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의 교양 있는 한국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방금 서울에 왔다고 생각해봐. 그 사람이 우리랑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고작 100년 남짓 전 사람인데 당연히 말이 통할 거라고? 음, 전혀 안 통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교 졸업자가 미국인 관광객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거보다 더 힘들 거야. 왜냐고? 그 100년 남짓 동안 한국어 어휘부가 완전히 변해버렸거든.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어 어휘의 반 이상은 한자어야. 그런데 그 시절의 한자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이 대부분이었어.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 대부분이야. 게다가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한자어도 뜻이 달라진 게 많아. 그것도 일본어의 영향이야. 그러니 19세기의 그 사람이랑 우리가 대화하는 게 우리가 영어 사용자와 대화하는 것보다 더 답답할 거야.

그렇지만 그 시대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그 시대에도 21세기의 우리랑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많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완전한 의사소통은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사람 중에 대표적으로 유길준이라는 이를 꼽을 수 있어. 유길준! 다들 들어봤지? 그 유명한 〈서유견문〉의 저자 말이야. 〈서유견문〉이라는 책 제목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거야.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본 사람 역시 드물겠지.

ⓒ한성원 그림

유길준이 지금 우리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건 그가 〈서유견문〉의 저자이기 때문이야.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서른네 살이던 1889년에 탈고해서 여섯 해 뒤인 1895년에 일본의 교순사(交詢社)라는 출판사에서 나왔어. 교순사는 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가 만든 출판사야. 유길준은 스물여섯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까지 후쿠자와가 경영하던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에 유학했던 터라, 후쿠자와와 인연이 있었어. 그런데 탈고하자마자 조선에서 출판하면 될 걸 왜 여섯 해나 지난 뒤 일본에서 출판했느냐고?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쓸 적에는 개화당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연금 상태였거든. 서른아홉 살이 돼서야 유폐 생활에서 풀려나 벼슬을 해. 그리고 그 이듬해 의화군과 함께 일본을 시찰하게 됐는데, 그 김에 후쿠자와에게 부탁해서 책을 내게 된 거야. 의화군이 누구냐고? 의친왕(義親王) 이강이라고 들어봤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황족 중에서 드물게 일본 식민주의에 대든 사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

그런데 유길준이 〈서유견문〉의 저자라는 게 어떻게 지금의 우리와 의사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할 실마리가 될까? 그건 간단해.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중국식 한자어 대신 일본식 한자어,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어를 주로 사용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20세기 이후 학문의 발전에 따라 생긴 수많은 신어들, 그것도 물론 대개가 일본인들이 서양어를 번역한 거지, 그 신어들만 사용하지 않으면 유길준이랑 대략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물론 유길준 쪽에서도 자기가 잘 아는 중국식 한자어를 되도록 쓰지 말아야겠지.

〈서유견문〉유길준 지음허경진 옮김서해문집 펴냄

〈서유견문〉은 최초의 국한문혼용체 저서야. 국한문혼용체가 뭐냐고? 한자어는 한자로 쓰고 고유어는 한글로 쓰는 문체야. 물론 〈서유견문〉이 나올 땐, 한글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유길준은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 글자(我字)와 한자를 섞어 쓰고, 문장의 체제는 꾸미지 않았다. 속어를 쓰기에 힘써, 그 뜻을 전달하기를 위주로 하였다”라고 말해. 다시 말해 유길준은 이 책이 되도록 널리 읽히길 바란 거야. 사실 그 시절에 사대부는 한문으로, 그러니까 고전 중국어로 글을 쓰는 게 예사였거든. 그런 한문 텍스트는 같은 사대부가 아니면 못 읽지. 유길준은 동료 사대부들의 경멸을 받을 걸 각오하고, 고전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비록 국한문혼용체지만, 한국어로 책을 쓴 거야. 계몽을 위해서.

〈서유견문〉이 한국어로 쓰였으니까 쉽게 읽을 수 있을까? 그건 아냐. 한자 지식이 꽤 있는 사람도 〈서유견문〉의 원문을 쉽게 읽을 수 없어. 초창기의 국한문혼용체라는 건 예컨대 한 20년 전까지 한국 신문이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한자 혼용과는 크게 달라. 일단 한자어는 무조건 한자로 표기해.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신문물과 관련된 단어는 다 한자어야. 그래서 〈서유견문〉의 원문을 보면, 한글로 표기된 건 조사나 접미사, 어미 같은 일부 고유어밖에 없어. 게다가 똑같이 일본식 한자어를 썼지만, 유길준 시절과 지금은 달라진 어휘도 꽤 있어. 예컨대 우리가 생리학이라고 부르는 학문 분야를 유길준은 인체학이라고 표현해. 또 그가 지리학이라고 하는 건 지금의 지질학이고, 그가 물산학이라고 하는 건 지금의 경제학에 가까워. 게다가 한자로 표기된 유럽어 고유명사들의 난해함! 그러니까 나를 포함해서 평범한 독자들은 〈서유견문〉을 현대어 번역본으로 읽는 게 좋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일파는 아니야

현대어 번역본이 몇 종 있는데, 허경진이라는 이가 번역한 걸 추천해. 허경진 선생은 한문학자인데, 한국어도 깔끔해. 그런데 참, 허경진 선생 같은 이도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지 못하시더군. 허경진 선생은 자신이 〈서유견문〉을 “한글로 번역했다”라고 말하거든. 이건 〈서유견문〉을 “로마 문자로 번역했다”라거나 “키릴 문자로 번역했다”라는 것처럼 어이없는 말이야. 우리는 국한문혼용체 〈서유견문〉을 한글이나 로마 문자나 키릴 문자로 전사(轉寫)할 수는 있지만 번역할 수는 없어. 그걸 현대 한국어나 영어나 러시아어로 번역할 수는 있겠지.

정작 이 책 내용에 대해서 얘기할 지면이 얼마 안 남았네. 그렇지만 원래 이 지면은 서평란이 아니라 그냥 책 이야기 지면이야. 그러니 그게 큰 문제는 아니야. 〈서유견문〉이라는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무슨 기행문 같지? 그렇지 않아. 이 책은 서양 문명에 대한 논문 열여덟 편과 미국 유럽의 도시들에 대한 설명문 두 편으로 이뤄져 있어. 그런데 그 마지막 두 편조차 기행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유길준이 그 도시들을 다 돌아보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밝히고 있으니까.

사실 유길준은 당대인으로는 드물게 미국과 유럽을 경험한 사람인 만큼, 서양 문명에 대해 쓸 자격은 있어. 그렇지만 〈서유견문〉의 많은 부분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쓴 게 아니야. 그가 존경하던 후쿠자와 유기치의 〈서양사정〉을 비롯해 많은 책을 베끼거나 참고했어. 그렇다면 이 책은 최초의 국한문혼용체 저서라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을까? 그렇지 않아. 이 책은, 비록 그 내용의 독창성은 없지만,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을 조선에 이식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야. 유길준은 조선이 서양을, 특히 영국이나 미국을 모범으로 삼아 변하는 것을 ‘개화’라고 불렀어. 이 책은 그러니까 개화론이야. 우리는 〈서유견문〉을 통해 19세기 말 조선 지식인이 근대국가 만들기에 대한 청사진을 어떻게 그렸는지 살필 수 있어.

뱀발(사족) 하나. 사람들은 유길준을 친일파라고 불러. 유길준, 친일파 맞아.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일파는 아니야. 그는 조선의 독립과 개화를 바랐고, 일본이 그것을 도와주기 바랐을 뿐이야. 그냥 그렇다고.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