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컨테이너 건축은 어떻게 도시를 점령했나?


컨테이너 건축 1인자의 역발상 건축학

 

‘도시를 담는 유쾌한 그릇’이라는 의미의 ‘얼반테이너’로 회사 이름을 지은 백지원 대표는 한국 컨테이너 건축의 개척자다.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시작으로 네이버 앱스퀘어, 국립극단 휴게공간 등 국내 주요 컨테이너 건축물을 설계했다. 지난해 완공한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는 가장 ‘힙’한 공간으로 주목받는다. 올해는 거대한 컨테이너 리조트를 건설 중이다. 컨테이너 건축물로 3대 디자인상을 수상한 그에게 컨테이너 건축의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컨테이너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대학 은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역사 최고의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아느냐? 세종대왕이다. 백성을 위해 글자를 디자인했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디자인이다. 건축가도 국민을 위해 집을 디자인하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것이다.” 이후 ‘유용한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건축을 고심하다 그 연장선에서 이 부문에 뛰어들게 되었다.

건물주에게 컨테이너로 만든 건물을 제안하면 선뜻 허락하던가?
몇 번 설계를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만드는 즐거움은 보편적 행복에 해당하는 가치다. 그 즐거움을 돌려주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컨테이너를 레고블록처럼 활용해서 어떻게 건물을 구성해가는지 보여주면 다들 재미있어 했다.

컨테이너 설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건축가의 역할이 바뀌었다. 단지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가치를 설계해야 한다. 멋진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어떻게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어떻게 문화의 자생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시사IN 조남진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지은 백지원 얼반테이너 대표는 한국 컨테이너 건축의 개척자다.

컨테이너로 지은 건물은 임시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난 1000여 년 동안 건축가들은 인류의 유산이 될 대단한 건물을 만들려고 욕망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남김 없는 건축’이 화두가 될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고도성장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런 유토피아의 시대에는 건축도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디스토피아의 시대다. 지금 건축의 화두는 생존이다. 최소한의 건축을 모색할 때인 것이다.

컨테이너 건축의 장점은 무엇인가?
디자인을 빠르게 적용시킬 수 있다.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이 높다. 모든 건물주의 요구는 결국 ‘싸고 빠르고 좋게’ 지어달라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를 만족시킬 수 있다. 공장에서 만든 기판을 조립해서 짓는 것을 ‘모듈러 건축’이라고 하는데, 컨테이너 건축은 이것의 ‘끝판왕’이다. 응용도 무한대다. 남극기지나 북극기지는 물론 우주정거장에까지 응용된다.

건축 재료로서 컨테이너의 특징이라면?
해운용 컨테이너는 인류가 만들어낸 공간체 중 가장 가볍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재료다. 3t 무게로 300t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고 내구성도 높다. 화물선에 9층 높이로 쌓아서 파도를 헤치고 적도와 극지방을 돌아다닌다. 단열이나 결로 등의 문제는 이미 기술적으로 해결되었다. 대규모 건물을 지을 때는 컨테이너로 둘러싼 공간을 만들어 에어큐브가 되게 하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넓은 공간도 확보할 수 있다.

응용할 여지가 매우 커 보인다.
특히 공공 부지에서 효율적이다. 개발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기 때문이다. 도시개발의 프레임도 바꿀 수 있다. 예전에는 도시계획에서 마스터플랜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있는 도시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숙제다. 여기에 컨테이너 건축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소셜 벤처사업가들을 두루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시의 화두 중 하나가 ‘상권이 쇠락한 구도심을 어떻게 활성화하느냐’는 것인데, 이에 컨테이너 건축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원주택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재미있는 상상이 가능하다. 독신일 때는 컨테이너 한 칸만 가지고 짓는다. 결혼을 하면 또 한 칸을 들이고 아이를 낳으면 또 한 칸을 올리는 식이다. 돈이 마련되는 대로 한 칸 한 칸 늘리는 것이다. 얼반테이너 본사를 외곽으로 옮기면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건축가로서 꿈은 무엇인가?
건축계의 이케아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케아 가구를 넣을 수 있는 이케아식 컨테이너 조립주택을 만들 것이다. 누구든 쉽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공법을 오픈소스 방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도시에서는 땅이 없어서 어렵겠지만 지방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돈이 안 되겠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더 어려운 숙제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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