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 연설(위)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발표했다.

요즘 국회에서는 녹색성장이나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한 토론회가 자주 열린다. 11월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기후변화대응 및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고, 그 다음 날 국회도서관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 신재생 에너지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비슷한 이름의 세미나나 토론회가 거의 매주 열린다.

이런 녹색 정치 유행의 중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지난 8월15일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 연설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발표했다. 그린홈 100만 호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발광 다이오드(LED)와 무공해 석탄 같은 새로운 그린 에너지 기술도 개발하며, 임기 중에 세계 4대 그린 카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했다.

토목공사 CEO 이미지가 강한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을 강조하는 모습은 새로웠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이후 과천 공무원들의 관용 수식어가 됐다. 정부는 8월27일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9월19일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11월5일 “지금까지 여러 부처와 위원회로 분산됐던 기후변화 대응을 하나로 모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대통령 직속의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강조한 것은 시의 적절한 면이 있다. 한국은 2013년부터 탄소 배출량 규제 의무를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2008년 들어 각국 정상이 녹색성장을 국가 패러다임으로 선포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한국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9일 일본 후쿠다 야스오 당시 총리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60~80% 줄이겠다는 ‘후쿠다 비전’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이 후쿠다 비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이 제기했는데, 선언문 제목까지 똑같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후쿠다 비전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일본 방문 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후쿠다 비전 발표 한 달 뒤인 7월8일 일본 도야코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렸다. G8 회담에서 녹색성장은 주요 의제가 됐다. 각국 정상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줄이기로 뜻을 모았다.
 

ⓒ뉴시스김상협 미래비전 비서관. 정래권 기후변화 대사.

일본 방문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한 사람 중에는 정래권 기후변화 대사도 있었다. 원래 기후변화 대사는 외교부 안에서도 한직에 속하는 자리로 알려졌지만, 정 대사는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편다. 정 대사와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는 김상협 미래비전 비서관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한 달 만에 8·15 녹색성장 선언을 한 데는 녹색 브레인의 공이 컸다.

비전 약한 수소연료전지 사업에 무리한 투자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환경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했던 녹색성장과는 차이가 있다. 흔히 저탄소 녹색성장이라고 하면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을 떠올린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홍보 책자·영상에는 언제나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 그림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성장의 핵심은 원자력이다(〈시사IN〉 제51호 참조). 

이명박 대통령의 8·15 연설에는 원자력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지만, 9월19일 발표된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자력 설비 비중을 2007년 26%에서 2030년까지 41%까지 늘리고 발전 비중도 같은 기간 35.5%에서 59%로 늘린다. 원자력 기술발전방안(Nu-tech 2015,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출연) 예산은 2008년 508억원에서 해마다 늘어나 2012년에는 최고 1042억원이 된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대안=원자력’이라는 얘기다.

대안 에너지 시민단체 ‘시민발전’의 박승옥 대표는 “원전을 짓는 데 10년 넘게 걸리고 그동안 배출되는 CO₂ 양이 엄청나다. 방폐장 건설 문제 등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하면 생산성이 오히려 낮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김권성 서기관은 “다른 외부 효과를 모두 계산하더라도 원자력발전이 신재생 에너지에 비해 몇십 배 효율적이다. 에너지 수요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자연 입지 여건도 불리한 한국의 특수 상황을 독일·스웨덴 같은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수소연료 에너지에 대한 지나친 투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8월15일 녹색성장 선언에서 “비록 탄소 시대에는 뒤졌지만 다가올 수소 시대에는 앞서나가야 한다. 녹색성장으로 수소 시대의 중심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말한 수소 시대란 주로 수소연료 에너지를 뜻한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 ‘수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5년을 ‘수소 경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수소연료전지 사업단 등을 출범시키며 막대한 투자를 했다.
 

2007년에도 정부는 연료전지 개발에 311억원을 투자했고, 민간 자금을 합치면 620억원이 이 분야에 쓰였다. 풍력이나 태양광발전 개발보다 2배 이상 많은 돈이다. 이강후 지식경제부 국장은 자신이 쓴 책에서 “다른 재생 에너지에 대한 기술개발보다 연료전지 연구개발에 훨씬 많은 자금이 투자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깨지고 있다. 2005년 수소연료사업단 홍성안 단장은 “2년 뒤면 분명히 시내 한복판에서 수소 주유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도 수소연료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친환경 자동차 시장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카가 대세다. 이성호 전 신재생에너지센터 소장은 “수소연료전지 사업에 큰 비전이 없다고 본다. 수소 에너지 효과가 한국에서 특히 과장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수소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수소 이니셔티브 선언’을 하며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독려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수소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 자체를 만들어내는 데 전기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수소 에너지는 재생 가능 에너지라기보다는 다만 기존 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라는 견해가 있다. 유럽에서는 연료전지를 재생 에너지 분류에 넣지 않고, 차기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도 재생 에너지를 말하면서 수소연료전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녹색성장의 원동력을 원자력 에너지나 수소에너지에 기대는 현상은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큰 차이가 없다. 청와대는 바뀌었지만 에너지 관료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19일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09년도 예산안 쟁점분석〉을 보면, “정부가 발표한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 관련 예산안은 기후변화 대응 등과 관련 없이 각 부처가 과거부터 추진해오던 사업들을 단순히 집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09년 녹색성장 예산은 3조7916억원이다.

이명박 정부의 다른 사회 각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 계획은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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