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지난 6월24일 버락 오바마(왼쪽 세 번째)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스프링스 프리저브에 있는 태양광발전소의 발전 패널을 쳐다보고 있다.

11월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버락 오바마 차기 대통령 당선자를 연사로 초청했다. 오바마는 직접 행사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개막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오바마는 이 비디오 연설에서 “내 대통령 임기 동안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미국 리더십이 새로운 장을 열도록 만들겠다.(중략)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에는 추가로 80%를 더 줄이기 위해, 매년 감축 목표를 세우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 가운데 기후변화 문제와 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별로 없다”라고도 했다. 오바마의 이 말은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걸었던 길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온실가스 규제가 기업 성장에 장애가 된다며 되도록 언급을 기피했다.

오바마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과감한 환경산업 공약으로 부시 정권과 차별화했다. 10년간 1500억 달러를 태양력·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투자해 일자리 50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당선된 다음 날인 11월5일, 미국의 환경 미디어 단체 ‘잽루프’는 오바마에게 거는 기대를 담은 〈5 그린 오바마 드림〉이라는 UCC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 동영상에서 만화 주인공인 슈퍼맨으로 형상화된 오바마는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 5가지 환경 공약을 지킨다. 공기청정법을 통과시키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며, 재생에너지 개발에 앞장선다는 내용이다.

오바마 당선자에게 거는 지구인의 100가지 기대 가운데 한 가지는 ‘녹색 영웅’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단지 그가 미국에 친환경 정책을 펴는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예고된 ‘녹색성장’ 시대를 주도해달라는 희망이다. 
 

미국진보센터가 펴낸 보고서 〈에너지 기회 잡기〉 표지에 쓰인 풍력발전소와 기술자 사진. 녹색 일자리 창출을 의미한다.

녹색성장(Green Growth)은 지난 200여 년간 인류가 누려온 화석 에너지 소비 시대를 벗어나 경제성장의 중심을 신재생 에너지에 두는 시대를 말한다. 물론 오바마 등장을 녹색성장과 동일시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앨 고어 같은 환경 지식인도 아니며, 선거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녹색 에너지에 대한 접근은 힐러리나 에드워드의 그것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었다(34~35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러나 지금 오바마 당선을 녹색성장 시대 출범의 방아쇠로 여기는 것은 올해가 2008년이기 때문이다.

독일, 전체 에너지원의 7%가 재생 에너지

1992년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도, 민주당은 친환경 경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클린턴 임기 동안 특이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태양광 기술이나 풍력 기술은 아직 생산성이 낮았다. 그때만 해도 환경산업이란 ‘생산하는 기술’이라기보다 ‘보호하는 기술’이었고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인 산업이었다.

21세기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재생 에너지 기술혁명으로 태양광발전 단가가 3분의 1로 떨어졌다. 1999년 287MW에 지나지 않았던 세계 태양광 시장은 2006년에는 2536MW가 됐다. 풍력발전 설비 시장도 2006년 230억 달러에 이르렀다. 과거 수치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한 해가 다르게 성장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녹색 국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나라가 됐다. 현재 독일 전체 생산 에너지원의 7%가 풍력·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다.  2010년이면 1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독일 풍력발전 1위 업체인 에너콘은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 됐다. 일본은 태양광 분야에서 독일과 1, 2위를 다툰다. 우리에게 전자계산기 만드는 업체로 기억되는 샤프는 지금 태양전지 시장  1위 기업이다. 도요타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카 시장을 선도하며 친환경 자동차 이미지를 굳혔다.
 

ⓒReuters=Newsis독일 환경운동가가 베를린 화력발전소 앞에서 석탄 발전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툴 중국은 재생 에너지·화석 에너지·원자력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 골고루 투자한다. 이 가운데 태양광은 이미 세계 수준에 올랐다. 중국인 오스트레일리아 유학생이 설립한 썬테크는 뉴욕 나스닥에 상장됐다. 이 밖에 베스타스(덴마크), 가메사(스페인), 수즈론(인도), 지멘스(독일) 등 풍력 에너지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비(非)미국 기업이 많다.

세계가 녹색 파도에 요동치는 사이, 부시 정권 8년 동안 미국의 신재생 에너지 산업은 정체됐다. 석유 기업 출신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지휘하며 석유 에너지에 집착했다. 자동차 기업은 연비를 높이거나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압박을 느끼지 못했다. 오바마가 “자동차의 원조는 미국인데 왜 하이브리드 카와 전기 자동차의 디자인과 제조를 한국과 일본이 하도록 내버려두었냐”라고 한탄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2008년에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올해 여름 국제 유가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석유 비상이 걸렸고 에너지 문제가 모든 이슈를 압도했다. 또 지구온난화 문제가 본격화하면서 G8 등 주요 정상회담에서 온실가스 감축 약속이 이뤄졌다. 나라마다 그린 에너지, 신재생 에너지 경제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후쿠다 비전’을 발표했다.
 

2006년 12월, 미국 싱크탱크 중 하나인 미국진보센터(CAP)가 〈21세기 미국 에너지〉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만약 미국 에너지 경제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게 가능한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2007년 11월 CAP를 창립한 존 포데스타는 〈에너지 기회 잡기- 저탄소 경제 창출〉이라는 공동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는 “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에너지 도전은 시급함·중요성·전망·기회라는 면에서 아주 특별한 때다”라고 썼다. 2008년 11월 존 포데스타는 오바마 정권인수위의 공동위원장이 됐고 CAP는 현재 오바마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이다. 모든 사람이 기다린 ‘때’가 드디어 왔다. 

요즘 상황을 이해하려면 석탄 시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765년, 제임스 와트가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을 발명했을 때, 그것이 화석 에너지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임스 와트 이전에도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어떤 과학자는 석탄보다 화약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 사람이 보기에 석탄은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있었던 숯덩이였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석탄 수요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해 1835년에는 전세계 채탄량이 3600만t이었다가, 1885년에는 4억2200만t이 됐다. 순식간이었다.

녹색성장 시대의 핵심은 고용 창출이다. ‘화이트칼라(사무직), 블루칼라(제조업)라는 말에 빗댄 ‘그린칼라’라는 용어가 있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노동 인력을 부르는 말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성장을 눈앞에 둔 미국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한 카드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른바 ‘녹색 뉴딜’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많은 오바마는 하이브리드 카 지원에 역점을 두리라 보인다. 미국 전체 에너지의 30%가 자동차 에너지다.

미국이 과연 화석 에너지 시대에 그랬듯이 녹색성장 시대에도 세계 경제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이 신재생 에너지 판도에 달려 있다. 과거에 에너지 전쟁이란 누가 석유 자원을 확보하느냐 하는 싸움이었다. 이라크 전쟁 시대에는 유전 확보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관념이 팽배했다. 반면 녹색성장 시대의 에너지 전쟁은 누가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먼저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국적 에너지 기업의 발빠른 변신

눈치 빠른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은 재빨리 변신하고 있다. 굴지의 석유 기업 BP는 이름 약자를 풀어,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재생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석유회사가 석유를 극복하자는 표어를 건 셈이다. GE는 G윈드라는 자회사를 키워 세계 풍력시장의 30%를 점유하며 풍력 1위 기업으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동양제철화학이 태양광발전 관련 고순도 실리콘을 만들어 떠오르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풍력발전 설비 시장에 진출했으며, 현대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카 시장을 노린다. 물론 함부로 시대를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새 시대가 왔다는 숱한 예언이 허무하게 빗나간 사례가 많다. 1990년대 IT 경제 이후에 바이오 경제(BT)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BT는 성장에 여전히 한계를 느끼고 있다. 석유 부존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녹색성장 시대가 도래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녹색성장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지금 녹색성장 시대가 시작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 개인이 흥청망청 누려온 ‘화석 에너지 잔치’를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1만 년 문명사에 화석 에너지 시대는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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