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에 본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백발이 된 ‘새색시’는 눈물 대신 얼굴을 붉혔다”라는 설명과 함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만난 80대 할머니·할아버지는 어설픈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수줍음이 있고, 미안함이 있고,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더 깊숙이는 ‘한(恨)’과 ‘원망’이 서려 있었다.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걸 읽었어야 했다. 수줍음과 겸연쩍음의 바닥에 깔려 있는 희미한 ‘한’과 ‘원망’의 흔적을. 그들은 혹시 만남을 성사시켰다는 성취감에 스스로 도취되어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닌지…. 분단과 전쟁은 우리의 역부족이었다 치더라도 헤어진 피붙이들이 만나고 못 만나고는 남과 북 역량 안의 문제 아닌가!

위정자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건 고욤나무에서 감 열리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일까? 작금의 대통령 발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없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사상적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틀렸을 뿐 아니라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국제 무대에서 북한이 우리보다 뒤떨어진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사상 무장이 허술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일사상으로 주민들과 사회체제를 묶어놓은 게 정체와 실패의 원인이다. 역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은 민주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창조 정신과 도전의 결과물이다. 이런 우리의 강점을 포기하고 북한처럼 국정교과서로 학생들에게 획일적 가치관을 주입시키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인가?

여당인 새누리당은 시치미 뚝 떼고 ‘민생’을 챙기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생? 말이 좋아 ‘민생’이지, 어느 무지렁이 국민이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민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진정 민생을 걱정한다면, 자신들이 국민에게 뿌려놓은 국정화의 불씨부터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불길을 진정시킨 뒤에 ‘민생’을 말해야 비로소 그 말이 액면대로 들릴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아이들에게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배를 만져본 아이는 코끼리를 ‘벽’이라 할 것이고, 귀를 만져본 아이는 ‘큰 부채’라 할 것이며, 다리를 만져본 아이는 “기둥같이 생겼다” 할 것이다. 왜 아이들에게 코끼리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특정 부위만 만져보게 하려는 것인가.

총리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들의 공공연한 사실 왜곡과 거짓말은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민주 정부의 기본 조건인 투명성이 지금 어떤 동문서답과 침묵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는지 예의주시해볼 일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그것은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고 부메랑이었다.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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