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책임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왔고,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6월29일 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에서 정치사회학의 거두 막스 베버를 인용했다. 리베이트 의혹으로 당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베버가 말한 정치인의 책임윤리를 다하기 위한 결단이 곧 사퇴라는 의미였다. 그는 ‘막스 베버의 책임윤리’라고 메모한 종이를 들고 회견장에 들어왔다.

이 장면은 보기보다 의미심장하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한 이후, 정치인 안철수가 5년 동안 보여준 정치 궤적을 관통하는 단서가 이 장면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다만 당사자가 보여주려 했던 방향과는 다른 단서다. 결정적인 문제는 베버가, 그리고 안 전 대표가 사용하는 ‘정치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연합뉴스

베버는 책임윤리라는 개념을 ‘정치인으로서 결과를 감당하는 자세’라는 의미에 가깝게 사용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베버는 이렇게 썼다. “책임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인간의 평균적 결함을 고려하고, 자기 행위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책에 실린 해제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책임윤리를 이렇게 해설한다. “사건의 전체 구조와 맥락에서 행위자(정치가)가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하는 판단력과 사려 깊음을 뜻한다.”

“안철수는 베버를 잘못 읽었다”

정치가는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식의 대의를 품는다. 베버의 개념으로 바꾸면, ‘신념윤리’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좋은 대의를 추구하는 정치가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정치가는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직업이다(책임윤리). 그러므로 유능한 정치가는 자신이 품은 대의에 도달하는 길을 현실에서 찾아내는 과업을 스스로 짊어진다. 이런 보기 드문 정치가를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키는 정치가라고 부른다.

베버가 인용된 6월29일 기자회견에서 정작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정치가의 책임이란 ‘결과를 이루어내야 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라는 접근법은 온데간데없다. 그 자리는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라는, ‘감투’를 내던지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는 통속적인 접근법이 채웠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번역한 박상훈 박사(정치학)는 알기 쉽게 말했다. “베버를 잘못 읽었다.”

이 오독은 보기보다 더 이상한 사건인데, 안철수 전 대표 본인이 이미 정론에 가까운 베버 독법을 제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리더는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과를 잘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죠. 독일의 정치철학자인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신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뜻이지요.” 2012년의 그는 ‘결과를 이룰 책임을 감당하는 자세’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6년에는 아니다.

이는 단순한 오독을 넘어선다. 2012년의 말과 2016년의 말, 둘의 차이는 정치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 차이를 함축한다. 다음 단서는 이 대목에 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왔고.”(2016 사퇴 기자회견)

ⓒ시사IN 이명익2012년 11월23일 안철수 후보는 선거캠프에서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는 전에도 비슷한 표현을 한 적이 있다. 2015년 12월6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앞두고 ‘최후통첩’ 성격의 기자회견을 할 때다. 당시 그는 “저에게는 고통스럽고 힘든 선택이었지만 기꺼이 그렇게 했고,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져왔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이번 사퇴 기자회견의 발언과 판박이다. 2015년 당시에 안 전 대표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7·30 재보선에서 4대11로 패배한 바로 다음 날에 안철수 대표는 곧바로 책임지고 대표직을 던졌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는 재보선을 연전연패하고도 왜 대표직을 붙들고 있나. 책임져야 하지 않나.” 책임을 질 사건의 성격이 선거 패배에서 리베이트 의혹으로 달라졌을 뿐, ‘안철수는 사퇴로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 주제 문장이다.

안 전 대표와 그 주변에서는 왜 ‘사퇴=책임’ 등식이 성립하는 것일까. 베버로 돌아가면, 정치가의 책임은 신념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감당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사퇴는 이런 의미의 책임과는 거의 정반대에 있다. ‘사퇴=책임’ 등식의 기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 꽤 보편적인, 정치인의 권력과 지위를 감투로 이해하는 통념에서 이 등식은 정확히 성립한다. 사퇴는 감투를 내려놓는 것이니 큰 희생이고, 그러므로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된다.

권력을 운용하는 자리를 감투로 이해하는 한국의 정서는 워낙 뚜렷해서 이미 반세기 전에 미국인 관찰자의 눈을 잡아끌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외교관이자 한국학 연구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1968년에 내놓아 이제는 고전 반열에 오른 책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서 한국 정치의 독특한 특성을 묘사했다. 성곽도시, 봉건영주, 상인사회, 길드, 계급집단 등 ‘국가와 맞설 수 있는 사회적 중간집단’을 거의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사의 특징 때문에, 한국인들은 국가와 개별적인 관계를 맺고 ‘국가 중심부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서로의 서열을 매긴다. 그래서 극도로 구심력 강한 소용돌이, 권력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강한 중심지향성이 등장한다고 헨더슨은 주장했다.

ⓒ시사IN 이명익2014년 7월31일 재·보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했다.

감투를 버리는 것을 책임지는 것으로 오해

이 소용돌이형 세계관에서 공직은 책무나 소명이라기보다는 우선 감투가 되고, 더 높은 공직일수록 더 큰 감투로 간주된다. 정치란 최고의 감투, 즉 대통령이라는 중심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오로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뚜렷한 현상이기는 하다. 헨더슨은 이렇게 비교했다. “한국인은 관직과 권력이 곧 사회적 계급을 결정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인은 대통령을 국가 통치권자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미국인은 대통령을 행정기능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제 2012년 〈안철수의 생각〉과 2016년 대표 사퇴 기자회견문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전자가 ‘베버의 세계’라면 후자는 ‘감투의 세계’다. 베버의 세계에서 책임지는 방식은 감당하는 것이고, 감투의 세계에서 책임지는 방식은 내려놓는 것이다. 정치가의 사퇴란 베버의 세계에서는 꼴사나운 뒷걸음질이다. 하지만 감투의 세계에서는 숭고한 희생이다. 언론은 이번 사퇴에 ‘여섯 번째 철수’라는 별명을 붙였다. 안철수 전 대표의 길지 않은 정치 이력 내내 거듭된 사퇴를 누군가는 책임지는 자세로 보고 반대로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본다. 책임진다는 개념을 ‘감당할 책임’으로 보는지 ‘권한을 내려놓음’으로 보는지에 따라 판단은 극적으로 갈린다.

2016년 안철수의 오독은 이렇게 해서 정치를 보는 관점의 뿌리까지 내려가는 문제가 된다. 민주주의 체제는 어떤 관점을 더 선호할까. 베버를 번역했던 박상훈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퇴로 책임을 진다는 발상은 자리·지위·권력이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민주주의의 권력관이 아니다. 민주주의자에게 권력이란 자기 소유물이 아니라 어떤 과업을 해내겠다고 약속하여 주권자에게 위임받은 힘이다. 그렇기에 권력은 감투가 아니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다.”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는 정치가가 베버의 윤리에 구속될 것을 요구한다.

감투의 세계관에서 사퇴는 분명 희생적인 행동이다. 이 세계관에서 정치란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감투를 향해 가는 여정이고, 사퇴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희생이다. 안 전 대표의 거듭된 사퇴를 정략적 꼼수로까지 해석할 이유는 없다. 그는 정치적 계산을 한다기보다는 진심을 담은 결단을 고통스러워하며 내리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감투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한, 그는 진심일수록 더욱더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와 멀어지게 된다. 정치인 안철수의 5년을 내내 따라다닌 역설이다.

ⓒ사진공동취재단2015년 12월13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했다.

어쨌든 한국의 여론은 정치적 지위와 권력을 감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직을 사퇴하는 정치를 좋게 보는 정서가 만만치 않다. 안철수 전 대표가 사퇴 카드로 상황을 일거에 뒤집지는 못했지만 대선 레이스에서 아예 탈락했다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검찰 수사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는 한 그가 부활할 가능성은 제법 높다. 안철수표 정치는 평균적 한국인의 정치관과 큰 무리 없이 만나기 때문에 주인공이 누가 되었든 끈질기게 되돌아온다.  

이 세계관에서 정치란 감투를 추구하는 것이어서 선망과 환멸을 동시에 자극한다. 감투에 접근할 가능성이 보이면 선망하고 전망이 어두울수록 혐오하기 쉽다. 보통의 주권자는 접근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정치혐오는 매력 있는 상품이 된다. 이 혐오스러운 지위를 내려놓는 초연함 또한 사랑받기 쉬운 태도가 된다. 이 와중에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는 증발한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적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2012년 9월의 대선 출마 선언문을 다시 꺼내 읽는다는 말을 종종 했다. 대선 출마 선언문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가 이 ‘감당한다’는 말을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로 다시 해석할 때, 5년을 따라다닌 역설이 해소될 길도 열릴지 모른다.

ⓒ연합뉴스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왼쪽) 공동대표가 리베이트 의혹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동반 사퇴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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