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JYP엔터테인먼트는 ‘JYP 색깔은 유지하되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걸그룹’을 찾았다. 4인조 그룹 미쓰에이 이후 5년 만이었다. 선발 기준이 다른 기획사와는 많이 다를 거라는 공언 아래 리얼리티 쇼 형식을 빌려 16명의 연습생이 서바이벌을 벌였다. 당시 〈식스틴〉 제작발표회에서 박진영 대표는 “세상은 점점 더 아티스트한테 너그러워질지 몰라도 JYP는 점점 더 보수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잘못해서 나는 스캔들, 잘못이 아닌데 나는 스캔들. 후자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잘못한 것은 의연하게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적도 없다.”
그의 ‘분류법’에 따르면 이번 ‘쯔위 사태’는 ‘잘못해서 난 스캔들’이다. 의연함과는 거리가 있는 대처였다. 거듭 이어진 사과가 그 증거다. 쯔위는 열세 살 때 타이완에서 댄스 학원에 다니다 캐스팅됐다. 6개월 전 트와이스 최종 멤버 선발을 앞두고 서툰 한국말로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마지막 방송 보고 나서 실력도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도중 탈락 후 최종 합격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데뷔의 꿈을 이뤘지만 3개월 만에 모국어로 중국 활동 중단을 선언해야만 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서 제작진이 준비한 타이완 기를 흔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후였다. 타이완 출신 중국인 가수 황안이 이를 근거로 “쯔위가 타이완 독립세력을 부추긴다”라고 전하면서 일이 커졌다.
이전까지 국내 언론에서 쯔위는 자연스럽게 타이완 출신으로 소개됐다. 〈식스틴〉 첫 회 경연에서 타이완 노래에 맞춰 춤을 췄고 타이완 방송사에서 그녀를 취재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친중파-반중파의 대립 구도였던 타이완 총통 선거가 맞물린 이번에만 유독 문제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무심코 벌어진 일에 정치적 의도가 겹쳤다. 쯔위는 멤버 9명 중 돋보이는 외모로 이목을 끌었다. 단독으로 휴대폰 광고를 찍으며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다. 업계에선 설현(AOA)에 이어 ‘청바지 광고와 교복 광고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여자 연예인’으로 통했다. 사태가 커지자 그녀가 출연한 중국 현지 광고가 철회되었고 JYP 소속 가수들에 대한 보이콧도 이어졌다. 타이완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쯔위 사태’는 외부에서 촉발됐지만 의도와 관계없이 국내 관계자에게서도 모두 조금씩 ‘혐의’를 찾을 수 있다. 〈마리텔〉 홈페이지에는 제작진의 침묵을 성토하는 글이 이어진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타이완 총통 선거 기간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더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작진이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속사의 부실한 대처도 사건을 키웠다. JYP는 몇 차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첫 발표는 해명에 가까웠다. 1월13일 ‘웨이보(중국 SNS)’를 통해 “중국을 적대시하는 어떤 발언과 행동도 하지 않았다. 쯔위는 16세에 불과하며 그의 나이와 교육 수준을 고려했을 때 정치적 관점을 논하기 이르다”라고 말했다. 이튿날은 뉘앙스가 달랐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관리 부족에 대한 죄송함’을 전했다. 박진영 대표도 “상처받은 중국 팬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라는 글을 직접 올렸다. 1월15일에는 당사자인 쯔위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중국은 오로지 한 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인이라 자랑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상을 기점으로 쯔위에 대한 동정론이 커졌고 JYP에 대해선 비난 여론이 일었다. 영상 속 쯔위는 참담한 표정이다. 소속사 말대로 ‘열여섯 살에 불과한’ 소녀에게는 가혹해 보였다.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는 “두 번째 사과문 이후 진정되는 국면이었는데 그게 덜 알려진 상황에서 동영상이 올라왔다. 당장의 손해가 있더라도 아티스트를 직접 내세워 진의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건 아니었다고 본다. 본인과 부모의 판단이더라도 말렸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일련의 사태가 걸그룹을 보는 대중의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에서 쯔위는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로 존재했다. 자기 의지로 깃발을 흔든 것도 아니고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안무, 만들어진 곡을 노래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내내 취급하다가 사과의 순간에만 주체로 내세웠다. 한국의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하다 문제가 불거지면 꼬리 자르기식 해고로 무마하는 그림이 읽혔다.”
이번 일이 쯔위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소속사 역시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사과라는 전략을 택했다. 지나친 저자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 여론 달래기로 선회한 건 그만큼 중국 시장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2013년 국내 음반산업의 지역별 수출액을 보면 중국은 1018만6000달러를 기록해, 2009년 236만9000달러에 비해 4년 만에 4배가량 덩치가 커졌다. 비중은 전체 시장의 3.7%에 그쳤지만(일본이 80%) 연평균 증가율이 44%로 그 기세가 무섭다(산업연구원, 〈케이팝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방안〉). 특히 중국의 문화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문화산업의 부가가치가 2004년 3440억 위안이던 데서 10년 만에 6배에 이르는 2조81억 위안을 기록했다. 국가 역시 상대적으로 발굴이 덜된 자국의 문화 소비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다.
국내 아이돌 그룹의 경우 해외에서 수입을 내지 않으면 시스템을 지탱할 수 없는 구조다. 최대한 일찍 선발해 트레이닝을 시키는 방식이라 교육·숙소·음반·의상 등 데뷔 전에만 최소 15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동방신기의 경우 80억원이 넘게 들었다고 알려졌다). 내수시장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방송에 출연하는 건 콘텐츠 홍보의 개념이고 실질적인 비즈니스는 현지 활동을 통해 소화하고 이익을 내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 일찍부터 눈을 돌린 건 SM엔터테인먼트였다. 이수만 대표는 2007년 한 특강에서 “큰 스타는 큰 마켓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동북아시아를 강조했다. 미국은 시장이 크지만 정서가 너무 다르고 인종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쪽 시장만 합쳐도 15억 인구라 ‘아시아 1등이 세계 1등’이 되는 날이 올 거라던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000년대 초, 보아를 시작으로 동방신기·슈퍼주니어·엑소 등이 해외 시장을 겨냥해 결성됐다.
언제든지 재발 가능한 ‘쯔위 사태’
흔히 2004년에 데뷔한 동방신기를 기점으로 이전까지의 아이돌을 1세대로, 이후를 2세대로 나눈다. ‘1세대 아이돌이 한류에 편승하는 정도에 그친 반면 2세대 아이돌은 이미 형성된 한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기획사는 이를 위해 외국인 멤버를 아이돌 그룹에 배치하거나 현지 법인 설립과 현지 음반사와의 제휴를 통한 해외 활동 현지화를 추구했다.’(〈사회과교육〉 제52권 2호, ‘케이팝에 관한 소고’) SM은 엑소 멤버 중 한국인 2명과 중국인 4명을 따로 떼어 엑소엠(EXO-M)을 만들기도 했다. 중국 현지를 공략한 구성이다. 미국 진출에 공을 들였던 JYP도 중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2PM의 닉쿤(타이), 미쓰에이의 지아·페이(중국), 갓세븐의 잭슨(홍콩) 등 아시아 국적의 멤버도 영입했다. 트와이스 역시 쯔위를 비롯해 절반가량인 4명의 멤버가 외국인이다. 기획사는 해외 진출을 겨냥해 외국인 작곡가를 영입하거나 곡을 만들 때부터 반복적인 리듬, 단순한 멜로디, 쉬운 영어 등의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쯔위 사태’를 계기로 콘텐츠 외에 고려해야 할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민족주의 경계령’이다.
이번 일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형 사고가 되었다. 언제든지 재발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케이팝의 수출시장이 커진 지금 시점에는 더욱 그렇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세밀한 현지 전략의 필요성을 말한다. “냉장고 한 대를 팔 때도 현지 사정과 정서를 고려해 마케팅한다. 내수시장에서 수출시장으로 넘어갈 때 비즈니스 전략의 기본인데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아이돌 산업의 전근대성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시아는 정치·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앞으로 중국 내 케이팝 스타들에게 정치적 발언을 요구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과잉 해석을 경계한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이번엔 오히려 등 떠밀려서 이야기한 꼴이 됐다. 당장엔 이익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외압이 들어올 때마다 사과하면 안정적인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긴 힘들다”라고 말했다. 단호한 대응이 오히려 이득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문화민족주의’의 양상은 더욱 거세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민족주의의 갈등 양상이 문화를 매개로 드러난 사례는 한·일 관계에서 이미 여러 차례 목격됐다.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의상을 입은 연예인들이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독도에서 공연을 했던 이승철은 석연찮은 이유로 일본 입국을 거절당했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문화 자본의 논리와 민족주의 논리가 충돌하는데 그 지점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충분히 고려하되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박진영은 몇 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엔 민족주의로 먹고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한류 안의 민족주의 속성을 비판하는 의도였다. 그 때문에 현지에서 반한류 기운이 인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혹은 케이팝의 본산인 한국 대형 기획사가 그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졌다. 역설적이지만 소속사와 별개로 이번 일을 통해 쯔위의 호감도와 트와이스의 인지도는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