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며 두려워한다.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말한다. 지식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자본이자 권력으로 여긴다. 2016년에는 꽤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1965년, 1980년, 1990년에 이런 주장을 했다면?

지난 6월27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향년 87세로 삶을 마감했다. 그가 아내 하이디 토플러와 공동 저작한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 시리즈는 30여 개 나라에서 번역됐고 각각 1500만 부 넘게 팔렸다. 미국의 격월간지 〈마더 존스〉는 2012년 토플러 부부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 커플”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의 저서는 좌파와 우파,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1970년에는 미국의 경영연구소 매킨지 재단으로부터 ‘최고의 경영서적상’을 받았고, 1986년에는 옛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로부터 조언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중국의 톈안먼 혁명을 이끈 개혁주의자들에게 〈제3의 물결〉은 ‘성경’으로 불렸다. 미국 공화당 전 하원의장인 뉴트 깅리치 역시 1995년 모든 국회의원에게 토플러 부부의 저서를 필독서로 권했다.

한국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의 팬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었던 2001년 앨빈 토플러에게 조언을 구해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받았다.

앨빈 토플러는 1928년 10월4일 뉴욕에 거주하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6년 뉴욕 대학 영문과에 진학해 저술 파트너이자 편집자, 인생의 동반자가 될 하이디 패럴을 만났다. 앨빈과 하이디는 1950년 결혼한 뒤 산업시대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자 5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1962년 앨빈 토플러는 컴퓨터 회사 IBM에 고용돼 컴퓨터가 사회·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프린터 회사 제록스, 통신사 AT&T 역시 그에게 연구를 부탁했다. 그가 컴퓨터 기술의 발전 속도와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공부하게 된 계기였다. 앨빈과 하이디 토플러는 1965년부터 ‘미래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970년 〈미래의 충격〉을 출판했다.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기자 경력도 한몫했다. 1960년대부터 앨빈 토플러는 노동조합 신문기자, 펜실베이니아 지역 일간지, 백악관·국회 출입기자, 경제 전문지 〈포천〉 칼럼니스트를 거치며 저술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동 분야 전문 칼럼을 썼고, 이후에는 경영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그의 저서는 ‘정보화 시대’ ‘정보 과잉’ 같은 단어들을 널리 퍼뜨렸다. 소비자가 동시에 생산자가 된다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이도 토플러 부부다.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DIY 가구 기업 이케아의 등장으로 프로슈머는 현실로 다가왔다. 프로슈머는 새로운 시장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토플러 부부의 예측이 틀린 경우도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세계 국가의 4분의 1만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중국까지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면서 시장경제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2010년 미국 공영 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미래학자는 무엇이 ‘될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능한지’ 질문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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