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시끌시끌한 이유
  • 고재열 기자
  • 호수 588
  • 승인 2018.12.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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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과정을 들여다보면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문화 행정의 문제점, 우리 사회의 극명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
12월27일 과천관, 덕수궁관, 서울관에 이어 청주관이 개관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4관 체제가 된다. 규모로 보았을 때 미술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다. 특히 2013년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자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들여다보면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문화 행정의 무능, 우리 사회의 극명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

12월13일 임기를 마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후임 선정을 위한 공모에서 최종 후보로 오른 사람은 세 명이다. 김홍희 백남준재단 이사장(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그리고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다. 김홍희 이사장은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2003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2006년)을 거친 뒤 서울시립미술관장을 6년 동안 맡았다.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1995년 전시기획실장을 맡아 광주비엔날레 창립의 산파 구실을 했다. 2004년에는 예술총감독을, 2012년부터는 대표이사를 맡았고, 2013년에는 세계비엔날레협회 초대 회장에 뽑혔다. 윤범모 교수는 대표적인 민중미술 기획자로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로 참여했고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는 예술감독을 맡았다.
ⓒ시사IN 신선영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놓고 미술계 내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모습.

정계와 보수·진보 언론으로 논란 확산

관장 임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임명 때마다 시비가 일었다. 2015년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선정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은 인사혁신처가 검증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로 추천한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을 임명하지 않고 재공모했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공식 선정 절차를 거친 후보 대신 검열 의혹이 불거진 이를 선임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리 관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장으로 재직할 때 왕실에 대한 풍자 작품을 전시에서 배제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이번 논란의 씨앗은 문체부가 연임을 원하는 마리 관장에게 불가 통보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10월 문체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미술 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 새로운 관장을 공모하기로 했다”라며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었다. 10월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체부가 ‘친문 성향 예술인’을 차기 미술계 수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업무 실적이 뛰어난 마리 관장의 연임을 불허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도 가세했다. ‘마리 관장이 잘하는데 친문 인사를 앉히기 위해 연임을 막는다’는 프레임으로 보도한 것이다. 보수 언론은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그렇게 비난하고 전 정권 관료들을 그렇게 조리돌림하더니 너희도 똑같다’는 논조로 이번 논란을 중계 방송했다.
미술계 네트워크 지도인 아트솔라리스를 통해 본 역학관계. 김홍희 후보(아래)는 미술 생태계 중심부 작가들과 연계되어 있다.
미술계 네트워크 지도인 아트솔라리스를 통해 본 역학관계. 윤범모 후보(아래)는 중심부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보수 언론이 활용한 또 다른 프레임은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회) 독식’이었다. 민예총 출신인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민예총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일부러 꼼수를 부린다며 비난했다.

민예총 출신이 현 정부 들어 약진하고 있기는 하다. 지난 11월 임명된 박종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충북민예총 이사장 출신이다. 앞서 9월 임명된 김철호 국립중앙극장장은 민예총 산하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월 임명된 정희섭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은 민예총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민예총의 한 간부는 “민예총은 단체장 선발에 관여하지 않는다. 세간에는 민예총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윤범모 교수를 지지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번 공모에서 탈락한 후보 중에는 윤 교수보다 민예총과 더 가까운 분도 있다. 윤 교수는 오히려 민예총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은 것에 섭섭해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교수는 민예총의 비주류로 분류된다.
ⓒ연합뉴스김홍희 백남준재단 이사장

보수 언론의 프레임 씌우기에 대해 미술계는 크게 반발한다. 그런데 일부 진보 언론에 대해서도 미술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일부 언론이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민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 기자는 스스로 인사이드 플레이어가 되어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미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심증이 충분히 성립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둘러싼 이런 외부 갈등보다 미술계 내부 갈등이 더 심각하다. 바로 미술계 신구 세대 갈등이다. 특히 최종 후보에 오른 김홍희 이사장과 윤범모 교수를 두고 신구 세대 지지가 갈린다는 평이다. 나이는 김 이사장이 윤 교수보다 많지만 서울시립미술관장을 거친 김 이사장은 주로 소장파 미술인들과 가깝다. 윤 교수는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기획해 원로 그룹과 가깝다.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세대 미술인을 대변한다는 것은 미술계 네트워크 지도인 ‘아트솔라리스(www.artsolaris.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시사IN> 제443호 ‘네트워크 지도로 보는 미술계 독점 구조’ 기사 참조). 아트솔라리스는 미술계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3차원 지도로 어떤 큐레이터와 어떤 작가들이 공동 작업을 많이 했는지 정보를 입력해 산출된 데이터를 근거로 한다. 정부 지원금이 투입된 전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미술인을 알아볼 수 있다.   

아트솔라리스의 관계망 지도를 보면 김홍희 이사장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박찬경 미디어아티스트 겸 기획자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기획자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다. 이 생태계의 중심부에 있고 각광받는 작가들과 두루 연계되어 있다. 김 이사장이 미술계 신주류를 대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윤 교수는 미술계 중심부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민정기, 임옥상, 김정헌, 주재환 등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과 연결된다. 이 관계망을 작고한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관계망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관계가 겹친다. 김 전 관장은 초대 민예총 이사장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임명되어 연임했다.

소장파 미술인들은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과 표현의 결이 달랐다. 거칠게 비교해 민중미술 작품이 직접적이라면 이들의 작품은 간접적이었다. 신구 세대는 활동 성향도 달랐다. 민중미술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이들은 네트워크 중심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문화예술 기관장을 밀어낼 때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성명에 1000명이 넘는 미술인이 동참했다. 소장파들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문체부가 마리 관장을 밀어붙일 때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여기서 감안해야 할 대목이 있다. 민중미술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순수미술계를 지원해, 민중미술계는 주류에서 멀어지고 각종 불이익을 받아왔다. 당연히 이들의 전시를 기획하는 윤 교수도 기회가 적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원칙 재확립해야

반면 김홍희 이사장은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6년 동안 재임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이때 검열 사태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2015년 9월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서울관에서 ‘공허한 제국’이라는 주제로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를 열었다. 여기에 홍성담 작가의 아크릴화 ‘김기종의 칼질’이 전시되었는데,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보수 언론이 그림에 쓰인 글귀가 테러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용이라며 비판하자, 기획자인 홍경한 전시감독이 그림을 내렸다. 미술계는 표현의 자유 억압이
ⓒ연합뉴스이용우
전 광주 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라며 반발했다. 외부에 기획을 의뢰한 전시였고, 전시감독이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김 이사장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흥미로운 점은 윤범모·이용우 두 후보가 홍성담 작가 작품 전시와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전시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 철거당하자 책임 큐레이터였던 윤범모 교수는 작품 철거에 항의해 사임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이용우 당시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도 본전시 개관에 맞춰 퇴진했다.

밖에서는 밥그릇 싸움으로 볼 수 있지만 이 문제가 미술계 안에서 민감한 이유는 공정성 때문이다. 소장파들의 문제 제기 지점은 절차적 합리성이다. 문체부가 최종 후보자에 대한 역량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소장파들은 비판적이었다. 이들에게 이 조치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도 임용될 당시 역량평가를 받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고위 공무원 인사 관련 규정에는 역량평가를 받지 않는 경우를 ‘문화·예술·의료 분야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위에 임기제 또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경우에 한해 소속 장관이 고위 공무원으로서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유를 소명하는 경우’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후보자 역량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문체부는 비난이 일자 다시 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예술인을 길들이려 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다시 확립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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