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어벤져스〉에 어떻게 녹아들었나 세계 곳곳 ‘그리팅맨’ 공공 미술의 ‘히어로’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에서 촬영을 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 영화에서 서울이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은 20분 정도다.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추격 장면이 대부분인 데다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거의 나오지 않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나온 곳은 한강 세빛둥둥섬과 상암동 DMC 광장의 조형 작품이다. 특히 조형물이 돋보였다. 두 사람이 사각의 틀을 사이에 놓고 서로 바라보는 모양을 한 이 작품의 제목은 ‘월드 미러’이고, 만든 이는 유영호 작가다. 국내에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루과이에서는 꽤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유 작가의 대표작은 인사하는 사람의 형상인 ‘그리팅맨’이라는 시리즈 작품이다. 6m 높이의 이 작품을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는데, 우루과이는 ‘그리팅맨’을 처음으로 세운 곳이다. 우루과이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되었고 ‘그리팅맨’을 이용한 공익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광고는 ‘그리팅맨’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바람에 ‘그리팅 스타일’로도 불린다.

국내에는 강원도 양구와 제주에 작품이 있으며, 앞으로 세계 곳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이미 10여 곳에 설치가 예정되어 있다. 유영호 작가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조남진유영호 작가의 작품 ‘월드 미러’(위). 유 작가는 세계 여러 곳에 ‘그리팅맨’을 세울 계획이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나오는 ‘월드 미러’는 어떤 작품인가? 사각 틀은 미디어를 뜻한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그런데 그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다. 미디어를 통한 자아 성찰을 의미한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리팅맨’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오바마가 일본 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장면을 보았다. 동양식 예법으로 깊은 존경을 표한 것이었다. 인사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서양의 악수는 ‘나는 무기를 갖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고개를 숙이는 동양식 인사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반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그리팅맨’을 왜 우루과이에 설치했는가? 우루과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다.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설치 의사를 전달했더니 3년 만에 답이 와서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2억원 정도 들었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1000개의 작은 ‘그리팅맨’을 제작해서 전시한 후 판매했다. 따로 큐레이터도 없고 에이전시도 없었기 때문에 설치까지 모두 직접 했다. 작품을 만들어서 싣고 가야 해서 6m 크기로 제작했다. 6m는 컨테이너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크기다. 특히 서류 작업이 힘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빼앗겼다. 최연충 우루과이 대사가 나서줘서 좋은 장소를 섭외할 수 있었다. 나중에 작품이 설치된 곳의 이름이 한국광장으로 바뀌었다.

한국광장은 어떤 곳인가? 라플라타 강의 하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건너편으로 몬테비데오로 들어가는 입구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좋은 위치다. 그래서 우루과이의 명물이 되었다. 우루과이 관광청 홈페이지의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에도 출판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전기 서문에도 ‘그리팅맨’ 사진이 나온다.

우루과이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우루과이 국민에게서 감사 메일을 많이 받는다. ‘그리팅맨’으로 먼저 인사를 한 힘을 느낀다. 중남미 지역에서는 ‘문화 외교’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다른 지역 설치는 한국 외교관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프로젝트다. 개인이 타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기도 힘들고 문의해도 답변조차 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영호 제공유영호 작가가 우루과이에 세운 ‘그리팅맨’. 작품이 설치된 이곳은 ‘한국광장’으로 개명되었다.
‘공공 미술’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작품이 세워지면 주변에 대한 인상이 바뀐다. 그리팅맨으로 인해 우루과이의 변두리가 유명 관광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인상까지 달라졌다. 공공 미술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 작품이 거기 서 있어야 하는지 의미를 발생시켜야 한다.

원래 공공 미술 작가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개념 미술’을 하는 작가였다. 미술 내적 고민에 빠져 있었다. 새로운 미술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구나’ 싶더라.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공공 미술을 하면서 나 자신도 바뀌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는데 작품과 함께 마음도 광장으로 나왔다.

2호 작품은 강원도 양구에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칠봉 통일전망대 옆에 세우고 싶었다. 북한군이 볼 수 있게 해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DMZ 안에는 작품 설치 허가가 나지 않았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되는데 왜 예술작품은 안 되는가? 그곳은 예전에 북한군을 자극하기 위해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까지 했던 곳이다. 결국 작품은 가칠봉 아래 평화공원에 세워졌다.

계속 개인 비용으로 설치하려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피스텔이 하나 있는데 팔려고 내놓았다. 다행히 제주도 다빈치뮤지엄에서 한 점 구입해줘서 숨통이 트였다. 그 돈으로 일단 세 곳에 세울 비용은 마련했다. 중남미 몇 곳은 이미 섭외가 끝나서 진행 중이고 남반구와 북반구가 만나는 곳,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평양과 베트남에도 세우고 싶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곳에 설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도 실현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한번 해보고 싶다. 이 프로젝트는 다다익선이다. 많아질수록 갖는 힘이 달라진다. 내년까지 약 10군데에 설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동일한 작품이다. 그래야 맥락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다만 키르기스스탄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할 예정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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