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0년, 정의를 묻는다
  •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제주4·3연구소 이사장)
  • 호수 550
  • 승인 2018.04.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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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3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원통함을 풀지 못한 희생자가 많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누군가 대변해주어야 한다.

1948년 4·3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4·3을 헤쳐 나온 분들에게는 지금도 잔혹한 그날이 어제 같기만 할 것이다. 그때 경험담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입은 떨림으로, 눈에서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심장은 터질 듯이 박동을 더해갈 따름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떠난 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깊은 기억 속에 각인된 지워지지 않는 이 70년 질곡의 세월은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상처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어느 날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자식들, 처녀라는 이유로 죄도 없이 치욕적인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여성들, 이름도 짓기 전에 비명에 간 어린아이들, 재판도 없이 무슨 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가 땅에 파묻히고 바다에 수장되어 죽어간 숱한 사람들,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식들을 죽이고 자식들을 대신해서 그 아비를 죽이며 남편을 대신해서 그 아내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무고한 이웃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강요하는 만행의 시간들이었다.

ⓒ김흥구4·3 70주년은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의 마지막 10년 주기라고 한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2014년 66주년 추념식에서 한 유족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전쟁도 아닌 와중에 2만5000명~3만여 명이 희생되었으니, 이 엄청난 죽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밥 짓고 밭에 나가 일하고 하루하루의 소소한 희로애락 속에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낮에는 경찰이 무섭고 밤에는 산사람이 무서워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움에 몸서리쳐지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는 증언들은 4·3의 비극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참혹한 것이었는지 웅변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무자비하고 잔혹해야 했는가? 전국 어디서나 일어섰고 제주에서도 똑같이 일어선 1947년 3·1절 기념대회는 뭐가 잘못됐으며, 어린 소년을 말굽으로 치고 지나치는 기마경관에 대한 항의가 대체 무슨 잘못이기에 군중을 향해 총질을 해댔는가? 조국의 분단은 안 된다며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건 무슨 죄였으며, ‘빨갱이’ 사냥에 혈안이 된 공권력의 불의와 탄압에 맞선 정의로운 저항 또한 무슨 과오였는가? 그래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 모든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제주 사람들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진상 규명 운동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의 이름으로 철저하게 속박당하고, 작가와 시인과 학생들과 의로운 제주 사람들은 다시 고초를 겪고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다. 1988년 4·3 40주년이 돌아오고, 1998년 50주년이 다시 와도 세월은 멈춰 있는 듯, 그 억울함은 누구로부터도 치유받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해에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21세기로 넘길 수 없다!”라는 도도한 진상 규명의 열기가 1999년 12월 숱한 고난 끝에 ‘제주4·3특별법’을 만들어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힘을 모아주었던가? 악인이 있으면 귀인도 있는 법, 대한민국의 1%밖에 안 되는 제주의 아픔을 위해 정의롭고 선한 많은 분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흥구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무속 행위.

2003년 10월15일 제주 4·3의 진실을 담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식 ‘정부 보고서’로 채택되었다. 보름 후에 희생자 유족들과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목말라하던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2006년 대통령이 4·3위령제에 처음 참석했다.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란 외침과 감동을 얻는 데는 반세기가 넘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4·3평화공원도 조성되기 시작했고, 희생자들은 그 영원한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

2008년 4·3 60주년, 대대적인 기념행사였다. 기념사업위원회가 꾸려지고, 4·3으로 섬을 떠났던 사람들이 4·3으로 다시 제주 땅을 밟았다. 그분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감동, 그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랬을 것이다. 조국의 ‘나쁜’ 정치 때문에 고향을 등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국의 정부 이름으로 고향에 초대된 것이다.

이제 4·3 70주년, 4·3 당시 20세 청년이었다면 이제 아흔을 바라본다. 70주년은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의 마지막 10년 주기라고 한다. 더 이상 시간이 흐르기 전에 지금 해야 할 일,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진상 규명 운동 성과 위에 무엇을 하나 더 쌓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正名)’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이 사건과 모든 죽음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다. 70년 전에 죽은 어린아이의 영혼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모진 세월 속에 죽음을 강요당했고, 살아서 통곡의 세월을 보낸 모든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나는 제주4·3평화공원 위패 봉안소를 찾았을 때, 방명록에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쓰지 못하고,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라고 썼다. 그건 통상적인 위로의 메시지 이상으로 망자를 살아 있는 영으로 대하고, 그들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망자가 대화할 수 있다면, 꼭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 않겠는가.

ⓒ김흥구 노꼬메 오름에서 보는 제주 중산간 풍경과 비석 없는 무덤들.
오름은 4·3 때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해방 정국에서 제주 사람들은 시위도 항의도 평화적으로 했다. 최소한 4·3 발발 직전까지 제주 사람의 폭력으로 유명을 달리한 경찰이나 서청(서북청년단), 군인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제주 사람들 손에 피가 묻지 않았으니, 평화적으로 모든 사태가 수습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태는 대량학살이라는 최악의 길로 가고 말았다. 그래서 해방 조국을 통치하던 그때 미군정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미국의 책임을 묻고 싶지 않겠는가. 이승만과 경무부장 조병옥 등은 대체 무슨 근거로 제주를 ‘붉은 섬’으로 매도하고 그렇게 혹독하게 탄압을 해야 했는가? 그때의 위정자들에게 불법·탈법의 과도한 학살 책임을 어찌 묻고 싶지 않겠는가. 일단의 보수 세력은 지금도 70년 전 그때처럼 ‘폭동’이니 ‘폭도’니 하며 4·3을 폄훼하는 온갖 언설을 내뱉고 있다. 4·3을 왜곡하고 혐오 발언을 하는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묻는 ‘과거사 처벌법’이 만들어졌으면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명(正名)’이 아닐까 싶다. 70년 전 제주의 4·3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시위와 항의 대열에 참여했든 안 했든, 제주 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줄 알고, 판단도 했을 것이다. 불의와 탄압이 있었으니 거기에 저항했고, 조국통일이 옳은 길이니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 반대했다. 제주 곳곳에서 시위와 항의가 있었고, 많은 동네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한 건 그 때문이다. 민족의 염원과 간절한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검은 야욕’에 맞섰을 뿐이다. 민족의 지도자 김구와 김규식도, 전국의 동포들도, 그렇게 떨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제주 사람에게 죄가 있었다면, 우리 민족 수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이란 소리가 되지 않겠는가.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망자들에게 마땅히 돌려줘야 할 몫, 그것을 돌려주는 것이 70주년을 기점으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70년 전 그때 일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그 억울함을 씻어주는 ‘해원(解寃)’. 만일 망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의 끝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보복과 혈투가 아닌, 참된 평화와 정의여야 함을 70년 전 제주는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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