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년 역사상 처음으로 기존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미국이 불확실한 장정에 들어섰다. 〈뉴욕 타임스〉는 문제의 아웃사이더가 이끄는 미국을 ‘낯선 신천지’라 묘사했다.

11월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분노한 저소득·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물리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그의 당선으로 그동안 오바마 민주당 정권이 추진해온 이민자 포용,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 케어, 자유무역협정,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유엔 기후변화협약 등 정책들이 흔들리게 생겼다.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또 트럼프는 현재 보수와 진보적 판사가 4대4로 팽팽한 연방 대법원의 공석(1석)을 보수 성향 법조인으로 채울 것이 확실하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모두 공화당에 접수되면서 급속한 우경화 조짐도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펜실베이니아 주 유세를 통해 취임 후 첫 100일 동안의 정책 수행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청사진에는 신규 연방 공무원 증원 동결, 규제 완화, 공직자가 퇴임하는 경우 이후 5년간 로비행위 금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에너지 부존자원 개발, 유엔 기후변화 관련 예산 취소 등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항목들이 제시되었다. 그뿐 아니다. 트럼프는 범죄 기록이 있는 불법 이민자 200만여 명을 추방하겠다며 불법 이민자 구제를 목적으로 한 오바마의 이민 개혁에도 제동을 걸었다.
 

ⓒAFP11월10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환담했다.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현실 앞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마치 ‘혁명 과업’을 완수하려는 듯 정권 인수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는 대통령 선거 다음 날, 정권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위원장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포함한 인수위 고위 참모들을 소집했다.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정권 인수를 위한 본격 시동에 들어갔다. 백악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건물에 마련된 그의 인수위는 분야별로 팀장 주재 아래 트럼프 취임 후 100일 안에 시행할 정책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한편, 4000개 이상인 고위직 인선 작업에 착수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CNN에 따르면 대략 100명으로 구성된 트럼프 인수위는 이미 오바마 행정부 내 22개 부처로부터 구체적인 인수 계획안을 제출받은 상태다. 현재 인수위는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20일 제45대 대통령 취임 이전에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항을 적게는 2쪽에서 많게는 20쪽에 이르는 메모 형태로 준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직에는 어떤 인물들이 기용될까? 통상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종료 2주일 안에 비서실장을 임명한다. 다른 각료들도 취임 이후 2주일 안에 인선을 마친다. 주요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급 후보에는 ‘창업 공신’이 많다. 능력 못지않게 트럼프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인선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CNN에 따르면, 인수위는 고위직 후보들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계정까지 알뜰히 뒤지고 있다.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사람을 심사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다.
 

ⓒAFP트럼프의 최측근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오른쪽)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트럼프 진영은 당초 인재난에 시달렸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전통적 노선과 배치된 주장을 쏟아내면서 상당수 정치인과 전직 관리, 정책 전문가 등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월 중순 이후 트럼프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클린턴과의 격차가 줄자 트럼프 행정부의 공직에 관심을 표하는 중량급 인사들의 전화와 이메일이 폭주했다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전한다.

현재 물망에 오른 인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인수위원장을 맡은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비롯해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등이다. 또한 상원 외교위원장인 밥 코커 의원, 인수위 부위원장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도 눈에 띈다. NBC에 따르면, 특히 코커 위원장은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더불어 국무장관 1순위에 올랐다. 국방장관 후보로는 제프 세션스 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국가안보국장을 지낸 마이크 플린 예비역 중장도 거론된다. 플린 중장은 국가안보보좌관에도 거명되고 있다. 프리버스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백악관 비서실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핵심 요직인 법무장관 후보로는, 트럼프가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선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유력한 가운데 법률가 출신인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크리스티가 법무장관에 기용되지 않을 경우 국토안보장관으로 유력하다는 얘기도 있다. 재무장관 후보로는 트럼프 캠프의 재정 담당 책임자를 지낸 스티븐 너친, 에너지장관 후보로는 석유 기업 ‘컨티넨털 리소시스’의 해럴드 햄 회장이 하마평에 올랐다. 교육부의 경우, 대선에서 중도하차한 뒤 트럼프를 지지한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가 거론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 글쎄?

트럼프는 정권 인수라는 중대한 작업 외에도 선거로 갈기갈기 찢겨진 공화·민주 양당 지지 유권자들의 마음을 치유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득표수 기준으로는, 클린턴이 47.7%(5992만여 표)로 트럼프의 47.5% (5969만여 표)보다 오히려 0.2%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득표수가 아니라 각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 수로 승패를 가르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화해와 단합을 호소했지만, 진정성은 미지수다. 유세 과정에서 트럼프·클린턴 두 후보는 물론이고 양측 유권자들 간 분열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첫 상징적 시험대는 클린턴과의 화해 여부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대선 텔레비전 토론 때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자신이 당선되면 특검을 통해 조사한 뒤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장인 켈리언 콘웨이는 CNN 인터뷰에서 특검 임명을 통한 조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11월9일 패배 시인 연설에서 “트럼프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나라를 이끌 기회를 주자”라며 지지자들에게 대선 결과에 승복하라고 촉구했다. 클린턴 지원에 나섰던 오바마 대통령도 “우리 모두 트럼프의 성공을 성원한다”라며 국민의 단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단합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포천〉은 “오랜 세월 공화·민주 양당을 분열시켜온 상호 불신과 반목을 단시일 내에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건 단합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때마침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분들께 함께 일하고 단합할 수 있도록 지도와 도움을 구하려 한다”라고 역설했다. 트럼프가 단합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한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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