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에게는 자유가 없다. 전원 케이블에 속박되어 있다. 스마트폰도 정기적으로 자유를 빼앗긴다. 가전제품이 사용하는 에너지, 곧 전력은 전선을 통해서만 배달되기 때문이다.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여러 제품이 있다. 가전제품이 누리는 자유를 기준으로 보자면 현재 상용화된 제품들은 아직 수준 미달이다. 다들 정해진 위치에 정해진 시간만큼 자리해야 충전이 된다. 진정한 무선 충전이라면 사용 후 스마트폰을 탁자 위 아무 곳에나 놓아도 충전이 되어 사용자가 충전 여부를 아예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최근 이 수준에 가장 근접한 무선 충전 방식이 등장했다. ‘와이차지(Wi-Charge)’라는 이름부터 도발적인 회사에서 일정 공간 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전부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소개했다. 와이차지 시스템은 천장에 매달린 전력 공급 장치(터미널)가 전자 장비를 자동으로 인식해 적외선 레이저를 쏘아 충전한다. 방 안의 스마트폰은 천장을 바라볼 때마다 자동으로 충전된다. 여럿에게 동시에 적외선을 쏴서 충전할 수도 있다. 유선보다 조금 효율이 떨어지지만 수시로 충전할 수 있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사람이 의식하지 않는 동안 스마트폰 충전이 알아서 이뤄진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와이차지’는 천장에 매달린 전력 공급 장치(터미널)가 레이저를 쏘아 충전하는 방식의 무선 충전 기술이다.

이 시스템은 기존 무선 전력 송신 방식들의 단점을 모두 뛰어넘는다. 전원 케이블을 벗어나는 기존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게 바로 ‘자기유도 현상’을 이용한 방식이다. 흔히 전동칫솔에 사용되는 원리다. 효율도 좋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단점이 있다. 이 방식은 충전을 위해 전자 기기와 충전 단자가 서로 접촉하거나, 접촉이나 다를 바 없을 만큼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 전자제품은 여전히 충전 시간 동안 속박되어야 하고 사용자는 충전을 위해 특정 장소에 올려놓는 의도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자기 유도 방식은 애초 가전제품에 자유를 주려는 목적과 거리가 멀었다. 무선 충전 방식 덕에 전동칫솔이 자유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동칫솔은 자유를 갈망하는 전자제품이 아니다. 짧은 양치 시간에 세면대 앞에서만 편하게 움직이면 그만이다. 필요 전력이 크지 않아서 충전 효율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 다른 무선 충전 방식이 있는데, 바로 ‘자기 공진 충전 방식’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전력 송신단 쪽 자기장의 변화를 수신단이 감지한다는 면에서 자기 유도 방법과 같다. 송신단과 수신단을 공진 상태로 만들어서 훨씬 더 격렬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단순히 변화를 감지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진해서 반응하기 때문에 1~2m 정도 떨어져도 에너지 전달 효율이 크게 나빠지지 않는다. 이 정도 거리면 정해진 탁자 위 아무 곳에나 스마트폰을 올려놓아도 충전이 가능하다. 관련 기술은 개발되었다. 삼성전자는 2014년 소비자 가전 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CES) 때 탁자와 3m 떨어진 곳에서 충전되는 스마트폰을 시연한 적이 있다.

고작 몇 미터지만 이만큼의 거리가 주는 자유도는 엄청나다. 특히 기대되는 응용 분야가 전기자동차다. 길바닥에 송전 패드를 깔아 수시로 충전한다면 배터리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바닥과 자동차 사이 거리라면 자기 공진 방식으로 전기자동차를 수시로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선이 고정된 버스 같은 경우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충전이 가능해 장거리 노선 운행도 문제가 없다. 무선 충전 기술이 공공부문에 전기자동차의 도입을 훨씬 앞당기게 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실제로 퀄컴은 2015년 도로 위에서 전기자동차를 충전하는 기술을 시연했다. 퀄컴은 이러한 전기자동차 무선 충전 기술을 ‘헤일로(HALO)’라고 명명했는데, 주행 중에도 충전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기자동차가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디넷코리아바닥에 깔린 송전 패드를 통해 전기자동차 하단의 배터리가 충전된다.

자기 공진을 이용한 충전 기술은 이처럼 장점이 많지만 아직 양산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다. 안전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 인체에 전자파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거리에 적지 않은 에너지가 전달되고 그 매개체가 전자기장이라면, 충전 중에는 사람도 그 전자기장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된다. 충전에 필요한 자기장의 크기를 규제한다고는 하지만, 소비자들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기 자체가 받을 수 있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스마트폰 같은 정밀 통신기기는 다른 장비의 영향으로 오작동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스마트폰은 작은 부품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어서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부품이 의도치 않은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리스크 때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무선 충전 기술만은 보수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미 수년 전 관련 기술을 개발한 삼성전자도 2017년 출시한 갤럭시 S8에 자기 공진 방식이 아닌 자기 유도 방식을 채택했다.

갤럭시 S8은 자기 유도 방식 채택

안전에 관한 우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기존 무선 전력 송신 방식 중 세 번째인 ‘전자기파 방식’도 안전 문제 때문에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빛을 이용하는 것은 원격 에너지 송신 중 직관적으로 가장 명쾌한 방법이다. 빛은 무한히 직진하므로 먼 거리에 큰 전력을 전달하는 데에 적합하다. 이미 1960년대에 마이크로파를 안테나로 송수신하여 헬리콥터 같은 비행체를 띄우는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전성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큰 출력의 마이크로파는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

처음 소개한 와이차지 기술은 기존의 모든 방법이 지닌 단점을 하나하나 피해가는 묘수를 쓴 덕에 가정이나 사업장에 매우 적합하다.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먼 거리 송신이 가능함에 따라 무선 전력 송신의 범위가 넓다. 마이크로파가 아닌 적외선을 써서 유해성 논쟁도 비켜갔다. 특히 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퍼지는 효과도 없앴다. 효율적이되 안전성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이다.

이 동화 같은 기술적 진보에 남은 장벽은 비용밖에 없다. 물론 비용의 크기란 주관적이다. 사용자가 지출한 비용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면 문제가 안 된다.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갤럭시 S8용 자기 유도 방식 급속 무선충전기는 가격이 7만원 언저리다. 와이차지처럼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적외선 레이저를 쏠 수 있는 장비의 가격이 실제 얼마로 책정될지 자못 궁금하다.

모든 신기술이 그러하듯 새로운 가치 창출은 성공으로 이어진다. 앞서 전기자동차의 예처럼 무선 전력 송신이 전자제품에 전에 없던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이는 충분히 성공 요인이 된다. 배터리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들어 보이는 소형 웨어러블 장비에도 솔루션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선 전력 송신 시장은 아직 규모가 크진 않지만 성장세가 뚜렷하다. 많은 대형 전자회사들은 각자 자사에 유리한 표준을 정착시키기 위해 뭉친다. 여러 사업자들이 관련 기술과 제품 개발에 뛰어들고 그 덕분에 다양한 제품이 시중에 출시되고 있다. 와이차지 외에도 추후 어떤 동화 같은 기술이 등장해 무선 전력 송신 시장의 크기를 키울지, 어떤 업체가 시장의 지배자가 될지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다.

기자명 이진오 (〈밥벌이의 미래〉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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