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은 내가 〈시사IN〉 기자가 된 날이다. 하필이면 만우절. 1년 전 그날, 친구들은 “너의 합격은 거짓말이 분명하다”며 출근 직전까지 날 긴장시켰다. 다행히 만우절 장난은 아니었다. 4월은 ‘처음’으로 가득했다. 첫 출근, 첫 인사, 첫 교육, 첫 회식.

첫 현장은 팽목항이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사고 해역을 방문하는 가족들과 동행했다. 배에는 취재진 반, 가족들 반이었다. 단원고 2학년4반 임경빈군 아버지가 유난히 조용히 서 있는 한 공중파 방송 카메라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가만히 있네. 우리한테 잘못한 게 많아서 그렇겠지. 저렇게 눈치 보는 기자는 되지 마라. 욕먹을 게 무서워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시사IN 양한모

솔직히 그날 나 역시 눈치를 보고 있었다. 2014년 4월16일에 나는 독자였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어떻게 일반명사가 되는지 내내 지켜봤다. 14일차 수습기자가 취재한답시고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할까 봐 무서웠다. 사실 가족들에게 물어볼 것도 많지 않았다. 심정이 어떤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가장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 미수습자 완전 수습, 온전한 선체 인양이라고. 그 외침을 한 번도 들은 적 없다는 듯이 새삼 다시 물어보자니 염치없고 죄송했다.

그럼에도 ‘물어볼 건 물어보는 게’ 기자의 일이었다. 아무리 외쳐도 책임자들과 방관자들에게 닿지 않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눈치 보는 기자는 되지 말자.’ 그렇게 앞으로 ‘기자질’을 하는 동안 마음에 되새길 초심이 생겼다. 내친김에 질문했다. 내년 4월16일에는 가장 달라졌으면 하는 게 있다면? “우선 배 건지고. 시행령 제대로 하고.”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나빠졌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경제 좀 나아지고.”

1년이 지나 다시 4월이다.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중에 이루어진 것이 없다. 304명을 살리지 못했던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자 “살려달라”며 무릎을 꿇는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제대로 된 구조를 했다면, 그때 배를 탔던 단원고 학생들은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했을 것이다. 다시는 누군가의 ‘처음’이 무심히 빼앗기지 않도록 대한민국은 2년간 무엇을 했나.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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