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이들의 ‘길밥 보고서’
  • 변진경·나경희 기자
  • 호수 647
  • 승인 2020.02.1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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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아이들의 식사는 ‘길밥’이다. 삼각김밥, 닭꼬치, 카페인 음료 따위가 주식이다. 중계동, 목동 등 학원가가 밀집한 곳은 어디라도 비슷하다.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은 아이들 밥에 무관심하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밥 먹었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나중에 밥 한번 살게”가 한국인의 흔한 인사말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밥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없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잘 먹여야 하는 대상으로 누구나 마땅히 인정하는 어린아이들의 밥상을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생긴다. 요즘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밥 중시 문화는 빈껍데기 인사말로만 남았다.

배고픈 결식아동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더부룩한 ‘흙밥’ 아동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기초수급 가정 아이는 급식카드를, 서울 대치동 키즈는 엄마 카드를 손에 쥐고 똑같이 고만고만한 선택지 사이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밥을 먹을 공간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턱없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아이들 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다. 어른들의 무관심 탓에 밥에 관한 한 아이들의 삶은 완벽하게 계급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너무 못 먹고 산다. 못 먹으니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큰다.

아동 흙밥이 사라져야 청년 흙밥도 노인 흙밥도 사라진다. 내 밥상의 소중함을 알고 자란 아이가 남의 밥상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식사란 ‘필요한 열량을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나와 타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여유’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잘 먹이자는, 아무도 딴죽 걸지 않을 세상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동 흙밥 보고서’는 그 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8일 대치동 학원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초등학생이 저녁을 먹고 있다.

민수(14)는 오후 3시30분에 마지막 끼니를 먹는다. 밤까지 배고프지 않으려고 충분히 먹어두려 하지만 매일 저녁 허기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지연이(16)는 허구한 날 밥을 굶는다. 그나마 잘 챙겨 먹는 날은 프랜차이즈 도시락 가게 창가 자리에 앉아 3900원짜리 도시락으로 ‘혼밥’을 한다. 소윤이(17)는 밤 12시 즈음 자주 집 근처 편의점에 들른다. 터덜터덜 기운 없이 걸어 들어가 집어 드는 메뉴는 늘 삼각김밥과 고농도 카페인 함량의 커피 음료 따위다.

이 아이들은 ‘흙수저’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민수는 한 해 학비가 1500만원을 넘는 전국 단위 자사고 입시를 준비 중이다. 지연이는 ‘입결(대학 입시 결과)’ 좋기로 유명한 특목고에 다니는 ‘강남 키드’다. 소윤이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촌에 산다. 소윤이네 집을 비롯한 그 동네 아파트값은 대개 30억원을 넘는다. 세 아이는 모두 부모에게서 아낌없는 투자를 받는 ‘금수저’에 가깝다.

그런데 왜 이렇게 먹고 살까? 바로 그 투자 때문이다. 민수, 지연, 소윤이가 학교 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대치동 학원가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에 맞춰 배치되지 않는다. 시간을 배치하는 것은 학원 스케줄이다. 이들에게 밥이란 그냥 배고프면 채워 넣는 알약 같은 것이다. 꽉 짜인 학원과 숙제와 자습 시간 가운데 틈새가 발생하면 급히 해치워버려야 하는, 걸리적거리는 삶의 방해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길에서 밥을 먹는다. 한시라도 허비하지 않도록, 앉아서 여유롭게 꼭꼭 씹는 대신 이동하며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가난한 아이들이 ‘흙밥’을 먹는다면 부유한 대치동 아이들은 ‘길밥’을 먹는다. 그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거의 겹친다.

■ 불닭볶음면, 버블티, 햄버거, 닭강정… 대치동 아이들의 ‘밤 10시 식사’

지난해 말, 취재진이 여러 차례 찾아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저녁식사 시간에 한산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저녁밥 시간인 오후 5~8시 분식집, 햄버거 가게, 편의점 등은 서울 시내 다른 비슷한 식당들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원이 문을 닫는, 정확히 말하면 ‘닫아야 하는’ 밤 10시가 되자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2008년부터 서울시 조례로 밤 10시 이후 학원의 심야 교습이 금지됐다). 아이들이 학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붐비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후다닥 달려온 남학생 셋이 간이 테이블 앞에서 모바일 게임을 하며 불닭볶음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은 영하 2℃. 한 여학생은 밖은 춥고 간이 테이블 자리도 없으니 계산대 근처를 서성이며 바삭통다리치킨을 뜯었다. 까르보불닭왕교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다른 여학생은 음식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시사IN 조남진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닭꼬치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버거킹과 맥도날드는 대치동에서 한밤의 급식소였다. 키오스크 앞에 잔뜩 줄을 서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주문했다. 떡볶이집, 튀김집, 1인 피자집, 짬뽕집, 버블티 매장 등에도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달고 맵고 짠 음식들을 먹었다. 대개 매장 앞에 서서 먹거나 테이크아웃을 해갔고, 따뜻한 실내에 앉아 먹는 아이들은 두꺼운 롱패딩과 가방을 벗지 않았다. 밤 10시30분이면 대치동 식당들도 대부분 문 닫을 준비를 했지만 아이들의 식사는 끝나지 않았다. 종업원이 의자를 테이블 위에 엎어놓고 밀대로 바닥을 닦을 때까지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식사는 길 위에서 이어졌다. 학원가 사거리 포장마차 앞에 아이들이 잔뜩 서서 입을 우물댔다. 한 초등학생은 한 손으로 자기 몸집의 반만 한 롤링백(학생용 캐리어)을 끌고 다른 한 손엔 닭강정 종이컵을 든 채 바삐 걸었다. 고등학교 교복 치마 아래에 수면바지를 입은 여학생 둘은 얼음이 든 버블티를 마시며 24시간 스터디라운지로 들어갔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아이들은 초코우유, 버블티, 삼각김밥, 떡꼬치 등을 마시거나 먹으며 걸었다. 승강장에 서서 삼각김밥 하나를 해치운 한 여학생은 구파발행 전철을 타서 자리에 앉더니 점퍼 주머니 안에서 햄버거 하나를 또 꺼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 “밥 먹느니 쪽잠 자고 숙제해요”

한창 입맛 좋을 나이니 삼시 세끼를 잘 먹고 나서도 밤이면 배고플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길밥을 먹고 나머지는 집에서 잘 챙겨 먹을 수도 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하니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 정도는 잠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식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치동 아이들의 식사에 관해 이런 합리화는 불가능하다. 저녁은커녕 아침과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월화수목금금금’ 학원 스케줄로 꽉 채워 식사 시간이 없으며, 고등학교 3학년은 물론 중학교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식사로 삶을 영위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전형적인 대치동 학생’으로 자신을 소개한 고등학생 지연이는 “시간이 없으면 웬만하면 밥을 거른다.” 아침은 집에서 제대로 먹고 나오지만 학교 점심 급식은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 급식실에 가서 줄을 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지연이처럼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고 한다. ‘야자(야간자율학습)’가 없는 매주 수요일 하교 후 대치동 학원가에 가면 오후 5시10분쯤 된다. 첫 학원 수업은 오후 6시에 시작하는데 저녁식사도 거의 거른다. 그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게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온종일 대치동에서 보내지만 밥을 제대로 먹은 적은 별로 없다. 지연이는 “살도 빼고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8일 밤 대치동 학원가에서 초등학생들이 롤링백을 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배고프지 않을까? 지연이는 “그럴 때 친구들과 나가서 버블티를 사먹는다”라고 말했다. ‘쩐주(타피오카 알갱이)’가 들어 있어 배도 든든해지고 공부하느라 “당 떨어진 데에도 제격”이란다. 그래도 자기는 잘 챙겨 먹는 편이란다. “위염 있어서 뭘 먹으면 속이 뒤집어져”라며 아무것도 안 먹는 친구도 있다. 위염은 대치동 아이들에게 아주 흔한 병이다. 친구 여럿은 위염 때문에 엎드려서 못 잔다.

그런데도 지연이와 친구들은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끊지 못한다. “애들이 텀블러 가져온 거 열어보면 다 아메리카노예요.” 편의점에서 커피 음료를 고르는 기준은 카페인 함량이다. 높을수록 선호한다. “스누피 커피라고 엄청 센 거 있거든요. 차츰차츰 높여서 이제 애들 다 그거 마시는데 다들 걱정하죠. 고3 때는 얼마나 더 센 걸 마셔야 하냐고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저는 그래도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고등학교 들어가서 시작했는데, 독서실 가보면 중학교 2학년생도 잠을 이겨야 한다며 마시고 있어서 마음이 안타까워요.”

대치동 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는 박 아무개씨(23)는 대치동의 식사 시간을 ‘배틀’로 표현했다. “특히 주말 오전 수업 시간 전에는 아침 못 먹고 오는 애들로 편의점 배틀이죠. 인파를 뚫고 겨우 전자레인지에 소시지 돌려서 오는 길에 먹더라고요.” 학원마다 쉬는 시간이 거의 겹치니 점심시간에도 밥 배틀이 이어진다. “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까 어디를 가든 줄 서서 먹어야 해요. 인기 많은 버거킹 같은 데는 최소 30~40분 기다려야 하니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죠.” 겨우 자리를 잡는다 해도, 숫기 없는 사춘기 아이들은 식당 사장이 마음대로 합석시키거나 물 뜨러 간 사이 테이블을 정리해버리면 우물쭈물 따지지도 못한다. 그런 꼴을 겪느니 앞자리도 맡을 겸 일찍 학원 교실에 들어가 빵을 뜯어 먹으며 숙제를 한다.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 학원이 많아 학원 건물 계단 벽에 기대서서 먹기도 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박씨도 수험생 시절 대치동에서 끼니를 자주 굶으며 학원을 다녔다. “시간이 모자라서 저녁 먹을 생각은 아예 못했어요. 그나마 제일 빠른 게 스타벅스에서 사이렌 오더(앱 주문)로 우유 들어간 좀 든든한 음료를 시켜 먹는 정도.” 정신없이 흘러가는 대치동 생활에서도 어떤 장면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진짜 슬펐던 거 하나가, 주말에 KFC에 갔는데 어떤 쪼끄만, 많이 봐줘야 초등학교 1~2학년같이 보이는 여자애가 고등수학 문제집 풀면서 혼자 햄버거를 먹고 있더라고요. 저도 여기서 일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괴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 결식아동 흙밥과 대치동 길밥의 슬픈 평준화

대치동만의 특수한 풍경일까? 제2의 대치동을 꿈꾸는 학원가라면 어디라도 비슷하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에 보내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처음 저녁 7시쯤 중계동에 들렀다가 한산함에 당황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했는데 밤 10시 넘으니 다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는 아이들이 한 손에 삼각김밥을 들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며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간다. 자전거로 맥도널드 ‘드라이버 스루(차에 탄 채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방식)’를 이용하는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 학원가의 한 학원에는 ‘아이들의 밥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컵라면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이른바 ‘학군지’ 부유한 아이들의 길밥은 실제 통계에서도 뒷받침된다. 만 6~17세 아동에게 평일 방과 후 같이 저녁식사 하는 사람을 물었을 때 ‘부모님’이라고 답한 비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못지않게 중위소득 150% 이상 그룹에서도 낮았다. 중위소득 150% 이상 그룹에서 유독 많은 답변은 ‘친구’와 ‘학원 선생님’이었다(44쪽 〈표〉 참조). 잘살수록 학원가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다.

이렇게 슬픈 ‘밥상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편의점 참치김밥 1+1로 끼니를 때우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결식아동 급식카드냐, ‘엄카(엄마 카드)’냐의 차이일 뿐 아이들은 고만고만한 메뉴 선택지 안에서 ‘돌봄’ 없는 열량 덩어리를 씹어 삼킨다. 학군 좋기로 유명한 서울 시내 한 아파트촌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이전에 서울 노량진 편의점에서 일했다. “잘사는 동네니까 아이들이 사먹는 것도 다를 줄 알았죠. 그런데 차이가 없어요. 노량진 청년처럼 삼각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요. 카페인 함량 높은 음료도 많이 마시고요.” 하교 후 김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들고 대치동행 버스를 타고 떠난 아이들은 밤 11시~12시쯤 다시 김씨의 편의점으로 돌아온다. 또 똑같은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서 집이나 독서실로 향한다.

■ 식사 금지, 대변 금지, 수면 금지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지난해 말 아들의 겨울방학 학원 스케줄을 짜기 위해 중계동 학원에 전화를 돌리다가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떻게 시간표를 짜도 아이가 저녁 먹을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수업 기본단위가 4~5시간이었다. 한번 간 김에 두 수업을 연달아 등록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러면 10시간 내내 밥시간이 없다. 학원에 “밥 먹는 시간 없나요?” 물어봤더니 “그런 거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씨는 오후 3시30분에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4시 수업을 보낸다. 수업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러고 산다. 학부모 정 아무개씨는 대치동 한 학원에 방문했다가 복도에서 이색적인 풍경을 봤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프랜차이즈 도시락 수십 개가 이름표가 달린 채 선반 위에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 학원은 초등생 대상 영재 수학 학원이다.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5시간짜리 수업이 주 3회 진행된다. 그래도 20~30분짜리 밥시간을 주는 ‘인간적인’ 학원이다. 어떤 학원은 10분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화장실도 손 들어서 허락받고 가야 한다. 화장실에 ‘대변 금지’ 문구가 붙어 있고 화장실에 두 번 이상 다녀오는 아이는 공부할 준비가 안 되었다며 집에 돌려보내는 학원도 있다.

쉬는 시간이 있다 해도 편의점 방문을 포함한 외출을 일절 금지한 학원도 많다. 일명 ‘자물쇠 반’이다. 방학에는 ‘텐 투 텐(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자물쇠 반’도 운영된다. 어떤 초등 영재 수학 학원은 오후 3시에 시작해 ‘미션(주어진 수학 문제를 다 푸는 것)’을 완수할 때까지 아이가 밖에 나가지 못한다. ‘미정(시간 내 미션 미완수)’을 받은 아이들은 밤 10시 넘은 시각 울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모두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학원들이다. ‘○○고시’ 따위로 불리는 이런 학원들의 입학 테스트를 통과하면 주변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진다.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은 잘 자지도 못한다. 밤 10시 넘어 학원을 마치고 기름진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빨라야 자정이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개인 과외를 다니는 민 아무개씨는 “초등학생 3~4학년이 학원 가고 숙제하느라 새벽 1시 넘어 자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과학고, 영재고 트랙을 밟는 애들은 눈에 띄게 키가 작고 늘 피곤해 보인다. 잠을 푹 재우지 않으니 그런 것 같다. 아직 엄마 말을 잘 듣는 나이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오히려 큰 아이들보다 더 못 자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못 자면 또 잘 못 먹는다. 악순환이다. 성적 경쟁이 심한 학교에 다니는 지연이는 “대부분 친구들이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늦게 자서 다음 날 아침에 밥 대신 10분이라도 더 자는 쪽을 선택한다”라고 말했다.

■ 아무도 아이들 밥에 관심이 없다

학원가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재우는 돌봄이 아니다. 성적 올려주는 학원 정보력과 ‘일타 강의’ 줄서기에 성공하는 민첩성이 더 중요한 부모의 능력이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장 아무개씨는 “학부모끼리 만나면 아이 학원, 입시에 관련된 얘기는 많이 하지만 아이 밥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아이 키가 안 크면 오히려 어떤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정보를 나누지만 어떻게 잘 먹여야 하는지에 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 학원가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도 “엄마들 단체 카톡방에 영양제, 홍삼 뭐가 좋다더라 정보는 엄청나게 공유되는데, 밥은 어차피 학원 시간표 때문에 애들 먹는 게 뻔하니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대치동 같은 학원가에서 아이들의 식사 장소는 대개 길거리이다.

부모를 포함해 아이를 둘러싼 어른 누구도 아이들 밥에 관심이 없다. 특목고생 지연이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학습 관련한 사항은 아주 작은 문제까지 민원을 내지만 학교 급식이 맛없어서 아이들이 잘 안 먹는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민원 제기를 안 한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밥을 먹는지 마는지, 왜 안 먹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어떤 부모들은 오히려 학원가 인스턴트 음식을 아이를 학원으로 밀어 넣는 유인책으로 쓰기도 한다. 경기도 과천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부모들이 학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을 학원으로 넣는 가장 빠른 수단이 인스턴트 음식이다. 학원 가는 날은 편의점에서 네가 좋아하는 콜라, 햄버거, 컵라면 먹어도 된다며 꼬드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입맛을 들인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밥을 그런 식으로 때운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밥을 신경 쓰는 부모도 학원에 밥을 맞추지, 밥에 학원을 맞추지 않는다. 학원 건물 주차장에서 아이를 ‘접선’해 쉬는 시간 10분 동안 차에서 보온 도시락을 먹이거나, 학원 쉬는 시간 5분 전에 미리 식당에 앉아 메뉴를 주문해놓거나, 비교적 편안히 혼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리스트를 뽑아 아이에게 살뜰히 ‘대치동 혼밥 지도’를 그려주는 식이다.

“학원이 아이들 밥시간을 파괴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도 제시간에 밥을 먹이기 위해 학원을 포기하진 못했다. “아무리 학교 수업 시간에 충실해도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고 얼마나 선행(학습)을 하고 갔느냐에 따라 내신이 달라지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아프다. “밥시간이라는 게 어찌 보면 하루 3번 강제로라도 쉬게 만드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휴식 시간을 박탈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악덕 기업이라도 노동자에게 밥 먹는 시간은 최소 1시간을 주는데 우리 아이들은 파업도 못하고 당하고 사는 것 같아요.”

이씨는 학원 심야 교습 금지법처럼,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학원가 밥시간에 관한 어떤 상징적인 차원의 규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도 (학원 수업) 밤 10시 규제가 있지만 다 셔터 내리고 하고 카페 가서 하고 그래요. 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한단 말이에요. 이게 나쁜 거라는 메시지는 주잖아요. 학원가 아이들 밥시간에 관해서도 그런 규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다 비웃고 어기더라도 아이들 굶기고 공부시키면 안 된다는 메시지만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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