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진원지가 청와대·국회·국가정보원이라 더 씁쓸하고 기운이 빠집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놀라고 가뭄과 무더위에 지친 국민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흐름은 텔레비전의 궁중 드라마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결과는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지극히 유아적 발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헌법 제1조 1항’과 ‘삼권 분립’의 깃발이 세월호처럼 물밑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국민들은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공식 선출된 여당 원내대표가, (대외적으로 국가 대표이기도 하지만) 행정부를 책임지는 정부수반이기도 한 사람에 의해 찍혀나가는 장면은 황당하고 살벌했습니다. 선례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당 국회의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데자뷔(기시감)를 안겨주었습니다. 조선 중엽 병란기와 말기 조정의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대신들과 비슷했지요. 두발 모양과 복식(服飾)이 달랐을 뿐.

유승민 대표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키워준 은인을 배신했다는 (비공식)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公)과 사(私)를 뒤섞는 일입니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 공사 구분임에 비춰볼 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찍이 공직을 떠나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고 자기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는 길일 것입니다.

유사한 행태가 도처에서 연출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강한 권력을 가진 곳일수록 상황이 심각합니다. 사법기관이 특히 심하지요. 입법과 국정감사의 권한을 가진 국회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게 모든 공직자의 책무이자 납세자에 대한 도리입니다.

‘동문서답’ ‘격화소양(隔靴搔癢)’ ‘적반하장’이 도처에서 무시로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바라봅니다. 마치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게 바로 이런 현상 아닌가요? 일찍이 존 던(John Donne)이라는 영국 시인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알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라는 경구를 남겼지요.

대니얼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이 최근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Democracy Delayed)이라는 책을 냈는데, 한국인들에 대한 여러 가지 따끔한, 그러나 우정 어린 충고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다면서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질이 훼손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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