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사냥이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막을 최선입니까?
  • 김동인 기자
  • 호수 635
  • 승인 2019.11.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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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 포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획 포상금도 사육 돼지 값과 비슷해졌다. ‘방역’ 핵심이 ‘사냥’이 된 현장을 스케치했다.
ⓒ연합뉴스10월16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야생 멧돼지를 잡는 포획틀이 군부대에 전달되고 있다.

371번 지방도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향해 달리다 보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초입에 접어든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려면 이곳에서 방역을 거쳐야 한다. 약품을 적신 밀짚 위로 자동차 타이어가 몇 바퀴 구른 뒤에야 북쪽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으로 향할 수 있었다. 민통선과 맞닿은 이곳에서 몇몇 마을 주민들은 개울가 인근에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11월6일 방문한 마을 목장에는 소만 가득할 뿐 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9월17일, 이곳에 위치한 한 돼지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감염된 돼지 폐사체가 발견되었다. 첫 발병 농가인 파주시 농가에 이어 두 번째였다. 초기 방역 실패를 의미했다. 정부는 이 마을 돼지 1만여 마리를 전부 살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0월9일까지 전국 돼지 농가에서 총 14차례(사육 돼지 기준)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증상이 발견됐다. 경기도 김포시와 파주시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할 정도로 강경책을 쓴 뒤에야 일반 양돈 농가의 피해는 잦아들었다. 10월9일 마지막 신고 이후 한 달째 농가 사육 돼지 감염은 잠잠한 상황이다.

양돈 농가의 피해 사례가 잦아들었다고 해서 아프리카돼지열병 공포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아직 방역은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방역 전선이 다른 곳으로 옮아갔다. 야생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긴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은 이른바 ‘멧돼지 사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민간 엽사 단체와 군까지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 수색·포획 과정에서 멧돼지 폐사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되었고,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폐사체만 11월7일 현재 총 22건에 달한다. 바이러스가 여전히 숲 사이사이에서 옮겨 다니고 있다는 의미다.

민간 농가에 바이러스를 다시 옮길 수도 있기에 예산과 행정력은 멧돼지 포획에 집중한다. 11월6일 찾은 연천군 백학면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법정 특수법인인 야생생물관리협회 소속 회원들이다. 이 단체는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사단법인인데 사실상 민간 엽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으로 수렵 면허를 발급받은 이들은 법적으로 야생생물 포획 허가를 받은, 총기 발포가 가능한 민간인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민관군 합동으로 ‘멧돼지 포획단’이 편성되었다. 이 포획단의 활동에 지방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11월5일 국무회의에서 환경부는 예비비 255억원, 지방비 108억원을 동원해 총 363억원을 야생 멧돼지 포획과 방역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각종 방역 시설과 포획 시설(울타리·포획틀 등)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멧돼지 포상금 60억원까지 포함되어 있다. 포획 신고 포상금은 마리당 20만원씩으로 책정했고, 만약 포획한 멧돼지가 국립환경과학원 정밀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정될 경우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가축전염병이 전국적인 사냥 포상금 판을 키운 셈이다. 중앙정부가 예비비를 쓰면서까지 특정 야생종 사냥을 장려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포상금 인상은 그동안 민간 엽사들이 꾸준히 제기해왔다. 멧돼지 포획 포상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책정한 금액으로, 원래 지역마다 달랐다. 기존 포상금은 10만원 수준이었다. 산을 들쑤시며 멧돼지를 찾아내고, 폐사체를 처리하는 데 만만찮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포상금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인상된 포상금은 농장에서 사육한 돼지 가격과 엇비슷해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 돼지 가격이 마리당 20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범위가 경기 김포시·파주시·연천군 등지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완충지역으로 꼽히던 고양시·양주시·동두천시·포천군, 강원 철원군 등지에서도 총포 사격이 허가됐다. 최근에는 민간 엽사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각 지자체는 부랴부랴 포획단 규모를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 등록되어 있던 민간 엽사 30명 외에 5명을 추가 편제해 총 35명이 포획단에서 활동 중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경기도 연천군 임진강가에 설치된 야생 멧돼지 이동 방지 철조망.

수렵 과정에서 바이러스 옮을 수도

전국적으로 야생 멧돼지 수는 얼마나 될까. 환경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2017 야생동물 생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국 멧돼지 서식밀도는 100㏊당 5.6마리로 이전 조사인 2012년 조사 당시 3.8마리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야생 멧돼지는 호랑이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없는 생태계에서 개체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수렵 및 유해 조수 구제는 멧돼지의 서식밀도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멧돼지의 서식밀도 증가는 자연보전의 결과로 이뤄진 산림녹화 등 서식지 상황 개선에 따른 영향”이다. 즉 숲을 비롯한 자연환경이 잘 보전될수록 자연스럽게 야생 멧돼지도 늘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11월 번식기를 앞두고 개체수가 더 증가할 것을 우려해 야생 멧돼지 포획과 방역을 위한 특별 예산을 급히 편성했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

일각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무조건 야생 멧돼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방역 당국의 책임 방기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에 아프리카돼지열병 피해가 극심했던 경기도는 전국에서도 멧돼지 서식밀도가 가장 낮은 100㏊당 2.8마리에 불과했다. 수렵 활동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바이러스를 다른 지역에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수렵 과정에서 사람 몸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은 방역 범위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일부로 제한하고 있다. 멧돼지 사냥 풍경은 이미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0월31일까지 전국에서 포획된 멧돼지 수는 총 6만597마리에 달한다. 이 중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본격적 포획이 이뤄진 10월15일부터 10월31일까지 포획된 멧돼지가 9135마리다. 막상 발병 및 관리지역인 경기도에서 포획된 개체 수는 991마리에 불과하다. ‘사냥’은 다른 지역에서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기간(총 17일) 강원도에서 2304마리, 경상북도에서 2429마리가 포획되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경기도 이남으로 남하하지 않았음에도 일부 지자체는 선제적으로 포상금을 올렸다. 전남 신안군의 경우 민간인 포획의 유인 동기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일부 섬 지역 포상금을 40만원까지 올리기도 했다. 방역 목적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바이러스를 막는 것이지만, 점점 방역 핵심이 ‘사냥’으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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