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사나
  • 송기영 (시인)
  • 호수 550
  • 승인 2018.04.02 19: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흥구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무등이왓’의 신목에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어린아이 형상의 종이 인형이 걸려 있다.
주민 100여 명이 학살된 곳이다.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아래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해방되니까 들어온 거예요. 죽지 안 허고. 그 먼 데 가서, 죽지 안 허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미군정이 있는데 친일 부역이 뭔 문제라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가파도의 400여 명 인구 중에 100명 넘게 배를 타고 나와 1947년 3·1운동 기념행사에 참석했더랍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용철이가, 죽었다. 이거, 큰일 났다. 우리 아들딸들 다 죽이겄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그리고 그 후에 서북청년이란 단체가 들어왔습니다. 묵시록의 붉은 용을 잡으러.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학원생들도 ‘신탁관리 절대반대’ 이런 구호하에 시위도 했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이 필요한 게 아니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쪽도 무섭고, 저쪽도 무섭습니다. 강씨 언니는 얼굴이 고운 분이었지요.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위도 무섭고, 아래도 무섭습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비는데,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검정개도 무섭고, 노랑개도 무섭습니다. 당시 큰형님이라고 해봤자 열다섯 살이나 됐을까.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난 아무것도 안 했수다. 시부모 모시고 애기만 키웠주 아무것도 안 했수다. 제주 여성은 빨갱이를 재생산합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불순분자를 발근색원 합시다. 옆집 사람이 나를 명부에 올렸죠. 협조하지 않는 언론은 통제하세요.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린 목숨 하나 의지해서 살자고, 산에 올라가도 못하고 내려오도 못하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제주도민 90%가 좌익 색채를 띠고 있소.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서북 계열의 사설 청년단체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메이데이, 메이데이. 우리 미군은 원인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오직 진압뿐.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앴는데.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군은 드디어 양과 같이 선량한 백성을 적의 독아로부터 구원하였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죽지 안 허고, 그 먼 데 가서 죽지 안 허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