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짜증이 심해진 게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냥저냥 지나쳐버렸던 일들이 요즘 새삼 의문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도 찜통더위와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른다.

일전 출근길에 본 여의도 벚나무 길의 물받이 터(가로수 아래 흙바닥)는 왜 그렇게 작은가. 이 더위에 어쩌다 쪼끔씩 내리는 빗물을 저 나무들이 얼마나 받아먹을 수 있겠는가. 그 규격에도 나름 기준이 있는 것일까 너그럽게 생각해보지만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아스팔트의 도시 서울의 모든 가로수 물받이 터가 터무니없이 좁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과민인가.

자주 들르는 스포츠센터 건물의 현관문 앞에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왜 갑자기 고급 승용차들의 주·정차가 많아졌던 것일까. 정장을 한 운전자들까지 얼찐거려서 일반 승용차의 지하주차장 진입에 여간 방해되는 게 아니었다. ‘고관대작’들이 무더기로 그 대형 건물에 사무실을 냈던 걸까. 사무실은 그전에도 있었으되, 그 주인들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일까. 오비이락인지 그 건물은 그 후 큰 공사를 벌여 진입 공간 자체를 넓혔다.

목하, 인구에 회자되는 ‘김영란법’은 용기 있게 탄생한 ‘A급 법안’이라 생각하며 박수를 보냈는데, 정작 입법기관인 국회는 왜 그걸 ‘C급 법안’으로 타락시켰을까. 원안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는데, 국회는 거기에 손을 댔지.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을 주물렀지. 직선이던 ‘원칙’이 ‘구불구불 엿가락’으로 바뀌었지. 왜 그랬을까. 이완구라는 사람이 내비쳐 드러났던 ‘기자들, 니들도 당해봐라’, 그것이 전부였을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직사(直射)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데도 가해자 수사가 시작조차 안 된 마당에, 같은 사건의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구속, 기소, 공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5년 중형이 선고된 것은 왜일까. 공천 정국 때, 여당 쪽 공심위원장은 왜 텔레비전에 비칠 때마다 귀신 본 얼굴이었을까. 어디서 무슨 귀신을 정말 본 것일까. 여야 의원들은 도탄지경의 민생을 외면하고 왜 개헌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이나 제대로 한번 시행해보지도 않고 왜 그러는 걸까. ‘안보’는 잘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보수 정권(실체는 극우)이 들어서면 왜 국민은 안보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열거하다 보니 짜증과 의심만 더 커진다. 여기서 중단하라는 신호다. 단, 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하나, 백민주화씨와 백도라지씨는 이 상황에서 어쩌면 그렇게 의연하고 논리적일 수 있을까(개인적으로 나는 ‘진실’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 힘의 원천이라 믿는다). 둘, ‘세월호’ 엄마와 아빠들의 그 자제력과 한결같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그 무엇이 자식 사랑을 대체할 수 있으리오).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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