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만 남기고 떠나서 미안하다, 아가
  • 주진우 기자
  • 호수 408
  • 승인 2015.07.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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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4일 서울고법에서 KTX 승무원들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이들의 해고가 무효라는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돌아갈 직장이 사라진 이들에게 빚만 남았다.
3월16일 새벽, 충남 아산의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몸을 던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서른다섯 살 박 아무개씨. 세 살 난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해고된 KTX 여승무원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박씨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해고를 당했지만 재판에 이겨서 복직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부당 해고로 인한 임금도 받았다. 2011년에는 결혼도 했다. 해고로 결혼이 늦어졌지만 그녀는 더 열심히 살았다. 예쁜 딸도 낳았다. 시댁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다만 며느리가 해고 노동자라는 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해 결혼 후에는 농성장에 자주 나가지는 않았다.

박씨의 소소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2월26일 대법원(주심 고영한 대법관)은 해고된 KTX 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원심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이 코레일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다.(<시사IN> 제391호 ‘KTX 승무원의 잃어버린 7년’ 기사 참조)

승무원들이 재판에서 진 것이다. 돌아갈 직장이 사라졌다. 승무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문제가 따로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1·2심 소송에서 이긴 KTX 여승무원들은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돼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 비용을 받았다. 1인당 8640만원. 재판에 졌으니 이 돈을 토해내야 한다. 10년 가까이 길바닥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이 큰돈이었다. 결혼한 승무원들은 이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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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던진 박씨는 빚이 아이에게 상속된다는 점을 미안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판결이 나고 20일 동안 박씨는 돈 걱정을 하다가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박씨의 동료 승무원은 “그 친구는 누구에게 피해 주는 걸 못 참는 성격이었다.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은 “해고 노동자들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사람 죽이는 판결이었다. 비열한 사람들의 비정한 시대다”라고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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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죽었다. 하지만 남은 가족이 8640만원을 물어내야 한다. 박씨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가 있어서 빚은 재산과 함께 가족에게 상속된다. 세 살배기 딸은 이제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다고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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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KTX. 2004년 KTX가 출범하면서 여승무원들은 주요 홍보 포인트였다. 코레일은 막대한 광고비를 뿌렸고, 언론은 연일 KTX 띄워주기에 바빴다. 여승무원들은 ‘철도의 꽃’인 양 포장됐다. 여승무원 모집에 지원자가 넘쳐났다. 입사 경쟁률은 14대 1이나 됐다. 고졸 이상이면 여승무원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대졸자로 채워졌다.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유학파도 있었다. 더 좋은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코레일(철도공사)은 2004년 채용 공고에서 여승무원에게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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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무원들은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2004년 3월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을 자회사인 홍익회에 위탁했다. 그러다 12월에는 홍익회에서 분리된 철도유통으로 넘겼다. 계약 기간 2년이 지나자 철도공사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관광레저라는 코레일 자회사와 계약을 맺으라고 했다. 남자 승무원들은 공사 소속 정규직이지만 여승무원들은 자회사의 위탁 계약직 신분이었다. 그사이 여승무원들에 대한 성추행 사건 등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1년마다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불안정한 고용 관계 때문이었다. 여승무원들은 계약을 거부했다. 그리고 코레일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나섰다. 그러자 코레일은 여승무원 280여 명을 정리해고했다. 2006년 5월의 일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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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여승무원들은 대한민국 비정규직 문제의 ‘꽃’이 되었다. 그들을 두고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가 얽히고설켰다. 문제는 미궁으로 빠져들어만 갔다. 여승무원은 대부분 20대를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파마 대신 삭발을 하고, 머리핀 대신 머리띠를 둘렀다. 2007년 여름, 서울역 단식농성 천막에서 만난 여승무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투쟁이 무언지, 파업이 무언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투사가 되어 있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 “연애해야 하는데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있다. 시집가야 하는데 자꾸만 경찰서에 끌려다니고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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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선 지 1년 만에 싸움에 나선 370명이 90명으로 줄었다. 3년이 지나자 34명으로 줄었다. 회사 측의 회유와 협박 때문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복귀하는 여승무원은 선착순으로 간부로 승진시켜주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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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아이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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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들은 거리에서 3년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2008년 11월 여승무원들은 철도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을 들락거린 지 거의 2년 만에 승무원들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 2010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KTX 여승무원이 철도공사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고된 지 1500여 일 만에 복직의 길이 열린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한국철도공사에 대해 복직 때까지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에서도 여승무원들은 이겼다. 여승무원들은 회사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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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2월26일, 2심 재판이 열린 지 4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판결을 기다리는 일은 불안과 좌절의 연속이다.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4년이었다. 대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KTX 여승무원을 코레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열차객실 팀장과 여승무원은 별도의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승무원 팀장은 안전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여승무원은 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상식적으로도 선뜻 동의하기 힘든 판결이었다.

여승무원들은 1·2심에서 이긴 재판을 대법원에서 진다는 건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은 “우리가 옳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길 거라고 버티고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법은 절대 약자의 편이 아니었다. 우리 승무원들은 마치 씹다 버려진 껌이 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 7월24일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2006년 해고되면서 시작된 KTX 여승무원들의 싸움은 9년 만에 그렇게 끝이 난다. 여승무원들은 복직을 위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일요일과 월요일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박씨의 죽음으로 남은 승무원은 34명에서 33명이 되었다. 20대 중반이던 승무원들은 이제 30대 중반이 되었다.

숨진 박씨는 2010년 동료들과 함께 언론 인터뷰에 나선 적이 있다. “만약 자식들이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끝까지 싸우라고 하겠어요?”라는 질문에 박씨는 이렇게 답했다. “휴….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는 전문직이 되면 좋겠지만, 만약 저 같은 상황에 처해 싸운다면 응원하겠어요.”



9년의 소송…파기환송심만 남았다
2006년 3월 KTX 열차 승무지부 파업 결의
2006년 5월 코레일, KTX 여승무원 280여 명 정리해고
2006년 9월 인권위, “KTX 여승무원, 성별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에 해당한다”라며 코레일에 개선 권고
2007년 7월 KTX 여승무원 서울역 단식 농성
2008년 8월 KTX 여승무원 서울역 고공 농성
2008년 11월 여승무원들 코레일 상대로 소송 제기
2010년 8월 서울중앙법원, 여승무원 코레일 근로자 지위 인정(여승무원 승소)
2011년 8월 서울고법, 코레일 항소 기각(여승무원 승소)
2015년 2월 대법원 파기환송. 여승무원 코레일 근로자로 지위 인정 안 함 (여승무원 패소)
2015년 7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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