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람이 먼저다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48
  • 승인 2020.02.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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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구글맵을 열었다. 서울과 비슷한 면적의 섬나라였다. 너무 작아서 지도 위에 적힌 국가명에 가려질 정도였다. 자세히 보니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의사는 질병관리본부(질본)에 전화를 걸었다. 바레인에서 입국한 의심 환자 때문이었다. 의사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같은 생활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나중에 이 환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입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질본은 매뉴얼에 나온 사우디아라비아 입국자가 아니라며 검사를 거부했다. 2015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 1번’ 환자를 검진한 의사 이야기다. 삼성서울병원 소속인 이 의사는 매뉴얼에 갇히지 않고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신종 감염병이 퍼지면 흔히 매뉴얼 부재를 질타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매뉴얼은 엉성하게나마 만들어져 있었다. 엉성한 매뉴얼에 갇혀 한국 사회가 공황 상태가 되다시피 했다.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타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 확진자는 1월27일 동네병원과 종합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신종코로나 증상과 유사하다고 보고 질본에 문의했다. 질본은 매뉴얼에 나온 중국 방문 이력이 없다며 거부했다. 물론 질본의 판단도 이해가 간다. 진단키트 부족으로 검사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종 감염병에 맞서는 이들은 최전선 현장에 있는 의료진이다.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다. 감염병 확산은 종종 매뉴얼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각 분야에서 평가를 했다. 보건복지부도 473쪽짜리 〈2015 메르스 백서〉를 펴냈다. 백서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질본 직원에 대한 정규직화 권고였다. 질본 역량 강화를 위해 정규직 확보와 역학조사관 정규직화를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본 전체 직원 430여 명의 60%가 비정규직이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는 문제인데 현재까지 큰 변화는 없다. 질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신종 감염병을 막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은 채 비용만 따지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한다.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질본에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드리워져 있다.

질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내부자와 불완전한 일자리를 가진 외부자 사이에 높은 장벽이 있다. ‘이중적으로 구조화’된 노동시장 문제를 이번 호에 함께 다뤘다. 신종코로나 대처와 이 문제가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신종 감염병과 싸우는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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