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추천·선임 과정이 마무리됐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8월13일 전체회의를 열고 KBS 이사 11명에 대한 추천과 방문진 이사 9명 선임 안건을 처리했다.

이번에 추천·선임된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보수 색채가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뛰어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두 공영방송사를 뉴라이트가 장악했다”라고 평했다. 예전 같으면 파업 얘기가 나올 만큼 이사 추천과 선임 과정에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적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그만큼 KBS·MBC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여당 몫으로 추천된 KBS 이사는 이인호 현 KBS 이사장을 비롯해 강규형 명지대 교수, 김경민 한양대 교수, 변석찬 전 KBS 라디오센터장, 이원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조우석 문화평론가, 차기환 전 방문진 이사 등 모두 7명이다. 야당 몫 이사 4명은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권태선 전 〈한겨레〉 편집인, 장주영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전영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부이사장이 추천됐다.
 

ⓒ연합뉴스방송통신위원회는 8월13일 전체회의에서 KBS·방문진(MBC 대주주) 이사 관련 안건을 처리했다.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 6인에는 고영주 전 방문진 감사, 김광동 전 방문진 이사, 김원배 전 방문진 이사,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 이인철 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 선임됐다. 야당 추천 이사 3인에는 유기철 전 대전MBC 사장과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최강욱 전 방문진 이사가 선임됐다. 방문진 감사에는 한균태 전 한국언론학회 회장이 선임됐다.

KBS 이사진 가운데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이인호 이사장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로 꼽힌다. 이 이사장은 KBS 이사로 임명되기 전인 지난해 KBS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친일 발언’ 보도를 비판해 일찌감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이 이사장은 “문창극 후보 강연에 감명받았다”라고 말해 논란을 확산시켰다.

이 이사장은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에 개입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공영방송 이사장이 뉴라이트 역사관을 바탕으로 특정 프로그램(특집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나무〉)에 대해 비판하는가 하면 〈뉴스9〉의 ‘이승만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해 내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 이사로 추천·선임된 인사들의 특징은 ‘3연임 인사’가 많다는 점이다. KBS 이사로 선임되기 전, 언론시민단체에서 부적격 인물로 지목됐던 차기환 이사는 지난 6년 동안 MBC 대주주인 방문진의 이사를 지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여권 추천)을 맡고 있는 그는 세월호 유가족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하하는 게시물을 옮겨 자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는 지난 8월5일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며 MBC를 철저하게 망쳐놓은 인물이 청와대의 강력한 지지 아래 KBS 입성을 앞두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김광동 방문진 이사는 방문진 이사로만 ‘3연임’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08년 뉴라이트 대안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을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언론계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시사IN 자료이번에 선임된 KBS 이사 11인. 이인호·강규형·김경민·변석찬·이원일·조우석·차기환(왼쪽부터)은 여당 추천 몫으로 선임됐다.
지난 6년간 방문진 감사를 맡았던 고영주 이사는 이번에 이사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3연임’ 달성에 성공했다. 고 이사는 공안 검사 출신으로 대표적인 극우 인사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이른바 ‘부림 사건’ 담당 검사 출신이다.

공영방송의 ‘정권 편파성’ 더 심해질 것

새롭게 추천·선임된 이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KBS 이사로 추천된 강규형 교수는 이인호 이사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교수는 지난해 문창극 총리 후보 친일 논란의 근거가 된 KBS 보도를 ‘왜곡 보도’라고 비난하는 성명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으며, 뉴라이트 학자들의 모임인 ‘역사왜곡과 학문탄압을 걱정하는 지식인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문화일보〉와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극우적 색채가 강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좌파 정서에 물든 대표적 인물로는 안철수 의원과 조국 서울대 교수, 진중권 평론가, 공지영 소설가, 김제동, 김미화 등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월 극우 보수 성향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메르스 괴담의 진원지로 언론을 지목하며 “오는 8월에 이사진이 물갈이되는 KBS를 시범 사례로 해서 그걸 온전한 공영방송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변석찬 전 KBS 라디오센터장도 KBS 내부에서 부적격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13년 KBS가 봄 개편을 앞두고 친박 성향의 고성국 정치평론가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의 처남 최양오씨를 라디오 MC로 기용하려 했을 때 라디오 책임자였다. 당시 KBS 라디오 PD들은 변 센터장 보직해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에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이인철 변호사는 보수 성향 변호사 모임인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연임에 성공한 김원배 방문진 이사 역시 정수장학회 출신으로 친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번에 추천·선임된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다기보다는 특정 이념에 치우친 인사가 대다수다. 언론단체들이 “박근혜 정권이 공영방송 장악을 통해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에서 공영방송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라고 비판한 이유다. 언론계에서는 이들 이사들의 임기와 박근혜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비슷하다는 점도 우려한다.
 

ⓒ시사IN 자료김서중·권태선·장주영·전영일(왼쪽부터)은 야당 추천 몫으로 선임됐다.
새로운 KBS 이사들은 현 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11월 KBS 사장을 선임하게 된다. 방문진 이사들 역시 내년 3월 MBC 차기 사장에 대한 선임 권한을 갖고 있다. KBS·MBC의 ‘정권 편파성’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리라 예상하는 이유다.

사실 두 공영방송사 이사 추천·선임 과정에 문제점이 많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기대치가 낮아진 것이 주원인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KBS 이사회는 ‘7대4 구조’(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이고, 방문진 또한 ‘6대3 구조’(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다수를 점하는 현재의 이사 선임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는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들 이사들이 선임하는 KBS·MBC 사장 역시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언론 시민단체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집권 이후 침묵으로 일관한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사장 선임에 당장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사장추천위원회와 특별다수제(단순 과반 의결이 아니라 야당 추천 이사들의 동의를 받아서 의결하는 방식)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지만 특정 이념에 치우친 이사들이 자신의 권한을 시민사회와 야당 추천 이사들에게 일정하게 넘기는 안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당분간 KBS와 MBC의 추락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기자명 민동기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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