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연재되는 장정일 시인의 ‘독서일기’와 내 ‘독서한담’은 책에 대한 이야기야. 장정일 시인의 ‘독서일기’는 대체로 지식인들을 독자로 삼은 듯하고, 내 ‘독서한담’은 그야말로 재래시장의 대폿집에서 술친구들에게 늘어놓는 잡담에 가깝지만, 둘 다 책에 대한 이야기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전문적으로, 시간적·주제적 체계를 잡아서, 비평적 안목으로, 책이 나온 배경까지를 톺아가며 쓴다면 어떤 학문 장르가 될까? 지성사(학)(intellectual history)라는 분야가 될 거야. 더 헐렁하게 잡으면 지식사회학(sociology of knowledge)이 될 수도 있겠지.

ⓒ이지영 그림

지성사는 말 그대로 지성의 역사, 책들을 낳고 책들이 낳은 사상과 정신의 역사야. 그러니까 지성사 책에는 수많은 책과 저자들이 언급돼. 좋은 지성사 책을 온전히 읽는 방법은 그 책에서 거론된 책들을 다 읽은 뒤에 읽는 거야. 그러면 개별적으로 접한 책과 사상들의 맥락을 훤히 알게 되지. 그렇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지성사 책에 거론되는 책들을 다 읽은 상태가 아니야. 그렇다면 지성사 책을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진 않아. 우리는 먼저 지성사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 저자들과 책들을 나중에 읽을 수도 있어. 사실 지성사 책을 읽고 나면, 거기 거론된 책들을 읽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책들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감이 와. 물론 그건 그 책을 쓴 지성사학자의 학문적·이념적 입장에 종속되는 셈이긴 하지만, 독서라는 여행을 하는 데 아무런 지도가 없는 것보다는 좀 낡았거나 부실하더라도 지도가 있는 편이 훨씬 낫지. 그러니까 지성사는 책들과 사상을 우선은 통시적으로, 더불어 공시적으로 그려놓은 지도야.
물론 개별적 학문의 역사도 지성사에 속하지. 예컨대 경제학사나 수학사나 철학사 같은 것들 말이야. 그렇지만 이런 개별적 지성사들은 정신과 사상의 맥락을 드러내는 데는 다소 허약해. 그래서 보통 지성사라고 하면 몇몇 인접 학문들의 역사가 지니고 있는 맥락을 탐구하기 마련이야. 가장 완벽한 지성사라면, 세상 모든 학문의 통사를 탐색하면서 사상과 정신의 진화를 거대한 맥락 속에서 살펴보게 되겠지. 그렇지만, 그 일은 어떤 위대한 연구자에게도 불가능할 거야. 혹시라도 언젠가 인공지능이 나와서 지성사학자의 역할을 빼앗는다면 그런 작업도 가능하겠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지성사 책은 시간과 영역을 정하고 그 안에서 나온 책들을 섭렵하며 사상과 정신의 계보를 드러내.


오늘은 그 지성사 책들 가운데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책 셋을 소개하려 해. 스튜어트 휴즈(1916~1999)라는 미국 사람이 저자인 그 책들의 제목은 〈막다른 길〉(The Obstructed Path), 〈의식과 사회〉(Consciousness and Society), 〈지식인들의 망명〉(The Sea Change)이야. 이 책들의 한국어판은 1980년에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해적판으로 나왔다가 절판됐는데, 개마고원 출판사가 원서 출판사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2007년에 새로 냈어. 1980년대에 이 책들을 처음 접했을 때의 흥분이 지금까지 남아 있네. 내가 이 가운데 처음 읽은 것은 1890년께부터 1930년께까지 서유럽 사회사상을 재해석한 〈의식과 사회〉야. 셋 가운데 가장 두툼한 책이기도 하지. 뒤르켐, 파레토, 크로체, 소렐, 베르그송, 프로이트, 융, 딜타이, 미헬스, 그람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저술가들이야. 그 빛나는 이름이야 진작 들어봤지만, 이들의 저서 가운데 그때까지 내가 읽은 것은 한 움큼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 〈의식과 사회〉를 읽으면서 저자들과 책들과 사상들의 맥락이 또렷이,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아무튼 잡혔어. 그때의 희열이란! 나는 그때 초짜 기자로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공인 언어학 책에 치여 살다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어. 〈의식과 사회〉가 다루고 있는 이들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그람시밖에 없지만,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프로이트주의, 독일 관념론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야. 대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다루지.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도움으로 20세기의 첫 세대 일급 사회이론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살필 수 있어.
〈막다른 길〉은 1980년대에 해적판으로 나왔을 때는 한국어판 제목이 〈현대 프랑스 지성사〉였어. 책의 부제가 ‘프랑스 사회사상, 그 절망의 시대 1930~1960’이니 〈현대 프랑스 지성사〉라는 제목이 한국인 독자들에게 더 쏙 들어오기도 했겠지. 부제가 가리키듯, 이 책은 유럽에서 파시즘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제5공화국 출범 직후까지의 프랑스 사회사상을 다루고 있어. 이 책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마르탱 뒤가르, 베르나노스, 생텍쥐페리, 말로 같은 문인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거야. 그것은 이 시대의 프랑스 지성사에 끼친 문학의 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르트르는 사실 본업인 철학에서보다 문학에서 더 큰 업적을 내기도 했고, 카뮈 역시 사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지.


유럽 4개국 지식인들을 주로 다루게 된 까닭


〈지식인들의 망명〉은 그 부제인 ‘사회사상의 대항해 1930~1965’가 시사하듯, 파시즘을 피해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망명한 지식인들을 다루고 있어. 그 4장인 ‘대중사회 비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저자의 제자인 마틴 제이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펴낸 〈변증법적 상상력〉의 밑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지. 〈변증법적 상상력〉은 스튜어트 휴즈의 지성사 3부작보다 외려 먼저 해적판으로 한국 독자를 만났는데, 지금은 품절돼서 찾기 어려워. 〈지식인들의 망명〉은 예상할 수 있듯 파시즘을 비판한 학자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반파시즘 담론이 주제는 아니야. 제2장 ‘영국의 철학:대이주의 서곡’의 주인공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파시즘을 피해서 영어권으로 이주한 학자들을 한 묶음으로 처리했지.


이 세 책을 읽고 나면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유럽 지성사의 전모를 파악하게 돼. 이렇게 말하면, 유럽을 너무 좁게 잡는 것 같겠군. 아무튼 이 책들의 등장인물은 미국이나 영국으로 망명해 국적을 바꾼 사람을 포함해서, 거의가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사람들이야. 유럽이 이렇게 네 나라로 축소된 것은 스튜어트 휴즈의 이력과도 관련 있는 것 같아. 휴즈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프랑스제국 경제의 위기 1810~1812〉라는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파리에 머물렀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하이델베르크와 뮌헨에서 공부하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정보 장교로 근무하기도 했지. 그가 모국어인 영어만이 아니라,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에 능숙했다는 것은 이 책의 미주(尾註)를 보면 알 수 있어. 휴즈의 학문 외적 이력이 그의 학문에 간섭했다고도 할 수 있다는 뜻이야. 이것은 소위 지식사회학적 관점이지. 지식사회학은 지식이 사회(적 요인)의 소산임을 전제하거든. 노동운동(마르크스주의)과 양차 세계대전(제국주의·파시즘·반파시즘)과 인간의 왜소화(정신분석학) 같은 사회적 요인이 아니었다면, 스튜어트의 지성사 3부작은 나오지 않았을 거야. 더 들어가서, 이 3부작 자체가 지식이 사회(적 요인)의 소산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등장인물들의 전기적 사실에 관심을 준다는 점에서, 스튜어트의 이 책들은 지성사만이 아니라 지식사회학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어. 게다가 이 3부작에서 휴즈가 보여주는 문체는 번역이라는 장막을 뚫고서 화사함을 한껏 뽐내. 이 책들에 한번 취해보고 싶지 않아?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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