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체제 가해자들 여전히 떵떵거린다”
  • 베를린·남문희 기자
  • 호수 628
  • 승인 2019.10.0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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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남문희

옛 동독의 악명 높은 정보기관 슈타지 수장의 집무실치고는 의외로 소박했다. 목재 책상 위에 구식 전화기 세 대와 인터폰, 회의용 테이블이 전부였다. 뒷문으로 연결된 별실 역시 회의용 테이블에 의자 다섯 개만 덜렁 놓였다.

안내인 토마스 루코 씨(60)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이 ‘하우스 1’ 건물에만 요원 7500명이 근무했고 동독 전역에 요원 9만1000명이 있었다. ‘인구밀도 기준 세계 최대 정보기관’ 수장의 집무실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슈타지 본부 내 이 사무실은 통일 후에도 한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12년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루코 씨가 동독 전역의 15개 구역 책임자들(제너럴)의 사진을 걸어놓은 곳을 소개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방에 걸린 사진 중 머리 좋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다. 독재자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 우직한 충성파를 좋아한다.”

이 집무실을 쓴 에리히 밀케야말로 대표적인 충성파였다. 그는 1957년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에 의해 슈타지 총수로 발탁된 이래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때까지 32년간 슈타지 최고 책임자 자리를 유지했다. 오랜 기간 악명 높은 비밀 정보기관을 이끌었으니 통일 뒤 강한 처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슈타지 재직 시절 베를린 장벽 탈주자에 대한 사살 명령, 각종 인권침해, 공금횡령,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1931년 경찰 두 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혐의가 옛 소련 측 문서에서 발견돼 5년간 수감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게 전부다. 고령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1995년 석방됐다.

피해자들은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지만, 국가(동독)에 의한 불의를 개인에게 책임지울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건강 악화에 따른 변론 무능력으로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통일 후 수천 건의 고소 고발이 있었지만 처벌은 150건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슈타지 박물관 안내인 토마스 루코 씨 역시 동독 체제의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사상적으로도 투철했다. 동독 체제에서 장래가 촉망됐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당국의 선전과 현실의 괴리가 자꾸 눈에 띄었다. 그러던 중 서베를린에 다녀온 것이 화근이 되었다. 조지 오웰의 책 <1984>를 지니고 있다가 검문에 걸리면서 적대 세력을 접촉한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혀 2년간 슈타지 감옥에 갇혔다. “개인 사물함도 이름도 없이 개인성이 말살됐다. 번호로만 불린 채 반정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동독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독재 체제에 대해 그는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밑바닥을 전전하는데 가해자들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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