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붉은 모자 쓴 북한의 기업가
‘시외버스 택배’로 읽는 북한 경제
“북한은 뒤지면 다 돈이다”
돈주는 북한 시장화의 기수?



‘돈주’들은 신분상 취약한 계층인 경우가 많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사적인 기업 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당국이 걸면 걸리게 되어 있다. 돈주들은 일상적인 단속의 공포에 시달리기 때문에, ‘3년 열심히 뛰어 평생 벌 것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도당 책임비서, 보안서 처장, 보위부장, 군단장 등 지방 권력자와의 결탁에 필사적이다. 북한판 정경유착이다.

2000년대 이후 북한에서도 주택건설 시장이 나타났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주택을 사고판다는 이야기다. 돈주들은 이 부문에도 적극 참여한다. 국가기관은 상부에서 주택건설 허가를 따오기만 하고 실제 짓는 것은 건설업 돈주에게 맡긴다. 건설업 돈주는 선(先)분양 형태로 투자자를 모집해 아파트를 짓고 국가기관에 일정 몫을 떼어준 뒤 분양해서 이익을 챙긴다. 토지 사용 허가 및 입사증(특정 주택의 사용권. 사실상 소유권으로 볼 수 있다) 발급까지 모든 사업 절차가 권력과의 유착 속에서만 가능하다.

최근에는 정치 권력자들이 돈주를 앞세워 주택건설 시장에 뛰어드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 돈주로부터 떡고물을 챙기던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목 좋은 땅을 선점해주고 큰돈을 받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아파트 분양 등 부동산 투자 및 투기가 새로운 부의 축적 수단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13년 9월 평양 문수물놀이장 건설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돈주가 뛰어든 북한의 부동산 건설 시장

이처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돈주들은 현재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대표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주들이 북한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촉진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돈주들이 정치권력과 유착해서 부를 독점하게 되면 이에 따른 빈부격차와 사회혼란이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개발국이나 비자본주의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경우, 북한의 돈주들처럼 일부 계층이 자금을 축적하면서 ‘자본가’로 변신하는 혼란스러운 과정이 불가피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적절한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적절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 전환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전환기 국가의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러시아에서는 ‘노멘클라투라’로 불리는 옛 소련의 당료나 관료 등 특권층이 체제 전환기를 틈타 지하경제 세력과 손잡고 국가 자원을 사실상 독점했다. 기존 권력과 이에 따라 취득한 정보를 활용하면, 사유화되는 국가 자산을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매집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가 그럴듯한 산업 발전을 이루지 못한 데에는 극소수의 거부들이 자원을 사유화했을 뿐 시장경제다운 질서를 만들지 못한 탓이 크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경우에도, 몇몇 가문이 국부를 장악하는 바람에 결국 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군의 경제적 특권을 박탈하고 고위직 인사들의 부정부패와 비위를 가끔씩이나마 가혹하게 처벌하는 등 러시아에 비해서는 훨씬 단호하게 부패 문제에 대응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신흥 계층인 산업자본가의 재산과 신분을 보장하고 자본-임노동 관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시장경제의 지속적 성장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경제개발기의 한국 역시 각종 특혜를 통해 재벌이라는 ‘돈주 집단’을 육성했다. 그러나 정부가 재벌과 결탁해 사적 이익만을 취한 것이 아니라 재벌을 압박해 경제계획을 밀어붙이는 등 산업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했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김정은 정권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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