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탈학교 청소년 은지(18·가명)는 열다섯 살부터 혼자 식사를 해결해왔다.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햄버거를 먹고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면 고기를 먹고, ‘주어진 대로’ 먹고 살았다. 돈이 생기면 편의점에 가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치킨, 피자, 떡볶이 같은 밀가루 음식을 가장 많이 먹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서 지금 은지는 심한 장염과 위염에 시달리고 있다. 음식을 먹는 족족 토하는 탓에 웬만하면 속을 비워두려고 애쓴다.

극단적인 사례일까? 은지처럼 학교와 가정 어느 곳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은지처럼 먹는 아이는 그리 적지 않다. 텔레비전과 유튜브에 ‘먹방’이 쏟아지고 SNS에서 예쁘고 먹음직한 음식 사진이 넘쳐나지만 아이들 앞에 놓은 밥의 선택지는 날로 초라해져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이 아침을 굶고 점점 더 많이 패스트푸드에 노출돼간다. 가족과의 식사는 드물어지고 길에서 혼자 대충 채우는 번갯불 식사는 흔해졌다.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은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흙밥’과 ‘흙잠’은 또 서로를 강화한다. 아이들 몸과 마음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이 총체적 악화는 계층을 뛰어넘는  현상이다.

■ 100명 중 36명이 아침 굶는다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임 아무개씨는 매일 점심시간 아이들의 식탐을 목격한다. “애들이 엄청 허기져 있어요. ‘빨리요 빨리’ ‘많이요 많이’ 그러면서 무조건 밥 위에 얹어달래요. 물어보면 급식 먹으러 학교에 왔대요. 아침 안 먹었냐 물어보면 거의가 이게(점심 식사가) 첫 끼라고 해요.”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아이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버려지는 끼니는 아침 식사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실시하는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항목 중에 ‘주 5일 이상 아침 식사 결식률’이라는 지표가 있다. 최근 7일 동안 아침 식사를 5일 이상 먹지 않은 청소년의 비율이다. 이 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100명 중 36명 가까이가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다(〈그림 1〉 참조).

최근 4~5년 사이 청소년의 아침 결식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25~28% 사이에서 오가던 결식률은 2017년 31.5%로 훌쩍 뛰었다. 이후 매년 2% 이상 올라 지난해 35.7%를 기록했다. 남학생(34.6%)보다 여학생(36.9%)이 높고 고등학교 2학년생(38.5%)과 중학교 3학년생(36.8%)이 다른 학년보다 높다. 세종시(31.6%)에서 전북(39.1%)까지 지역별로도 조금씩 편차가 있다. 큰 차이는 아니다. 몇 학년이든 어디에 살든 모두 비슷하게 열 중 셋 이상의 아이가 아침밥을 굶는다.

■ 우유·과일·채소는 점점 더 적게,  햄버거·콜라·카페인은 점점 더 많이

아이들은 아침 식사뿐 아니라 우유도, 과일도, 채소도 점점 덜 먹는다. 최근 7일 동안 하루 한 번 이상 과일(과일주스 제외)을 먹은 청소년 비율은 2008년 34.6%에서 지난해 20.5%로 내려앉았다. 1일 1회 이상 우유 섭취율도 비슷하다. 2008년 39.6%에서 지난해 22.8%로 추락했다. 하루 세 번 이상 채소(김치 제외)를 먹은 비율도 2008년 19.8%에서 지난해 10.9%로 떨어졌다(〈그림 2〉).

아침 식사, 과일, 우유 대신 아이들 배를 점점 더 많이 채우는 음식은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고카페인 음료 등이다. 지난해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주 3회 이상 패스트푸드 섭취률’은 25.5%로 나타났다. 최근 7일 동안 3회 이상 피자, 햄버거, 치킨 같은 음식을 먹은 사람의 비율이다. 이 수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2009년 12.1%였는데 10년 사이 두 배 넘게 증가했다(〈그림 3〉).

ⓒ연합뉴스중위소득 150% 이상의 잘사는 집 아이들이 가장 잠에 굶주려 있다.

탄산음료, 단맛음료(게토레이 등 이온음료, 쥬시쿨 등 과즙음료, 레쓰비 등 커피음료), 고카페인 음료(핫식스, 레드불, 박카스 등)도 마찬가지다. 탄산음료는 2009년 24%에서 지난해 37%, 단맛음료는 2014년 38.2%에서 지난해 50.4%, 고카페인 음료는 2014년 3.3%에서 지난해 12.2%로 주 3회 이상 섭취율이 급증했다. ‘거의 매일 고카페인 에너지음료를 마신다’는 아동청소년의 비율도 2016년 2.7%, 2018년 3.3%로 나타났다. 일반고·특목고·자율고 학생은 절반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고카페인 음료를 마신다. 중학생은 44.2%, 초등학생도 26%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고카페인 음료를 들이켠다.

아동복지 관점에서 아이들의 이런 식사는 ‘결핍’에 속한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측정한 아동의 ‘박탈지수’ 가운데에는 ‘인스턴트식품(라면, 햄버거 등) 등을 주 3회 이상 먹는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0~8세 아동의 49.8%, 9~17세 아동의 68.1%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기초생활수급 가구와 일반 가구 간의 박탈지수가 크게 차이 나는 다른 결핍 항목과 달리, 이 ‘인스턴트 식사’ 항목은 아이가 속한 가정의 경제적 배경과 큰 관련이 없었다(‘인스턴트식품 주 3회 이상 먹는다’ 0~8세 일반 가구 50.5%, 수급 가구 43.3%, 9~17세 일반 가구 68.4%, 수급 가구 63%).

■ 아이들의 빼앗긴 ‘저녁이 있는 삶’

아이들은 ‘무엇을’만큼이나 중요한, ‘누구와’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점점 더 혼자, 학원가나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 가족이 식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보편적인 일상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없다.

200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평일 방과후 누구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나?’라는 질문에 ‘혼자서’라는 답을 한 아이(6~ 17세)는 0.5%였다. 10년 뒤인 2018년 그 수치는 4.5%로 올라갔다. 대신 ‘부모님과’는 90.9%에서 82.3%로 내려갔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비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저소득 가구 아이와 중위소득 150% 이상 고소득 가구 아이 모두 중간층보다 낮다(〈그림 4〉). 고소득 가구 아이는 ‘친구’(5.5%)와 ‘학원 선생님’(3.8%)과 함께 평일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는 답변 비율이 유독 높다. 토요일·일요일·방학 중 낮 동안 함께 있는 사람을 물었을 때에도 결과는 동일했다. 주말과 방학에도 아이들의 ‘가족 식사’가 점점 드물어진다.

어른들 삶에 저녁이 없는데 아이들 삶에 저녁이 있을 리 없다. 초등학생·중학생 남매를 키우는 맞벌이 학부모 양 아무개씨는 말했다. “부부가 모두 칼퇴근이 힘들고 야근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 저녁을 챙겨 먹이기가 힘들다. 아직 스스로 차려 먹을 나이도 안 되고 매번 배달 음식을 먹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아예 학원가에서 사먹으라고 일부러 저녁 시간대 학원을 등록해줬다. 학원가에는 식당도 많고 친구들하고도 같이 먹을 수 있으니 차라리 낫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가 자꾸 편의점 음식만 사먹어서 걱정이긴 하다.”

양씨 자녀처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열 중 일곱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편의점(슈퍼마켓·매점 포함) 음식으로 식사를 대체한다. 열 중 넷은 주 1~2회, 열 중 둘은 주 3~4회 편의점에서 밥을 먹는다. 주 5~ 6회도 5.4%, 편의점 식사가 하루 한 번 이상인 경우도 4.4%나 된다. 컵라면 등 면류(69.3%), 김밥·삼각김밥·주먹밥(55.5%), 음료수(42.1%)가 아이들의 식사를 대체한다. 편의점 식사의 까닭을 물었더니 아이들은 ‘편리해서(26.5%)’ ‘시간이 없어서(20.1%)’ 등으로 답했다(〈그림 5〉).

■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시간에 쫓기며 산다. 줄 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식사를 거르고, 초등 고학년부터 잠을 줄여가며 특목고 대비에 나서는 대치동 학원가 아이들(〈시사IN〉 제647호 ‘대치동 아이들이 뭘 먹는지 아시나요?’ 기사 참조)처럼 많은 아이들이 ‘시간 빈곤’ 상태로 살고 있다.

9~17세 아이들에게 평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물었을 때 열 중 일곱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쉬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운동하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고 숙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그림 6〉). 아이들의 이런 시간 빈곤 문제를 지적한 2018 아동종합실태조사 보고서는 “아동의 놀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놀 권리는커녕 잘 자고 잘 먹을 권리조차 못 누리고 사는 이들이 바로 현시대 우리 아이들이다.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내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 식사, 그리고 잠이다.

학부모들이 주로 자녀 학원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민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아이가 평소 수면 시간이 5~6시간 정도인데 학교에서 너무 심하게 졸아요. 문제가 될 정도로요. 수면장애 클리닉을 가야 할 것 같은데 대학병원을 먼저 가보는 게 좋을지 의원이나 한의원을 가야 할지 고민됩니다. 혹시 아시는 곳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8일 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향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조언 댓글이 달렸다. “저희 아들도 공부를 하든 안 하든 늦게 자요. 그러니 학교에서 코 고는 날도 있고 엄청 조나 봐요. 의지 아닐까요?” “저희 딸도 밤잠을 많이 자진 않는데, 밤이고 낮이고 쉬는 시간이나 아침조회 시간, 점심시간 이용해서 아주 잘 자는 모양이더라고요. (…) 짬짬이 쉬는 시간에 자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저희 아이는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데 여름 이후로 사향 들어간 공진단 먹여서인지 아침이나 낮에 졸음이 확실히 줄었대요.”

2015년 미국 수면재단에서 발표한 연령대별 권장 수면시간은 6~13세 9~11시간, 14~17세 8~10시간이다. 한국 아이들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 2018년 기준 한국 9~17세 아동의 평균 수면 시간은 8.29시간이다. 9~11세는 9.23시간으로 조금 더 길지만 12~17세는 7.82시간에 불과하다.

‘잠이 부족한가’라는 질문에 아이들 열 중 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12~17세 아동은 절반이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중위소득 150% 이상의 잘사는 집 아이들이 가장 잠에 굶주려 있다. 잠이 부족한 이유는 ‘학원·과외’(45.7%)가 압도적이었다. ‘야간 자율학습’(18.7%), ‘가정학습’(13%)을 합치면 77.4%가 공부하느라 잠을 못 잔다. ‘게임’(12.9%)과 ‘채팅·문자메시지’(5.8%)가 그 뒤를 잇는다(〈그림 7〉).

수민이(가명·16)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밤 12시 이전에 잠든 적이 없다. 밤 10시에 학원을 마치고 다녀와 야식을 먹고 밀린 숙제를 하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새벽 1시다. 하루 종일 공부만 했으니 그냥 잠들기 아쉬워 잠자리에 누워서는 한참 동안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다음 날 졸린 눈을 겨우 비비고 일어나 학교에 지각하지 않고 가려면 아침 식사는 건너뛸 수밖에 없다. 실제 아침 결식의 이유를 물었을 때 63.6%의 아이가 ‘(늦게 일어나)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렇게 시간 빈곤은 흙밥과 흙잠을 낳고, 흙잠과 흙밥은 서로를 상승시키며 아이들의 삶을 악화시킨다.

■ 위협받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

아이들이 제대로 못 자고 못 먹는데 제대로 클 수는 있을까? 최근 아이들의 성장세는 실제로 둔화되고 있다. 2018년 교육부의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초·중·고등학생들의 평균 키 추이 그래프는 거의 수평선을 그리고 있다. 11년 전인 2007년 수치와도 별로 차이가 없다. 꾸준히 늘어나는 몸무게와 대비된다. 키는 제자리인데 몸무게만 증가하니 비만군(비만·과체중)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18년 초·중·고교생 비만군율은 25%를 기록했다. 넷 중 하나가 신장 대비 정상 체중 범위를 넘었다.(〈그림 8〉)

비만군율은 도시 지역에 비해 농어촌(읍·면) 지역 아이들이 더 심각하다(〈그림 9〉). 시골 아이는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더 잘 먹고 더 건강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환상에 가깝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농어촌 아동의 식사·건강의 취약성에 주목해 2018년 하반기부터 농어촌 지역 아동 영양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농어촌 지역 아이들에게 영양제, 제철과일, 견과류, 유제품 등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영양 교육과 체육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신미란 세이브더칠드런 아동보호사업팀 사원은 “농어촌 지역의 경우 가정의 소득이 낮아 빈곤 문제를 겪는 아동이 많고, 부모님이 일을 하느라 집을 비워서 아동이 방임되는 시간이 길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돌봄 기관과 체육 시설도 부족해 식습관이 불규칙하고 신체활동도 부족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비만은 여러 위험 중 하나다. 흙밥은 다양한 방면으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위협한다. 고카페인 음료, 단 음료, 탄산음료, 라면 등의 섭취는 천식·알레르기성 비염·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과 관련이 있다(구혜자, 〈한국 청소년의 식생활·스트레스가 알레르기질환 진단 경험에 미치는 영향〉, 2017). 청소년기 가당음료 섭취는 스트레스 자각과 우울감 인지를 높이고 행복감과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오지원 외, 〈우리나라 청소년의 가당음료 섭취가 수면 시간, 주관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미치는 영향〉, 2019).

〈청소년의 아침 결식에 따른 정신건강의 관련성〉(김중수 외, 2018) 논문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동안 슬픔과 절망감을 느끼거나 자살 생각, 자살 계획, 자살 시도를 한 아이 비율은 매일 아침 식사를 한 군에서 유의하게 낮았다. 아침 식사 빈도가 늘어날수록 행복감은 증가하고 스트레스는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거꾸로 아침 식사 빈도가 줄어들수록 행복감이 감소하고 스트레스가 증가했다. 아이들을 지켜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밥’이라는 뜻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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