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붉은 모자 쓴 북한의 기업가
‘시외버스 택배’로 읽는 북한 경제
“북한은 뒤지면 다 돈이다”
돈주는 북한 시장화의 기수?


북한의 교통과 유통 그리고 소액금융 부문을 보면 시장이 북한 특유의 방식으로 빠르게 발전 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광역 교통수단은 시외버스(사진)다. 신의주·평성·남포·해주·함흥·청진 등 전국 주요 대도시는 모두 시외버스 망으로 연결돼 있다. 군소 도시로 가려면 먼저 이들 대도시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시외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북한의 시외버스는 그 자체가 소규모 개인 기업이다. 대개 2인 1조로 돈을 모아 중국에서 버스를 구입한 다음 각 시도 인민위원회 운수사업소 소속으로 등록시킨다. 개인들이 국가의 명의를 빌려 시외버스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그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북한 국가는 재정 투입 없이 운송 수요를 충당할 뿐 아니라 세금과 명의 사용료까지 받을 수 있다. ‘붉은 모자 쓰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시외버스 사업자들은 택배 업무도 병행한다. 장거리 택배를 의뢰하는 인민들이 시외버스에 물건을 실은 뒤 휴대전화로 수령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Flickr

이런 방식의 택배로 시외버스 사업자들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북한에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오라스콤(이집트 기반의 다국적 통신회사)과 북한 체신청이 2008년 합작 설립한 이동통신사 고려링크의 가입자가 올해 들어 3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휴대전화는 최근 관심사로 떠오른 북한 소액금융 사업자들의 필수적인 사업 설비이기도 하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10개 이상의 대부업자가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간 송금’을 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청진의 ㄱ씨가 황해도 해주의 ㄴ씨에게 10만원을 보낸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ㄱ씨가 청진의 대부업체에 10만원과 수수료를 주면, 청진 대부업체는 휴대전화로 해주 대부업체에 ‘ㄴ씨에게 10만원을 주라’고 연락한다. 그리고 청진 업체와 해주 업체는 차후에 자신들끼리 접촉해 차액을 정산하면 된다. 은행 시스템이 미발달한 북한 특유의 금융결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탈북한 조순선씨(가명)는 이들 지역 거점망을 ‘이관집’이라 표현했다(“북한은 뒤지면 다 돈이다” 참조).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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