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베의 ‘속셈’을 절묘하게 끼워 넣다
일본, 강제노역 인정하더니 다음날 발표 뒤집어


일본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게시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등재 기념으로 지역 주민에게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곳도 있다. 크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등재의 기쁨을 즐긴다. 그러나 이번에 등재된 유적 23곳 중 7곳이 한국인 징용자들이 고통을 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배려는 없다.

7월8일부터 13일까지 규슈와 야마구치 현 일대를 답사했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 주최로 ‘정한론의 길-메이지유신의 본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일본 극우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했던 ‘삿초도히(사쓰마 번-가고시마 현, 조슈 번-야마구치 현, 도사 번-고치 현, 히젠 번-사가 현·나가사키 현)’ 지역을 두루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답사 여행에서 방문한 곳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 자주 겹쳤다. 이번에 등재된 유적이 주로 규슈와 야마구치 현 일대에 있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시사IN 고재열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23곳 중 하나인 가고시마 센간엔(이소 정원). 안내원이 등재 기념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다.

이번에 등재된 유적은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적’이고 우리가 답사하는 곳은 제국주의를 주창한 극우주의자들의 유적이다. 그런데 왜 이 두 주제가 두루 겹치는 걸까. 물론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근대화의 주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겹칠 수 있다. 그런데도 수긍되지 않는 곳을 몇 곳 발견했다. 특히 두 곳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등재 유적 23곳 중 강제징용 문제가 걸린 7곳과 함께 새롭게 문제 제기해야 할 곳은 옛 조슈 번(현재 야마구치 현) 하기 시의 쇼카손주쿠(松下村塾) 학숙과 사무라이 마을인 조카마치(城下町, Hagi Castletown) 두 곳이다. 쇼카손주쿠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만든 학숙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곳이고, 조카마치는 이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과 관련된 인물은 대부분 쿠데타의 주역으로 이들의 활동은 일본 산업혁명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끼워넣기’로 들어간 이 두 곳에 아베 총리의 속셈을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

쇼카손주쿠를 만든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의 원조’로 지목되는 사람이다.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참수된 그는 감옥에서 “국력을 배양해 취하기 쉬운 조선·만주·중국을 복속시키고, 열강과의 교역에서 잃은 국부와 토지를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라는 유훈을 제자들에게 남겼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요시다 쇼인과 함께 주목할 인물은 그의 수제자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다. 이번에 쇼카손주쿠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기 시 조카마치는 다카스기 신사쿠가 살던 마을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이름 중 ‘晋’자는 다카스기 신사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아베 가에서 존경했던 인물이다.

아베 총리가 흠모하는 다카스기 신사쿠는 사극의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영웅이다. ‘회천의 기수’로 불렸던 신사쿠는 조슈 번 군사 1000여 명으로 막부군 2만여 명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둬 메이지유신의 초석을 다졌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29세로 요절하는데, 그의 사후에 그와의 친분 관계에 따라 권력 서열이 정해질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던 인물이다. 그는 신분에 관계없이 징병해 기병대(奇兵隊:괴상한 병사들의 부대)를 만들어 막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이후 일본 육군의 근간이 된다.

“논쟁적인 곳을 아주 절묘하게 끼워넣었다”

막부와 싸운 다카스기 신사쿠의 쇼카손주쿠 후배들이 이후 메이지 시대를 주름잡는다. 대표적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다. 그는 역사대(씨름꾼으로 구성된 부대) 대장이다. 기병대 본대의 군감이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 육군의 대부가 된다. 조선 공사를 지낸 미우라 고로도 포대장으로 참전한 바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각을 장악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 군부를 장악해 메이지 시대를 이끈다.

ⓒ김재광 제공쇼카손주쿠를 중심으로 한 조슈 파벌은 조선 침략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의 악연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쇼카손주쿠를 중심으로 한 조슈 파벌은 조선 침략에도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명성황후 시해의 기획자인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와 이를 시행한 미우라 고로가 이곳 출신이다. 그리고 초대 조선 통감(이토 히로부미)을 비롯해 2대(소네 아라스케)와 3대(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이 모두 조슈 번 출신이고, 한·일합병 이후 초대 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과 2대 총독(하세가와 요시미치)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우리가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야마구치 현에는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든 초혼사(招魂寺)가 있다. 조슈 번 사무라이들의 메이지유신 과정을 기록한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를 쓴 이광훈씨의 설명은 이렇다. “다카스기 신사쿠가 거병 전에 미리 만든 이 신사는 ‘모든 병사는 죽어서 신이 된다’는 신의 집단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곳이다. 이후 도쿄에도 초혼사가 만들어지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야스쿠니 신사다.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는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으로 합사되어 있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강제징용’ 외에 다른 시선으로도 짚어볼 필요가 바로 이것이다. 답사를 이끈 주강현 APOCC 원장은 “아베 총리가 쇼카손주쿠와 하기 시 조카마치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것은 ‘일본 우익의 탄생’을 기리면서 산업혁명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 유산에 집중하는 동안 일본은 산업 유산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논쟁적인 곳을 아주 절묘하게 끼워넣었다”라고 평가했다.

ⓒ김재광 제공 글로버 가든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조선소(위). 나가사키 조선소에서는 강제징용된 4700여 명의 조선인이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에 쇼카손주쿠나 하기 시 조카마치를 포함시킨 것은 일본 내부에서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있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도한 세력은 아베 총리와 친분이 깊은 야마구치 현의 유지들이다. 이들은 애초에 ‘규슈·야마구치의 근대화산업 유산군-비서양 세계에 의한 근대화 선구자’로 신청했는데 유네스코 주관기관으로부터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조선·석탄산업’으로 제한하라는 권고를 받고 수정했다. 등재에는 아베 총리의 의지가 중요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등재를 관철시키자 비판적인 일본 지식인들은 아베 총리가 A급 전범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명예회복도 도모할 것으로 예상했다.

두 곳 외에도 논란이 되는 곳은 나가사키 항의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소 시설이다. 이번에 네 곳이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미쓰비시는 일본의 대표적 우익 지원 재벌로 꼽힌다. 아베 총리의 형이 미쓰비시 상사의 사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번에 지정된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함을 건조하고 어뢰를 제조하던 곳으로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이 겨냥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실제 폭탄은 조금 떨어진 도심지에 투하되었다).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는 대표적인 강제징용 시설로 무려 470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서 일했다. 이곳 조선인 징용자 중 상당수가 원폭 피해를 입기도 했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를 하지 않던 미쓰비시 측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포로 900여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우리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배상이나 사과를 받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미쓰비시의 조선소 시설과 함께 미쓰비시 창업자에게 도움을 준 영국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의 사택인 ‘글로버 가든’도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글로버는 다카스기 신사쿠와 교류한 인물로, 신식 총 4000정과 구식 총 3000정, 그리고 화포를 장착한 증기선을 조슈 번에 팔아서 무장을 도왔다. 글로버 가든이 등재된 것은 조슈 번의 은인이자 미쓰비시의 은인인 글로버에 대한 보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을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라고 비난한다. 그 말은 절반만 맞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선택적으로 교훈을 얻어서 문제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리는 ‘지란 특공평화회관’과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에 가보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 없이 평화를 부르짖고 자신들의 피해만 부각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평화에는 질문이 없다. 가미카제 특공대가 왜 목숨을 바쳐야 했는지 묻지 않고 그 정신을 이어받자고만 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역이용’할 필요 있어
 

ⓒ시사IN 고재열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오히려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크투어리즘(비극의 현장을 찾아 추모와 성찰의 계기로 삼는 관광) 전문가인 강은정 박사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다. 강제징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시각으로만 일본 근대화를 보아서도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답사 여행에 함께한 이남영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하버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일본 근대화 관련 강좌에 사람들이 많아서 놀란 적이 있다. 동양학 관련 과목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강좌였다. 서양인들은 일본 근대화의 성공 비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소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인상적인 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치고 천주교를 몹시 박해했다. 막부 역시 지역 차별을 심하게 해서 특정 지역(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맞선 지역)은 등용하지 않았으며 말기에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쇼군이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아 세도정치가 행해졌다. 이런 비슷한 조건에서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는지는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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