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 청와대, 박근혜·김문수 이렇게 견제했다
  • 김은지·김동인·전혜원 기자
  • 호수 582
  • 승인 2018.11.08 15: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는 박근혜 당시 의원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명박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표가 현 정부에 적극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낮음”이라고 판단했다.

재임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장 위협적인 정치인은 박근혜였다. 임기 첫해인 2008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월 광우병 촛불집회를 거치며 급락한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1분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52%였지만, 2분기에는 21%로 떨어졌다. 재임 기간을 통틀어 가장 지지율이 낮았던 시기다.

박근혜 당시 의원은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다. 18대 총선에서 여권이 압승하자 야당에서는 정적으로 꼽을 만한 대형 정치인을 찾기 어려웠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처지에서는 당내 입지와 대중적 인지도를 두루 갖춘 박근혜 의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도 박근혜 의원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 있다. 2008년 8월18일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한 ‘주간 동향분석 및 전망’ 문서에는 ‘박근혜 前 대표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박 의원에 대한 청와대 대응 방침을 논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박근혜 前 대표가 현 정부에 적극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낮음”이라고 판단했다. 동반자 관계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VIP께서는 국정 운영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박 前 대표의 손을 잡아주는 모양새를 취할 필요 있음”이라며 대립 구도를 밖으로 노출시키지 말 것을 주문한다.

당시 정무수석실은 대통령이 직접 박근혜 의원에게 “‘국정 운영의 동반자’ ‘적극적 협력 요청’ 등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 전 대표가 더 이상 방관자로 남지 못하게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이유로 든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당권과는 거리를 둔 채 ‘여당 내 야당’으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8년 6월30일에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해 “추가협상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명하며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 고시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했다”라며 비판해 이명박 정부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박근혜 의원 외에 다른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또 다른 차기 주자로 꼽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한 문건도 찾을 수 있다.

2008년 9월1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8월 정국분석 및 9월 전망’ 문서에는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에 대한 정무적 대응책이 담겨 있다. 2008년 8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는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선 지방발전-후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김 지사는 친이계에서 촉망받던 차기 대권 주자였지만, “(수도권 규제는) 공산당도 안 하는 짓”이라며 청와대에 정면으로 맞붙었다. 청와대는 임기 초부터 김문수 지사와 대립해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것을 경계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발언에 대해 BH가 직접 대응하는 것은 피해야 함.”

대신 청와대는 우회적으로 경고 조치를 전달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조기 대권 행보 가시화로 인한 여권 내부 균열 시도 지사들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당 지도부를 통한 경고 메시지를 명확히 할 필요 있음.”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 지원을 받은 박희태 대표 체제가 자리 잡았고, 이상득·이재오 등 대통령 측근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했다. 청와대는 이 갈등을 ‘시·도지사 간의 싸움’으로 전환시키는 방안도 내놓는다. “재발 시 자유선진당이나 이완구 충남도지사 등 지방정부 간 이해 대립 구도로 가져가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갈등을 유발시킨 후 청와대는 관망하는 게 당시 이명박 청와대의 핵심 전략이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