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화’ 되어가는 한국 보수의 현실
  • 천관율 기자
  • 호수 645
  • 승인 2020.01.29 11: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수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시사IN〉은 20대 국회의 50시간 무제한 토론 내용을 의미망 지도로 그려 분석했다. 그 결과 보수는 자기 언어를 잃고, 빈자리를 저항의 언어로 채우고 있었다.
ⓒ연합뉴스2019년 12월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 저지를 내걸고 무제한 토론을 신청했다. 보통 필리버스터라고 불린다. 무제한 토론은 2019년 12월23일 오후 10시에 시작되어, 임시회 회기가 끝나는 12월25일 자정까지 이어졌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도 선거법 개정 반대 토론에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선거법 개정을 지지하는 정당 의원들은 찬성 토론을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는 원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절차다. 하지만 무제한 토론 제도에서는 찬성 측도 토론에 나설 수 있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무대를 적극 활용했다. 이 선택으로 필리버스터는 여야 무제한 찬반 토론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로써 20대 국회는 헌정사에 남을 기록 하나를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냈다. 국회 속기록에 남는 50시간 연속 찬반 토론. 좀 기묘한 이유로 시작되기는 하였으되, 민주정의 이상 중 하나인 끝장토론이 실제 현실에 등장했다. 4년 전인 2016년에,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테러방지법 저지 무제한 토론을 192시간 이어간 기록이 있다. 하지만 찬반 토론은 아니었다.

무제한 토론에 나서는 의원들은 내용을 허투루 준비하지 않는다. 의사진행 방해 목적이 강한 미국에서는 요리책을 읽는 필리버스터도 있었지만, 한국의 무제한 토론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4년 내내 발언 시간 제한에 시달리는 의원들은 자기 목소리를 온전히 속기록에 남길 기회에 목말라 있다. 2016년 무제한 토론 때 몇몇 의원이 스타로 떠오른 전례도 의원들의 기대감을 높인다. 무제한 토론은 요약된 기사나 몇 개의 제목만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말이 쏟아진 시간이 50시간이고, 쏟아낸 말의 양은 국회 속기록 기준으로 98만4374글자다. 200자 원고지 1000장으로 책 한 권을 만든다고 하면, 책 다섯 권 분량이다.

〈시사IN〉은 50시간 무제한 토론 내용을 의미망 지도로 그려 분석했다. 분석 대상 자료는 국회 속기록을 사용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파이썬을 썼다. 누구나 재현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를 활용했고, 분석에 이용한 소스코드는 다음 링크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ANdSj_WX_rjx8ICaMPFBrvL8BNqMqH2h/view?usp=sharing) 자유한국당 7명의 토론을 보수로, 민주당 6명의 토론을 진보로 구분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의 반대 토론은 보수에,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찬성 토론은 진보에 포함했다. 선거법 무제한 토론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무제한 토론이 다시 26시간 동안 진행됐다. 선거법 무제한 토론이 관련 내용을 포괄하고 있어서 후속 토론은 분석에 포함하지 않았다.

진보의 의미망 지도는 선거제도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보수의 의미망 지도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전반을 두루 다루어서 더 흥미롭다. 자유한국당은 토론자로 주호영·권성동·전희경·박대출·정유섭·유민봉·김태흠 의원을 내세웠다. 당내에서 합리적 보수주의자, 전투적 자유주의자, 냉정한 정책통 등으로 평가받는 의원들이 두루 배치되었다. 이들은 심혈을 기울여 문재인 정부 비판을 쏟아냈다. 내용은 직설적이고 본심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현 정세를 바라보는 생각의 구조가 날것으로 드러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보수가 무슨 전략으로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도 이 지도에서 드러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020년 한국에서 ‘보수의 정신’이 과연 무엇인지 확인해볼 최상급 자료를 얻었다.

〈그림 1〉은 보수 의원 8명의 발언을 종합한 의미망 지도다. 색깔별로 보면 담론 덩어리의 숫자는 크게 다섯 개다. 집중해 다룬 주제가 다섯 개라는 의미다. 왼쪽 위 짙은 녹색 대륙은 ‘문희상’ ‘국회’ ‘의장’에 대한 비판이다. 당시는 자유한국당이 회기 결정 안건 무제한 토론, 199개 법안 무제한 토론 등 기상천외한 의사진행 방해 전략을 던지던 때다. 자유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를 봉쇄하고 선거법 상정을 강행한 데 대한 분노를 무제한 토론에서 쏟아냈다.

텅 비어 있는 선거법 반대 담론

나머지 네 대륙이 반(反)문재인 담론 구조를 보여준다. 선거법 비판은 왼쪽 아래 보라색 대륙에서 집중해 다룬다. 오른쪽 아래 연두색 대륙은 경제정책 비판이다. 상단의 하늘색 대륙은 권력기관 개혁 문제를 다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문제도 여기서 거론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대륙보다 작아 보이는 주황색 대륙이 오른쪽 위에 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주황색 대륙은 크기는 작아도 보수의 반(反)문재인 담론을 이해할 결정적 열쇠를 쥔 곳이다.

선거법 대륙부터 보자. 따로 떼서 그려봤다. 아래 〈그림 2〉다. 얼핏 봐서는 자유한국당 지도인지 민주당 지도인지 헷갈린다. ‘민주당’은 ‘선거법’을 바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이것은 반대 토론이라기보다는 그저 현황 묘사에 가깝다. 반대의 이유는 담론 지도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헌’이라거나, ‘지역구’에서 ‘후보’를 평가해 ‘투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정도다. 당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막겠다고는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논리 구조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선거법 지도에서 보수가 내세울 수 있는 키워드는 ‘지역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역구에서 후보를 직접 평가하고 뽑는 장점이 퇴색되므로, 이 키워드는 자유한국당에 중요하다. 키워드 ‘지역구’는 3122회 등장한다. 등장 빈도로 18위다. ‘연결축 지수’에서는 그보다 낮은 38위다. 담론 지도의 핵심 교차로에 등장해서 담론의 연결축 구실을 하는 중요한 단어일수록 연결축 지수가 높다.

키워드 ‘지역구’와 자주 붙어 나오는 단어를 살펴봤다. ‘정당’(423회) ‘비례대표제’(286회) ‘연동’(205회) ‘투표’(188회) ‘선거’(172회) ‘후보’(152회) ‘의석’(124회) 순서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자유한국당의 선거법 반대 담론은 핵심 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로 사실상 텅 비어 있다. 반대 그 자체는 존재하지만, 반대의 논리는 거의 상대방의 단어로만 구성된다. 보수의 정신을 탐험하는 시도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진보 담론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같은 방식으로 진보 선거법 담론 지도를 그려봤다. 아래 〈그림 3〉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선거’ ‘제도’ ‘개혁’이다. 왜? ‘정치’에서 ‘유권자’가 ‘대표’되는 방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정치’ ‘개혁’이다. 진보가 선거법을 바꾸려는 논리의 핵심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진보 선거법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대표’다. 국회가 유권자를 대표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이 선거법의 본질이다. 키워드 ‘대표’는 등장 횟수가 8512회로 전체 3위, 연결축 지수는 전체 2위다. 진보 담론 전체에서도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더 중요한 키워드는 ‘국회’ 하나다). 키워드 ‘대표’와 붙어 나오는 단어는 ‘제도’(443회) ‘선거’(423회) ‘정당’(392회) ‘국민’(353회) ‘연동’(313회) ‘국회’(241회) ‘정치’(216회) 순서다. 지도로 본 논리의 핵심 구조와 정확히 대응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어렴풋한 인상과는 크게 다르다. 흘러가는 말로 듣거나 언론의 기사로만 보면, 양쪽에서 가장 잘 들리고 직관적인 문장들만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러면 양쪽의 주장은 비슷한 밀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98만 자를 데이터로 분석하니, 담론의 밀도 차이가 극적으로 드러났다. 보수 담론의 밀도가 현저히 낮다.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는 보수가 썩 선호하는 전장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보수가 본진을 자처하는 경제정책 분야 지도를 따로 그려봤다. 위 〈그림 4〉다. 굵은 축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은 ‘실패’했다. 선거법 지도에서 드러난 현상과 같다. 반대 그 자체만 존재하고, 보수의 언어로 논리 구조를 정립시키는 데 실패한다.

‘성장’은 전통적으로 보수의 핵심 키워드였다. 보수 담론 전체에서 2451회 등장한다. 등장 빈도로 22위, 연결축 지수로 42위다. 키워드 ‘성장’과 붙어 나오는 단어의 목록은 매우 놀랍다. ‘주도’(376회) ‘소득’(362회) ‘정책’(271회) ‘경제’(158회) ‘정부’(92회) ‘문재인’(78회) ‘실패’(72회) 순서다. 보수의 성장 담론이 실종되고, 문재인 정부의 성장 담론을 때리는 데만 집중한다. 자유한국당이 반대 토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기도 어렵다. 정치가의 언어는 반대에서 머무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안’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50시간 무제한 토론 데이터가 보여주는 결과는 꽤 선명하다. 보수는 자기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보수에게 ‘성장’은 불패의 무기였다. 이제 보수는 ‘성장’조차 민주당의 단어를 빌려 말한다. 경제정책 지도에 등장하는 ‘기업’이나 ‘시장’ 키워드도 텅 비어 있기로는 ‘성장’과 마찬가지다. 경제정책 지도에서 보수가 의제를 던지는 키워드는 사실상 ‘원전’ 하나다. 키워드 ‘원전’은 등장 횟수 1372회로 49위이지만, 연결축 지수로는 19위여서, 보수의 담론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원전’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정부’가 그걸 막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의제를 제시하므로 보수 자신의 언어다. 이런 보수의 언어들이 좀체 담론의 중심 구조로 들어오지를 못한다.

주황색 대륙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대륙 자체로는 작지만 보수 자신의 언어가 여기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인 키워드가 ‘방송’이다. ‘방송’을 중심으로 확대한 지도가 오른쪽 〈그림 5〉다.

키워드 ‘방송’은 등장 횟수 2448회로 23위이지만, 연결축 지수로는 11위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법안과 관계된 키워드들을 빼고 보면, ‘방송’이 연결축 지수 1위다. 심지어 집중 비난의 대상이 된 국회 ‘의장’보다도 높다. 그러니까 첨예한 현안성 키워드들 말고는, 보수 정당 의원들의 마음속에 가장 강력하게 자리 잡은 키워드가 ‘방송’이다.

‘방송’은 어떤 단어들과 함께 붙어 나올까? ‘공영’(144회) ‘장악’(135회) ‘정권’(119회) ‘보도’(101회) ‘국민’(94회) ‘언론’(90회) ‘집회’(61회) 순서다. 이 대목에서는 민주당의 언어를 빌려온 흔적이 전혀 없다. 전적으로 보수의 언어다. 공영방송이 정권에 장악되어 국민들은 장악된 보도를 보고 있다. 그 장악의 나팔수는 방송사 노조다. 그래서 광화문 보수 집회는 언론의 정당한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뉴스’가 엉망이다. 키워드 ‘뉴스’는 등장 횟수 1184회로 60위이지만, 연결축 지수로는 15위까지 뛰어오른다. 분석 대상 키워드 중에서 상승 폭만 보면 가장 눈에 띈다. 패스트트랙 관련 키워드를 빼면 ‘뉴스’가 연결축 지수 2위다.

‘문재인 독재’에 대한 공포

오늘날 보수 정치인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빼앗은 주제는 정권과 노조의 방송 장악이다.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는 것 같은데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도 ‘방송 장악’이 설명해준다. 보통의 유권자들을 당황시키면서까지 자유한국당이 우파 유튜버들에게 구애하는 이유도 ‘방송이 장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우파 유튜버들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줘서 국회를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만들려 했다.

〈그림 5〉는 ‘방송 장악’ 지도이지만, 방송과 무관한 키워드도 여럿 등장한다. ‘정치’가 ‘학교’ ‘교육’에 침투하고, ‘역사’에도 개입한다. 즉, 문재인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듯 학교와 교과서도 장악하려 한다. ‘장악’은, 자체로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등장 횟수 1267회로 57위다), 매우 흥미로운 키워드다. ‘사법부’와 붙어 나오는 단어 1위가 ‘장악’이다, ‘방송’과 붙어 나오는 단어 2위가 ‘장악’이다. ‘언론’과 붙어 나오는 단어 6위가 ‘장악’이다. 행정부는 원래 대통령의 영역이고,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와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도 이미 장악되었다. 이제 민주정의 기둥 중에 남은 건 입법부인 국회 하나인데, 선거법을 바꾸겠다는 건 국회도 마저 장악하겠다는 시도다.

그러니까 이건 독재에 대한 공포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모든 권력을 접수하려 한다는 공포다. 키워드 ‘독재’는 930회 등장해서 90위에 그친다. 연결축 지수도 0점이다. 의미망 분석에서 중요하게 잡히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공격하는 건 부담이 크다. 자칫 정치적 스캔들로 번질 각오까지 해야 한다. 더욱이 무제한 토론 발언은 국회 속기록에 남아 영구 보관된다. 여러 부담을 고려하면 930회 등장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오히려 예상 이상으로 많이 등장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키워드 ‘독재’와 많이 붙어 나오는 단어는 ‘국가’(53회) ‘선거’(35회) ‘제도’(35회) ‘연동’(34회)이다. 연동형 선거제도는 독재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논리다. 연동형 선거제가 언론과 사법부에 이어 국회까지 장악하려는 음모라는 주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키워드 ‘독재’와 23회 붙어 나오는 키워드는 ‘문재인’이다.

ⓒ시사IN 조남진2019년 10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범보수 단체가 개최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제 보수의 선거법 지도인 〈그림 2〉가 아주 다르게 읽힌다. 이 지도에는 연동형 선거법을 반대하는 보수의 논리 구조가 허탈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연동형 선거제는 문재인 정부가 독재로 가려는 음모이므로 반대하지만, ‘독재’는 대놓고 속기록에 남기기 부담스러운 단어라 등장 빈도로는 억눌린다. 이 핵심 논리 구조가 숨어버리자, 〈그림 2〉는 마치 민주당 담론 지도를 보는 듯 민주당의 단어만 남게 된다.

성전의 깃발 들었지만 ‘빈손’

2020년 총선을 앞둔 보수의 정신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보수의 정신과 크게 달라졌다. 그 시절 보수는 여전히 주류의 언어를 구사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일종의 사고이자 일탈이었고, 한국 사회의 주류인 보수가 곧 그 자리를 되찾을 터였다. 오늘날 보수의 언어는 권력 장악과 독재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다. 이것은 주류의 언어와 정반대다.

독재로 향해 가는 문재인 정부가 있고, 이걸 막아야 할 책무가 자유한국당에 있다. 이 명징한 선악 구도에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문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성전(聖戰)의 문법이다. 하지만 정치의 공간에서는 정치의 문법이 이긴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2019년 4월 이후, 꾸준히 정치의 문법을 구사한 민주당은 결국 패스트트랙에 태운 모든 국정과제 법안을 따냈다. 2004년 단독 과반을 확보한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얻지 못했던 성취다(26~29쪽 기사 참조). 자유한국당은 성전의 깃발을 공고히 한 것 말고는 빈손이다.

성전의 문법을 대표하는 보수 정치인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모두 통과된 다음 날인 1월14일, 황교안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문재인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우리 모두 독재와 맞서 싸워 이깁시다. 독재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이고 대한민국입니다. 독재는 죽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립시다.” 오늘날 보수는 점차 자기 언어를 잃어가면서, 그 빈자리를 독재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채운다. 한국 보수는 ‘황교안화’하고 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