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컨테이너 건축은 어떻게 도시를 점령했나?


컨테이너 건축 1인자의 역발상 건축학

 

 

‘가난’ ‘화재에 취약’ ‘위험한 가설물’…. 기성세대가 컨테이너 건축물에 갖는 인상들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쿨하고 힙하며 세련되었다!’

젊은이들에게 컨테이너 건축물은 새로운 문화의 베이스캠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대 간 경험의 차이 때문일 터이다. 기성세대가 주로 접하는 컨테이너는 공사장 임시 사무실이거나 전원주택의 창고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는 컨테이너는 훨씬 세련된 공간이다. 서울지하철 건대입구역 커먼그라운드처럼 요즘 가장 잘나가는 쇼핑몰,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 등 최신 유행 상품의 론칭쇼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빌리지 같은 해변의 멋진 야외 사무실….

사실 컨테이너의 재질이 다르기도 하다. 공사장에서 임시 사무실로 사용되는 내수용 컨테이너의 품질이 크게 좋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해상 운송에 쓰이는 컨테이너의 경우, 국제규격(ISO 688)에 따라 일정한 내구성은 물론 바닷물과 해풍에 견딜 수 있도록 도장되어 있다. 이런 컨테이너를 사용하면 건물의 질감이 달라진다.

해외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컨테이너 건축물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 동부의 ‘박스파크’는 유명 브랜드와 지역 디자이너의 공예품을 판매하는 팝업 쇼핑몰로 지역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컨테이너 파크’라는 가족 테마파크가 영업 중이다. 스페인 세비야의 크루즈 여객터미널은 컨테이너로 건축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큐빅 암스테르담’ ‘키트우먼’이라는 학생들의 컨테이너 기숙사가 있다. 컨테이너로 거의 모든 형식의 건물이 만들어진다.

ⓒ시사IN 신선영서울 광진구의 쇼핑몰 ‘커먼그라운드’(위)는 컨테이너 건축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컨테이너 200개를 사용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 쇼핑몰이다.

국내 컨테이너 건축의 기점은 서울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라고 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해운대 야외 사무실인 ‘비프빌리지’도 유명하다. 매년 새로운 모양의 구조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영화팬들에게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려왔다. 이 외에 경기도 안양의 ‘오픈스쿨’, 인천 송도의 ‘오션스코프’ 등이 주요 컨테이너 건축물로 꼽힌다.

일반인에게 컨테이너 건축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준 건물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 쇼핑몰(컨테이너 200개 사용)인 커먼그라운드다. 지난해 서울 건대입구역 부근에 들어선 커먼그라운드는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지상 3층의 2개 동, 연면적 5280㎡(1600평)인 커먼그라운드에는 73개 브랜드가 입점했는데, 최근 문을 연 쇼핑몰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다.

빠르게 진화하는 컨테이너 건축 기술

커먼그라운드는 특히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 젊은 이용자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인스타그램 명소’가 되기도 했다.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가장 쓸쓸했던 상권을 살려냈다. 커먼그라운드 마당에서 푸드트럭 ‘김치버스’를 운영하는 류시형 셰프는 “이곳 마당에서 매점으로 시작해 자리를 잡은 다음, 부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임차료가 올라 옮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젊은 층의 문화 트렌드로 급부상한 컨테이너 건축물은 올해부터 더욱 대중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 프로젝트에 컨테이너 건축이 본격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 창동역 복합문화공간 ‘창동61’, 서울숲 인근의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터 공간인 ‘언더스탠드 에비뉴’ 등은 컨테이너 수십 개를 조립한 대형 건물로 설계되어 있다.

창동역 공영주차장 부지의 ‘플랫폼 창동61’ 건축 현장에 가보았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컨테이너 61개를 차곡차곡 혹은 교차해서 쌓아놓았다. 컨테이너들의 색채가 각기 달라, 멀리서는 레고블록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서울시와 도봉구는 창동에 ‘서울아레나’ 공연장을 만들어 공연예술의 메카로 육성할 계획인데, 플랫폼 창동61은 그 선봉장 구실을 맡게 된다.

플랫폼 창동61의 ‘컨테이너 생태계’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서울 동북부의 ‘문화 중심지’로 견고하게 계획되었다. 부문별 아트디렉터들이 입주자를 선택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최현석 셰프가 푸드디렉터, 기타리스트 신대철씨는 뮤직디렉터, 사진가 조세현씨가 포토디렉터, 스타일리스트 김소연씨는 패션디렉터로 선정되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창동역 주차장 부지에 세워진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61’은 2월 완공될 예정이다.

큼직큼직한 원색 컨테이너들이 쌓이면서 창동역 주차장은 무채색에서 유채색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플랫폼 창동61을 설계한 이순석 건축가는 “침체된 공간에 활기를 넣고 싶어서 색을 화려하게 썼다. 재미있는 것은 컨테이너 옆면의 주름을 따라 색의 간섭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색이 빛에 의해 진해지거나 옅어지기도 하고 색끼리 서로 간섭하기도 한다. 컨테이너 건축만의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창동61과 비슷한 시기에 완공될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컨테이너 건축물은 서울숲 인근에 들어설 ‘언더스탠드 에비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와 함께 ‘사회적 약자 자립과 창조적 공익 공간 조성’을 위해 만든 이곳은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이라는 느낌이 잘 살아 있다. 기다란 컨테이너들이 포개져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같은 컨테이너 건축 실험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각종 건축상과 디자인상도 받았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이에 필요한 건물 형식으로 컨테이너를 선호하기도 한다. 20대를 위한 오페라하우스 콘셉트로 지어진 옥타곤은 요즘 강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으로 꼽힌다.

컨테이너 건축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앞선 편이다. 특히 일본은 컨테이너 내부에 냉난방 시설, 화장실과 주방 등 설비를 설치하는 데 첨단이다. 중국은 컨테이너로 30층 건물을 2주 만에 세울 수 있는 나라다.

건축가들은 컨테이너 건축의 장점으로 모듈화(주택의 각 부분을 공장에서 표준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 짧은 공사 기간, 견고성, 유연성, 친환경 등을 꼽는다. 공정의 80% 정도가 공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건물을 세울 때는 소음·분진 등으로 인한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목공·미장 등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 건축비용 역시 낮출 수 있다.

컨테이너 건축업에서 가장 큰 장벽은 각종 규제다. 이런 규제들이 대부분 내수용 컨테이너(공사장의 임시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는)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해상 운송용 컨테이너는 내수용보다 견고하고 훨씬 내구성이 좋은데도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건축비가 증가하면서 채산성이 크게 떨어져버린다. 컨테이너 건축의 대중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이순석 건축가는 “포스코에서 주택 소재로 컨테이너를 개발하려다 포기한 이유도 이런 규제 때문이다. 규제를 충족하려면 여러 가지 보강 시설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경제성이 맞지 않는다. 반면 선진국은 국제 규격을 갖춘 해운용 컨테이너는 신뢰하는 편이다. 우리도 이에 맞춰 규제를 완화한다면 다양한 건축용 컨테이너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택난’도 컨테이너 건축이 해결해줄까

재활용 브랜드 프라이탁의 스위스 본사 매장 건물은 컨테이너 9개를 화물선처럼 늘어놓은 형태다. 일본도 5층 정도의 컨테이너 건물은 별도의 보강장치 없이 쌓아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국립극단의 휴게공간도 컨테이너 건축이다. 컨테이너로 거의 모든 형식의 건물을 만들 수 있다

건축업에서 컨테이너 건물은 일종의 혁신이기도 하다. 주택의 개념을 바꾸고, 이에 따라 기존 주택의 형태에서는 불가피한 사회문제를 여럿 해결할 수도 있다. 커먼그라운드를 설계한 얼반테이너 백지원 대표는 컨테이너 건축의 역사적 의미를 “‘건물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부동산 가치 체계에서는 땅을 가진 사람도 각종 리스크 때문에 건물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건물을 짓고 싶은데 땅이 없어서 건물을 못 짓는 경우도 많다. 컨테이너 건축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커먼그라운드의 경우에도 지주와 건물주가 다르다. 임차 기간이 끝나면 건물주는 컨테이너를 뜯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시설의 80%는 재활용이 가능하고, 이동 기간도 한 달 내외로 짧다.

주택 문제 해결에도 컨테이너 건축이 기여할 여지가 있다. 요즘 세계적인 화두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하우스(작은 집)다. 선진국에서는 이를 위한 입법도 적극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컨테이너 건축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해외에서는 이미 컨테이너를 1000개 이상 사용한 기숙사가 들어서 있다. 얼반테이너 백지원 대표도 요즘 컨테이너를 활용해 작은 개인 공간(방)에 넓은 공유 공간(거실·부엌·욕실 등)을 결합시킨 쾌적한 청년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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