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유출’이라 쓰고 ‘공익 제보’라 읽는가
  • 김동인 기자
  • 호수 612
  • 승인 2019.06.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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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의원에게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누설한 외교부 참사관은 ‘공익 제보도 아니고 의도적 유출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의 ‘국민의 알 권리 프레임’이 흔들린다.
원래부터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지난 2월11일 나경원 원내대표와 강효상 의원 등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7명은 미국 워싱턴 D.C.를 찾았다. 2월27~28일로 예정되어 있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 현안을 점검하겠다며 떠난 출장이었다. 2월14일까지 진행된 일정에서 방미단 강효상 의원은 주미 한국 대사관의 의회 담당이었던 외교부 ㄱ 참사관(54)을 만난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대학교 동문이지만 대학 졸업 후 30년간 특별히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강 의원 방미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외교 현안에 관해 전화 통화(보이스톡 등)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히 가까워진 이 ‘관계’는 3개월 뒤, 국가 기밀 유출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5월9일 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귀로(歸路)에 잠깐 들르는 방식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일정이 바빠 즉시 떠나야 한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 정보가 청와대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은 기밀 사항이라는 점이다. 3급 국가 기밀이었다. 3급 국가 기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강 의원은 이 정보의 출처가 ‘미국 외교 소식통’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특별 감찰에 나섰다.

ⓒ연합뉴스5월29일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장의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 강효상 의원(왼쪽부터).
정보 출처는 ㄱ 참사관이었다. 보안업무 규정(대통령령)에 따르면 정부 부처가 다루는 정보는 중요도와 가치에 따라 3단계로 분류된다. 이를 근거로 외교부는 시행 세칙을 마련해 정보를 분류하는데, 이 ‘외교부 비밀 세부분류 지침’ 자체가 비밀이다. 외교안보 관련 내부 기밀은 국가 정보 가운데에서도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예외’로 분류된다. 비밀이 보장된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민감한 외교 정보를 공유하는 만큼, 비밀문서에 대한 보관과 열람 기준 역시 무척 까다롭다.

의회 담당인 ㄱ 참사관은 이 기밀문서의 열람 권한이 없었다. ㄱ 참사관이 이 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20일 전에 소속 기관장의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유출된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복잡한 절차 없이 강효상 의원에게 흘러 들어갔다. 외교부의 보안 문제가 함께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ㄱ 참사관의 정보 제공을 일종의 공익 제보로 규정지었다. 5월23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 제보 성격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이때 동원된 것이 ‘알 권리’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요청했으나 결과적으로 거절당한 맥락에 대해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알 권리와 공익 제보 모두 정보를 유출한 당사자가 부인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연합뉴스TV 제공5월27일 국가 기밀을 유출한 ㄱ 참사관(가운데)이 보안심사위에 출석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익 제보자 프레임은 5월28일 ㄱ 참사관의 변호인이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ㄱ 참사관은 변호인을 통해 당시 정보 유출이 강 의원의 질문에서 비롯됐으며, 본인은 이런 정보가 정쟁에 이용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입장문에 담긴 당시 정황은 이렇다. 5월8일(미국 시각) 강 의원이 보이스톡(카카오톡의 음성 통화 서비스로 통화 녹음은 되지 않는다)으로 ㄱ 참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에 동의했을 리 없다’며, ㄱ 참사관에게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ㄱ 참사관은 한·미 정상 간 통화 녹취를 확인한 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식량 지원 계획에 동의했다고 강 의원에게 알렸다. ㄱ 참사관은 대북 식량 지원 계획에 관한 내용은 이미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이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유한국당, 여론 지지 얻기 쉽지 않아

이 통화에서 강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5월 방한 가능성에 대해 추가로 물었고, ㄱ 참사관은 답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한·미 정상 통화 녹취록에 있던 일부 표현을 그대로 말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ㄱ 참사관 측은 “국회의원에게 외교부 정책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외교관의 업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설명은 국회의원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강효상 의원에게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공익적 내부 고발이라는 강 의원의 주장과 “의도가 없이 그랬다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월25일 발언을 동시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외교부는 ㄱ 참사관의 강 의원에 대한 정보 유출이 이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5월2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한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현재 확인된 5월 통화 내용 유출 외에도 추가로 기밀이 유출됐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는 내용, 4월의 한·미 정상회담 형식에 관한 한·미 간 실무협의 내용 등이었다. 외교부는 새로 논란이 된 두 건을 포함해 총 세 건에 대해 강효상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ㄱ 참사관은 외교부의 추가 의혹을 부인한다. ㄱ 참사관의 변호인은 5월29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귀국 후) 외교부 조사에서도 ㄱ 참사관은 5월8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그 외에는 강효상 의원에게 기밀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5월30일 진행된 외교부 징계위원회에서도 ㄱ 참사관이 인정한 내용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었다. 이날 징계위원회에서 ㄱ 참사관은 최고 수위 중징계인 ‘파면’ 처분을 받았다. 공무원 신분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퇴직급여도 절반으로 삭감되며 추후 5년 동안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ㄱ 참사관에게 녹취록을 건네준 다른 직원은 감봉 처분을 받았으며, ㄱ 참사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사(고위공무원)는 중앙 징계위에 회부되었다.

5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정상 간 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었다. 강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정부·여당의 탄압에 앞으로도 당당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라고 말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도 “강 의원 고발은 야당에 재갈 물리기와 정치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여론의 지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과 2013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논란을 만들고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외교 기밀을 활용했다. 외교안보 분야 기밀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개해버린 선례가 우리에게는 이미 ‘흑역사’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장기적으로 우리 외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다. ‘한국은 외교 기밀도 못 지키는 나라’라는 오명을 두고두고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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