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디애나에 사는 한인 주부 박민아씨는 10월22일 아침 우편함에서 유인물을 하나 발견했다. 공화당 매케인 후보 측에서 발송한 것으로 보이는 이 홍보물에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나라 경제가 이렇게 나빠졌는데 할리우드 스타를 만나 선거자금 모금이나 하고 있다”라는 주장이 쓰여 있었다.
 
요즘 매케인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8~10% 이상 뒤지고 있다. 열세 후보는 네거티브 공세를 펴기 마련인데 최근 매케인 측은 오바마 후보의 ‘스타 이미지’를 역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지난 7월30일에도 공화당은 패리스 힐튼,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사고뭉치 연예인과 버락 오바마를 견주는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이 광고에서 내레이터는 “오바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될 준비는 됐을까?”라고 묻는다. 그가 실속없는 연예인일 뿐이라는 뜻이다.

오바마 후보는 그 자신이 스타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각계 스타·유명 인사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후보이기도 하다. 오바마에 대한 미국 ‘셀러브리티(유명 인사)’의 지지는 전례 없이 일방적이다. 할리우드 배우뿐만 아니라, 경제계·학계·언론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원래 언론인과 배우는 친민주당 성향이 있지만, 최근 오바마에 대한 지지 선언이 폭주하는 현상은 2004년 존 케리 후보나 2000년 앨 고어 후보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례 없는 지지 선언 열풍
 

 

미국에서 사회적 명망가가 지지 후보를 밝히는 일을 ‘인도스먼트(endorsement)’라고 부른다. 한국도 대선 때 지지 선언을 하는 연예인이 간혹 있지만 미국의 인도스먼트는 하나의 독특한 고유 문화로 자리잡았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학자나 언론학자가 인도스먼트 명단을 분석하고 계량화해 논문을 쓸 정도다. 대선이 아니더라도 선거가 있는 곳에는 늘 인도스먼트가 따라붙는다. 가령 학생회장 선거가 열리면 미식축구 클럽부터 클래식 동아리까지 지지 후보를 밝히고 그 리스트가 공개되는 식이다.

〈시사IN〉은 선거를 열흘 앞둔 시점에서 오바마와 매케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미국 명망가 명단(인도스먼트 리스트)을 작성해봤다(오른쪽 표 참조). 오바마 후보의 경우 위키피디아 등 각종 인터넷 집계 사이트에 올라 있는 명망가 지지자만 무려 1000명이 넘는다. 그 중 확인을 거쳐 한국인이 봐도 알 만한 유명 인사만 추렸는데도 100명이 넘었다. 낯익은 이름을 하나씩 세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도스먼트만으로 당락을 가른다면 오바마는 떼논 당상이다. 특히 언론계와 학계, 영화계 인사가 눈에 띈다. 지지 신문사 수에서 오바마는 매케인을 두 배 이상 앞질렀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노벨 경제학상을 포함해 생존한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63명이 오바마를 지지했다. 스포츠계에서 오바마는 농구,  매케인은 골프와 야구 분야 스타가 지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농구가 흑인 스포츠라는 점과 관련 있어 보인다.
 

 

매케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유명 인사는 오바마 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매케인 측은 과거 고위 관료를 지낸 중량급 인사가 많다는 점을 자랑한다. 헨리 키신저, 제임스 베이커 등이 대표 인사다. 

하지만 10월19일 콜린 파월이 오바마를 지지해 이 분야에도 타격을 받았다. 콜린 파월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이 소식을 들은 매케인은 “나도 전직 장관 4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라고 반응했지만 요즘 유권자 기억 속에 이 네 명의 이름값이 콜린 파월 한 사람보다 못하다는 평을 들었다.

인도스먼트가 해당 후보의 득표에 도움을 주는가는 논란거리다. 콜린 파월이나 케네디 가문의 지지는 오바마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꽤 도움을 주겠지만 지나친 바람몰이는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지지 선언 효과 없다는 주장도

언론사 중에 인도스먼트를 거부하는 곳도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USA 투데이는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인도스먼트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미국 피츠버그에 사는 민주당 지지자인 케이스 헌터 씨는 〈시사IN〉과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인도스먼트 문화가 유권자로 하여금 후보에게 집중하지 않고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의 성향까지 고려하게 만들어서 선거의 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힘있는 단체가 선거 때 세몰이를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매케인 후보 측이 요즘 오바마 후보의 ‘이름값 군단’에 대해 비판에 나선 것도 이런 기류를 활용한 것이다. 오바마 진영도 이 점을 걱정한다. 스캔들을 일으킨 영화배우 린제이 로한이 오바마를 지지한다며 행사에 참여하려 하자 오바마 캠프 측이 완곡히 사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린제이 로한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재활원을 전전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인도스먼트 문화가 우리 선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한국의 경우, 언론사가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정치권 줄서기를 조장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가 첫손에 꼽힌다. 하지만 우리 언론인은 너무 쉽게 옷을 갈아입는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 지지 선언’이 아니라 ‘후보 캠프 합류 선언’이 쏟아진다. 사회단체의 후보 지지 선언이 편견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전교조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자 선거 이슈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전교조에 대한 찬반 견해로 갈라졌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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