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이 익숙했다. 김영화 기자가 쓴 가수 송가인 팬카페 ‘어게인’이 떠올랐다. 핑크색 점퍼와 모자는 어게인의 상징이다(〈시사IN〉 제645·646호 ‘송가인은 5060의 구원자이어라’ 기사 참조). 그 핑크색을 미래통합당이 상징색으로 삼았다. 따지고 보면 미래통합당은 ‘어게인 새누리당’이다. 박근혜 탄핵 전 세력이 3년 만에 다시 모였다. 이합집산은 흔한 풍경이다.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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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1+1 세트’로 헤쳐 모였다. 〈조선일보〉는 미래한국당을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전문 위성정당’이라는 긴 수식어로 정의한다. 모든 기사에 이 수식어를 붙인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 미래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한 개정 선거법용 급조 정당이다. 앞으로 이 위성정당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야 할 운명이다. 후보 선정까지 합법의 형식은 갖추겠지만 미래통합당과 텔레파시 교감을 해야 한다. 불법과 합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비례정당 급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사IN〉은 ‘우물에 독 타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이 우물에 독을 타자 민주당은 미래한국당 창당 이후 곧바로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한선교 대표와 조훈현 사무총장을 고발했다. 우물에 독 타기는 분명 잘못됐다. 그렇다고 검찰개혁을 표방한 민주당이 사안마다 고발을 일삼는 건 개혁 대상인 검찰에 판관의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자제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대신 ‘다수파 정치’를 추구하면 좋겠다. 천관율 기자가 이번 호에 정체성 정치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Scene별로 설명해주었다. 정체성 정치는 미국 민주당이 소수파로 몰락한 이유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은 최근 펴낸 책에서 정체성 정치 대신 다수파 정치를 설파한다. “다수를 형성해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힘을 쓰는 다수파 정치가 아니라,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고 그것을 위반하면 나라 망할 듯이 외치는 정체성 정치에 빠져 있다(〈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2020).” 최근 ‘조국 내전’으로 비화되는 공천 과정을 보면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가 엿보인다.

정치는 운동(movement)이나 쇼가 아니다. ‘4+1 연합 정치’는 세상을 바꾸어내는 다수파 정치의 힘을 확인시켜주었다. 연합 정치 덕분에 논의된 지 20여 년 만에 공수처가 법제화되었다. 정체성 정치로는 불가능한 제도 개혁이었다. 유권자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지역감정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 민주주의 제도를 형해화시키는 정치인에 대한 심판권이 유권자 손에 있다. 우리의 한 표가 내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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