인 샌더스 의원, 워런 의원 등 이른바 중앙정치 무대를 오랫동안 누벼온 베테랑 정치인들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이오와에서 샌더스 의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자 상황은 180° 돌변했다.

무명의 정치 신인이 중앙정치 무대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1년 전 출마 선언 당시 고작 4명에 불과하던 그의 선거요원은 500명 이상으로 대폭 보강됐다. 현재 민주당 후보들은 샌더스-워런을 축으로 하는 급진파와 바이든-부티지지-클로버샤를 축으로 하는 중도 성향 후보로 갈린다. 아이오와, 뉴햄프셔를 거치면서 일약 전국적 지명도를 확보한 부티지지 전 시장은 슈퍼 화요일까지 지금의 활약상을 유지하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 세력을 대거 흡수할 수 있다.

부티지지 전 시장이 막강한 대선 주자들을 제치고 이처럼 돌풍을 일으킨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유권자들 사이에 중앙정치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정치인으로 각인돼 있다. 또한 70대가 주류인 경쟁 후보들에 비해 30대 후반이라는 ‘젊음’도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1위를 달리는 샌더스 후보는 78세, 바이든 전 부통령은 77세, 워런 후보가 70세다. 부티지지 전 시장이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다면 역대 최연소인 43세에 당선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적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엔 ‘젊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당 후보에 지명되면 대선에 승리한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이제 막 중앙정치 무대에 입문한 그도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될 경우 이런 범주에 들어갈 것이 확실하다.

부티지지 전 시장의 공약이 샌더스·워런 의원 등이 주창하는 급진적 공약과 결을 달리한다는 점도 온건·중도 성향의 대다수 친민주 유권자들에겐 매력 포인트다. 그가 내세운 핵심 공약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고 불법 이민자에게도 시민권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등이다. 또 5세까지 완전 무상보육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전 국민적 관심사인 의료보험의 경우, 샌더스 의원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내건 데 비해 부티지지 전 시장은 국가재정난을 이유로 좀 더 현실적인 선택적 의료보험 제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샌더스 의원의 ‘급진 사회주의적’ 이미지와 거리를 두려는 시도이다. 그는 또 현재 9명으로 구성된 연방 대법원 판사 정원을 15명까지 늘리는 공약도 제시했다. 공화당·민주당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대법원 판결이 상반되게 나오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다.

슈퍼 화요일까지 완주 후 차기 노릴 수도

부티지지 전 시장은 정치·경제·외교·군사 분야에서의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에는 대니 에이건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토니 레이크, 이란 문제 전문가 발리 나스르 전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장,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를 지낸 필립 고든 등이 있다.

오는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으려면 대의원 1990명이 필요하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경선을 거친 현재 대의원 득표수를 보면 부티지지 전 시장이 22명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샌더스 의원(21명)이 바짝 추격 중이며, 워런 의원(8명), 클로버샤 의원(7명), 바이든 전 부통령(6명) 순서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백인 유권자가 90%에 달하는 아이오와, 뉴햄프셔에 비해 2월22일, 2월29일 각각 치르는 네바다주 코커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프라이머리에는 흑인·히스패닉계 등 부티지지의 최대 취약층으로 꼽히는 소수계 유권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슈퍼 화요일까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중도 탈락할 수도 있다.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치고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소수계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도 후보로 뽑힌 전례는 없다.

정치 전문 여론조사기관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적지 않은 네바다주의 경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1%로 단연 선두를 달렸다. 샌더스 의원(17.5%)이 그 뒤를 이은 반면 부티지지 전 시장은 7%에 불과했다. 흑인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27%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이 31%로 단연 앞섰고, 샌더스 의원이 17%, 부티지지 전 시장은 5%에 불과하다. 이런 추이는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1월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 부티지지 전 시장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28%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샌더스 의원도 20%에 달했다. 다만, 젊은 흑인층은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 샌더스 의원이나 부티지지 전 시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 받은 초라한 성적표를 무시한 채 네바다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대역전을 노린다. 만일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 지역에서도 1위로 올라서지 못하면 대선 출마를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 점에서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은 부티지지 전 시장으로서는 슈퍼 화요일의 도약대를 마련하느냐 여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그는 “아이오와가 나의 능력을 보여준 첫 기회였다면 뉴햄프셔는 장기전으로 갈 수 있는 모멘텀을 제공한 셈이다”라고 선언했다. 부티지지 전 시장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끝나자마자 실무 요원을 대폭 보강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설령 그가 네바다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선전하지 못해도 일단 슈퍼 화요일까지 완주한 뒤 차기 대선을 바라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인구 10만 소도시의 전직 시장이 전 부통령을 물리치고 현역 연방 상원의원과 호각세를 이루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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