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베의 ‘속셈’을 절묘하게 끼워 넣다
일본, 강제노역 인정하더니 다음날 발표 뒤집어

일본이 세계를 두 번 놀라게 했다.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의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해서다. 첫 번째의 놀라운 사건은,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대표단이 내놓은 파격적인 발언이다. 유네스코 측은 일본에 23곳의 산업 유산을 등재하려면 관련 시설의 전체 역사(한국인 강제노동을 포함한)를 기록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일본 측이 의외로 순순히 “1940년대의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국민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노역을 했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국내외 연구자들은 일본 대표의 이 발언에 깜짝 놀랐다. 국제회의는 물론 한·일 정부 간 양자교섭에서도 일본은 그동안 ‘정부에 의한 강제동원 내지 노역’ 사실을 인정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일본 정부 대표단은 ‘일본 정부에 의한 징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라는 것이었다. 미국 학계도 경악했다. 일본의 강제 노역을 연구하는 윌리엄 언더우드 박사는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그 단어의 강도에 꽤 놀랐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징용과 관련해 ‘강제된(forced)’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처음이다. 수십 년간 법적 소송과 각종 시위로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성공시킨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7월3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독일 본의 회의장 앞에서 일본의 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다음 날인 7월6일, 일본 정부는 두 번째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날의 발표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두 사람의 정부 각료와 아베 총리까지 등장해 총력전을 벌였다. 각료 중 한 사람은, 외교 협상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 그는 사토 구니 주(駐)유네스코 대사 발언이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제노역에 해당하는 ‘forced to work’라는 말을 ‘원하지 않음에도 일하게 됐다’(働かされた, 하타라카사레타)라고 번역해 언론에 돌림으로써 ‘강제성’을 희석해버린 것이다. 다른 한 각료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 대표가 발언한 징용은 ‘국민징용령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강제노동이 아니다’.

하루 만에 뒤집힌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으로 우리 외교부는 졸지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꼴이 됐다. 7월10일에는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 정부는 기시다 외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이 잘못됐다고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라며 화를 돋우기도 했다.

먼저 ‘forced to work’란 말이 등장한 배경부터 살펴보자. 우리 외교부는 협상 마지막 단계인 지난 7월4~5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구하고 있다. 다행히 일본의 온라인 매체 〈리테라〉(lite-ra.com)에 그 전말이 상세히 소개됐다. 세계유산위원회에 앞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6월21일)에서는, 양국이 유네스코 유산위원회에 나가 각각 의견을 진술하되, 일본 측이 먼저 ‘자발적으로’ 강제노동 사실을 설명하고 그 후에 한국이 발언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아베 총리의 ‘억지’가 시작됐다. “총리 관저에서 돌연 외무성 담당자에게 한국의 진술 내용을 확인하고 사전 협의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한국이 (강제노동을 뜻하는) ‘forced labor’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한·일 간에 조율이 불가능해지자 최종적으로 의장국인 독일이 조정에 나서 ‘forced labor’를 ‘forced to work’로 바꾸는 것으로 타결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측은 직접 아베 총리실과 접촉해 단어 한 글자 한 글자 정했다고 한다. 〈리테라〉에 따르면, “그러나 국제사회가 (일본 총리) 관저의 억지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labor(노동)를 work(일하다)로 바꾸었지만 forced(강제된)라는 부분을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의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AP Photo6월21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강제동원 담당하는 한국 기관 올해 말 폐쇄

forced labor와 forced to work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돼온 방식을 살펴보면 이 매체의 설명이 확인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강제노동은 명사형으로 forced labor를 사용한다. 그러나 동사형으로는 forced to work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1932년 발효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이나 1946년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 판결문,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문 중 강제노동에 대한 서술은 모두 ‘forced to work’로 돼 있다. 따라서 국제회의에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사용해놓고도 ‘그것이 강제노동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기 충분하다.

더구나 일본 대표의 발언에는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의 의사에 반해’라든가 ‘가혹한 조건하에서’ 등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강제노동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 두 군데나 더 들어가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 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 조사1과 정혜경 과장에 따르면, 이 중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은 1993년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와 2002년 일본 변호사협회에서 전시의 강제노동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던 ‘상당히 주목할 만한 표현’이라고 한다.

스가 관방장관의 ‘징용이 강제노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 역시 국제사회에서 이미 결론이 난 얘기다. 일본은 1932년 11월21일 국제노동기구(ILO)와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으로 불리는 29호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1999년 ILO 보고서는 일제강점기의 한국과 중국 노동자 징용에 대해 강제노동으로 규정하고 ‘일본이 29호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스가 장관 발언 역시 국제 기준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이번 유네스코 유산 등재 협상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장하며 조선 식민지화의 이론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의 사당 ‘쇼카손주쿠’ 등재를 막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반면 일본은 쇼카손주쿠 등 아베의 정치적 뿌리인 야마구치 현의 시설을 등재하는 데 정신이 팔려 산업시설 내 조선인·중국인·연합군 포로 등에 대한 광범위한 강제노역 사실을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정보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와 관련해 2017년 12월1일까지 세계유산위원회 사무국인 세계유산센터에 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2018년에 열리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경과 보고서를 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일본이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취하는지 한국을 비롯해 중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영국·네덜란드 등 강제징용 및 전쟁 포로 피해국들이 연합해 앞으로도 제대로 된 감시 활동을 수행해나가야 한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APP)’ 민디 코틀러 소장은 “일본이 마침내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역사를 바로잡을 기회를 제공했다”라면서, 그 대안의 하나로 공동의 국제기구 설립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위원회’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문제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2004년 출범한 이래 매년 예산 문제로 존립이 간당간당하다가 급기야 예산 지원 중단으로 올해 말에 폐쇄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조직이 일제의 강제동원 문제를 맡게 될지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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