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변호사 유족 "밝혀진건 없고 시신만 상했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540
  • 승인 2018.01.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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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정원 현안 TF’ 소속 정치호 변호사가 지난해 10월30일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족은 타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1월11일 오전 10시20분 서초구 서울추모공원. 화장 후 한 줌의 재가 된 정치호 변호사(숨질 당시 42세)의 유골함을 받아든 유족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74일 만의 발인이었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10월30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았다.

그는 국가정보원 소속이었다. 정 변호사는 2011년 국정원에 입사해 법률 보좌 역할을 했다. 2년 후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정원 현안 TF’ 소속이 되었다(〈시사IN〉 제531호 ‘조작하라면 하고, 빼돌리라면 빼돌리고’ 기사 참조). 국정원 내부자의 뒤늦은 자백으로 사건 발생 4년 만인 지난해 전모가 발각됐다.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10월23일 정 변호사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10월27일에는 이제영 사건 당시 국정원 파견검사, 이튿날인 28일에는 서천호 당시 국정원 2차장, 그다음 날인 29일에는 장호중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 등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이들은 구속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는 중이다). 정치호 변호사는 10월30일 두 번째 참고인 조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사IN 이명익지난해 10월30일 정치호 변호사의 변사체가 춘천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발견된 뒤 74일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그는 검찰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정 변호사의 가족에게 위치추적을 부탁했고, 같은 날 밤 9시8분 정 변호사는 변사체로 발견됐다. 하루아침에 유족이 된 이들은 장례를 거부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인 데다, 정 변호사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서다. 그와 같이 근무하는 국정원 직원 또한 ‘정 변호사가 10월23일 조사를 잘 받았고 관련 자료만 내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가족에게 설명한 터였다. 가족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의 의혹을 풀어달라며 부검이 끝난 정치호 변호사의 시신 인도증을 찢어버렸다.

70일이 넘는 동안 유족은 정치호 변호사의 죽음을 제대로 수사해달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직접 번개탄 실험까지 했다. 전방위로 뛰어다녔다. 유족 대표 격인 정치호 변호사의 형 정민수씨(가명·48)는 “74일 동안 밝혀진 의혹은 아무것도 없다.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 외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의혹은 그대로이고 시간만 지났다. 그러는 동안 동생 몸만 상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정치호 변호사의 변사체가 발견된 차량의 번개탄 흔적
“74일 동안 수사로 밝혀진 의혹 전혀 없어”


시신을 춘천 강원대병원 영안실에 냉동이 아닌 냉장을 해놓은 상태라 더 두었다가는 부패가 진행될까 하는 걱정에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유족은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6일 춘천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정 변호사의 유족은 성명불상자를 살인죄 또는 자살교사 혹은 자살방조 등으로 고소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소주병이 발견되고 번개탄이 연소된 것만 보고 단순 자살로 판단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죽음의 의혹을 밝혀달라’는 뜻을 담았다.

〈시사IN〉이 입수한 정치호 변호사 유족의 고소장에 담긴 의심은 크게 네 가지다. △번개탄을 피워 숨졌다는 정치호 변호사의 시신과 차량 내부가 깔끔하다는 점 △정 변호사가 쓰던 휴대전화 3대 중 2대가 사라진 점 △정 변호사가 검찰 1차 조사 후 자료 제출 의사를 밝혔지만, 관련 자료가 사무실이나 집안에서 발견되지 않은 데다 차량에 빈 여행용 가방과 서류용 보자기 한 개가 찢긴 채 발견된 점 △부검 감정서에 칼륨 농도(15mEq/l)가 지나치게 높게 나온 점이다(보통 사람은 5mEq/l 정도).

고소장 접수에 앞서 추가 현장 감식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3주가 지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해 11월21일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춘천경찰서 한편에서 추가 현장 감식이 진행됐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치호 변호사가 숨진 채 발견되기 전날인 지난해 10월29일의 행적이 담긴 CCTV 정보공개 요청도 했다. 담당서인 속초 해양경찰서는 자료 제공을 위해 유족과 CCTV를 함께 보며 제3자의 얼굴을 가리는 작업까지 했지만, 돌연 같이 영상을 본 유족에게도 자료를 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 정치호 변호사의 지난해 10월23일 검찰 조사 내용, 10월23일부터 숨지기 전 까지 국정원 내 행적 등에 대한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유족이 직접 나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정민수씨는 지난해 12월28일 해당 차량을 사건 발생 장소로 끌고 가 번개탄을 직접 태웠다. 번개탄이 연소된 차량 내부를 번개탄 냄새까지 맡아가며 꼼꼼하게 살폈고, 결과를 정리해 경찰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시사IN 조남진유족은 직접 번개탄을 피워 은박지나
차 바닥에 구멍이 나지 않는지 살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도 발견했다. 경찰이 초기 현장 감식 때 차량에서 발견된 소주병 주둥이에 대한 DNA 검사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같은 곳에서 발견된 생수병 뚜껑과 주둥이, 콜라병 뚜껑과 주둥이는 모두 DNA 감식을 해 정치호 변호사의 것이 나왔다. 정작 자살의 한 도구로 지목된 소주병 주둥이를 감식하지 않았다. 소주병 뚜껑은 감식을 했고, 거기서는 DNA가 나오지 않았다.

춘천경찰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춘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현재 통신 조사와 계좌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강릉 등으로 갔던 행적 조사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국정원 요원 등도 조사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의자가 아니다 보니 강제 수사도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춘천서 관계자는 “수사 초기 경찰서로 왔던 국정원 요원의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국정원장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넘어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관련법이 개정돼 원장 허락이 필요 없었다. 그런 식으로 국정원은 경찰 수사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 정치호 변호사의 가명을 알려주는 등 수사에 혼선을 끼쳤다”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의 유족은 유전자 감식 보고서, 부검감정서 부속 자료, CCTV 감식 보고서 등 아직 받지 못한 자료가 많다고 밝혔다. 유족은 이를 통해 수사기관을 신뢰하고 의혹을 해소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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