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2008년 1월 중국 중남부에 폭설(위)이 내려 석탄 운송이 막혔다. 이로 인해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못하자 중국 정부는 석탄 수출 봉쇄령을 내렸다. 그러자 세계 석탄 값이 최고 6배 넘게 오르기도 했다.

“중국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에 태풍이 분다”라는 현대 속담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지역의 작은 변화가 연쇄 파장을 일으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으로 ‘나비효과’라 불린다. 그런데 나비효과가 처음부터 중국과 관련 있는 말은 아니었다. 1961년 나비효과 개념을 처음 발표한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도 중국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1972년 미국 과학학회가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온다”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중국 나비를 들먹인다.

아마도 브라질보다 중국이 미국에서 더 멀기 때문이겠지만, 중국발 나비효과는 엄연히 현실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다. 중국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이 엉뚱한 나라의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베이징 올림픽 기간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공장 가동을 중단했더니 한국 부품 수출업체가 도산하는 식이다. 중국발 나비효과 가운데 최근 일어난 사례 몇 가지를 꼽아봤다.

○ 2006년 우유 값 상승 파동 : 2006년 4월23일 원자바오 총리가 충칭시 광다(光大) 과학기술원 목축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총리는 “나에게 꿈이 하나 있다. 모든 중국인, 특히 어린이들이 매일 우유 1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근은 약 500g에 해당된다.

원자바오 총리의 이 말은 중국에서 교시처럼 퍼졌다. 전국에서 우유 마시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거리에는 육상 110m 허들 세계 챔피언 류샹의 얼굴을 내세워 “우유를 많이 마셔 훌륭한 운동선수가 돼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광고판이 걸렸다.  2006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 낙농연맹 총회가 열렸는데, 한쪽 벽면을 원자바오의 그 ‘교시’가 차지했다. 2006년 11월 후난성에서는 마오쩌둥의 대장정을 빗댄 ‘우유 장정’ 운동이 시작됐다. 중국 10개 성을 차례로 돌며, 초등학생에게 우유를 나눠주는 전국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을 신문·방송은 연일 중계했다.

그 덕분인지 중국인의 우유 소비량은 급증했다. 과거 중국인은 우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전에는 우유 가격 자체가 비쌌고 음식 문화가 우유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서양 식습관이 트렌드가 되며 우유도 유행했다. 아침에 우유를 마시는 가정도 늘어났다. 중국인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2005년께만 해도 10kg을 넘지 않았으나 2008년 현재는 20kg으로 추정된다. 일부 고소득 지역은 40kg이 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우유 소비 급증은 전세계적 유제품 공급 부족 현상을 낳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원자바오 총리의 꿈처럼 모든 13억5000만 중국인이 매일 우유를 1근씩 마시면 연간 소비량이 2억4600만t이 된다. 전세계 우유 소비량의 3분의 1이 넘는다. 원자바오의 꿈이 실현되면 세계 주부들은 재앙을 맞는다. 2007년 5월 전세계 탈지분유 표준 가격은 파운드당 1.58달러를 기록했고, 액상우유 선물 가격도 2007년 5월 19달러로 올랐다. 모두 2006년 초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우유를 원료로 한 유제품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치즈와 버터가 대표적이다. 모차렐라 치즈 가격이 2006년 초 t당 3000달러에서 2006년 말에는 5000달러까지 급등했다. 독일에서는 치즈 사재기가 사회문제가 됐다. 치즈를 원료로 하는 피자 가격도 연쇄 타격을 받았고, 이는 미국과 한국 피자 체인점 메뉴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중국 총리의 발언 하나가 한국 피자 배달부 근무 시간을 줄였다.

우유를 쓰는 제품은 생각보다 많다. 2007년 초 카페라테 가격이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랐을 때 제조사는 우유 값 인상 때문이라고 했다. 초콜릿을 만들 때도 우유가 필요하다. 롯데제과는 2008년 초 ‘가나초코렛’ 가격을 12년 만에 300원에서 500원으로 올리면서 중국발 우유 파동을 이야기했다.

○ 2007년 ‘청이병 돼지’ 폐사 : 2007년 5월 중국 장시(江西)성 일대에서 돼지가 전염병에 걸려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죽은 돼지는 귀가 푸른색으로 변해 ‘청이병(靑耳病)’이라고 불렸다. 중국 농업부는 2007년 5월 청이병에 감염된 돼지 4만5000마리 중 1만8000마리를 폐사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폐사된 돼지는 40만~100만 마리라고 추정됐다.
 

ⓒXinhua중국인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2005년 10kg에서 2008년에는 20kg으로 늘어났다.

중국 내 사육되는 돼지가 5억 마리가 넘기 때문에 설사 청이병에 걸린 돼지가 100만 마리였다고 해도 공급이 크게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인에게는 심리적 충격이 컸다. 모든 음식에 돼지고기를 넣는 중국인의 음식 문화에 청이병 소식은 중국 내 돼지고기 값을 폭등하게 했다. 돼지고기 가격은 2007년 5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43% 상승했고, 9월에는 85%나 올랐다.

돼지고기 값 상승은 마침 가격 인상 때를 기다리던 식료품 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예를 들어 달걀 가격은 2007년 4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나 올랐다. 식료품 값 상승은 중국 물가 전체를 끌어올렸다.
원래 중국 물가상승률은 1% 안팎으로 극히 안정적이었다. 2005년이 1.8%, 2006년이 1.6%로 연간 1%대 중반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7년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이 6.9%로 11년 만에 최고치였다. 중국 정부는 1983년 이래 허용한 상품 가격 자유화 조처를 철회하고 직접 식료품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 당국은 주요 식료품의 수출관세를 올려 사실상 수출을 막고 내수 시장으로 돌렸다.

중국 물가 상승은 전지구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가져왔다. 곡물 수출 통제는 전지구적 곡물 대란을 불렀다. 애그플레이션(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EU는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휴경지 보조금 제도를 폐지했다.

2007년 애그플레이션의 원인이 꼭 청이병 돼지 한 가지만은 아니다. 아무튼 중국인의 먹을거리 소비량이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 2008년 폭설과 석탄 대란 : 2008년 1월12일부터 중국 중남부 19개 성에 폭설이 내렸다. 50년 만의 폭설이 4주째 이어졌다. 이 눈으로 베이징·광저우 간 도로 등 주요 고속도로와 철도망이 마비됐다. 중국 내륙 지방은 외부와 고립됐다.
 

이 폭설로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특히 석탄 운송이 막힌 것은 큰 위험이었다.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가 멈춰 전력 생산량이 줄었다. 후진타오 주석이 탄광을 직접 찾아가 400m 지하 갱도에서 광부를 격려하며 생산량을 늘릴 것을 주문했을 정도다. 2008년 1월25일 중국 정부는 두 달간 석탄의 해외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 석탄 수출량은 월간 400만~500만t 가량 된다. 중국 석탄 수출 봉쇄령은 국제 석탄 거래 시장을 강타했다. t당 30~40달러 수준이던 석탄 가격이 2008년 2월 100달러를 넘어섰고 6월에는 190달러를 넘어선 곳도 있었다. 덩달아 구리·아연·니켈 등의 국제 원자재 가격도 가파르게 올랐다.

석탄의 일종인 유연탄은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성분이다. 중국 석탄 수출 금지로 유연탄이 부족해지자 그 불똥은 한국 시멘트 업계로 옮아붙었다. 러시아산이나 오스트레일리아산은 급히 들여올 수도 없는 데다 가격도 비쌌다. 유연탄 가격이 2007년 말 111달러에서 올해 2월 165달러로 올랐다. 시멘트 생산원가가 높아지자 한국 레미콘 업체들이 건설회사에 구매 단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이는 레미콘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엉뚱한 호황을 누린 곳도 있다. 중국에서 석탄을 수입하던 한국·일본·타이완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로 수입처를 바꾸면서 장거리 해상 수송망이 필요해졌다.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의 운임지표인 BDI(운임지수)는 2007년 말 9236으로 1년 전 4397보다 두 배 올랐다.

○ 노동시장 변화 등 : 이른바 중국발 나비효과는 대체로 중국인의 수요 증가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올해 1월9일 상하이에 금 선물거래소가 개장했다. 그에 따라 중국인 금 투자가 늘어났고, 국제 금값이 치솟았다.

좀 다른 방식의 나비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 변화와 관련한 것이다. 최근 남미 과테말라에서는 치안 불안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강도와 폭력배가 늘어나 교도소가 모자랄 정도였다. 왜 밤거리 치안이 나빠졌을까? 실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왜 실업자가 늘어났을까? 봉제공장이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영국 MG 로버 공장이 버밍엄 롱브리지에서 중국 난징으로 옮겨가자 롱브리지 시가 황량하게 변해버린 것도 중국발 나비효과다. 

반대로, 올해 초 중국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새 노동법을 발표하자, 중국에 있던 공장이 캄보디아나 베트남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었다. 덕분에 캄보디아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갔다. 중국발 원자재 값 대란으로 아연 값이 오르자 10년 전에 문닫은 페루 폐광이 부활하고 광부들이 일자리를 얻었다.
물론 글로벌 나비효과가 꼭 중국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발 서브프라임 나비효과는 규모와 파장이 너무나 커서 중국 나비효과를 무색하게 한다. 그럼에도 중국발 나비효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곳 나비의 날개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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