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0일,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10대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름은 마이클 브라운(18). 머리와 팔 등에 최소 여섯 발을 맞았으며 숨진 뒤에도 4시간 동안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었다. 이에 분노한 지역사회 흑인들의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1월25일, 브라운을 총으로 쏴 사망케 한 백인 경찰 대런 윌슨(28)에 대해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겨우 가라앉았던 시위가 다시 격해졌다. 주 방위군이 투입되고 시위대의 화염병과 경찰의 최루탄 공방이 이어졌다. 중동에서 반미 감정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성조기 불태우기’가 미국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현 대통령은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은 ‘포스트 인종주의’ 시대의 대표 주자 이미지를 앞세워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번 퍼거슨 사태로 미국 역사 200년 동안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한복판에 다시 서게 됐다.

ⓒAP Photo12월1일 퍼거슨 시에서 한 성직자가 시위에 참여한 흑인 여성을 위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법치국가’임을 강조하며 성난 군중에게 침착할 것을 요구하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가 미적대는 사이 최근에는 뉴욕 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흑인을 체포하다가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뉴욕 시민들도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뉴욕 시 심장부인 맨해튼에서 스태튼아일랜드 대배심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퍼거슨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퍼거슨 시는 세인트루이스 교외에 있는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이 도시의 전체 인구 가운데 67%가 흑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명 시 경찰 가운데 흑인은 3명에 불과하다. 시장과 시의원 6명 중에 흑인은 단 1명이다. 교육위원 7명은 모두 백인이다. 소수의 백인 세력이 인구의 3분의 2나 되는 흑인을 지배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1960년대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수십만명이 들고일어난 흑인 민권운동 이후 겉으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 미국 정부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던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 공개 석상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했다. 하지만 흑인들 처지에서 볼 때 인종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오히려 더 교묘해졌다고 생각한다.

법·제도적 인종차별은 사라졌다 하지만…

퍼거슨 시 주민 대릭 윌슨 씨(30·흑인)는 “일자리를 얻으러 면접을 보러 갔는데 백인 지원자 3명이 모두 멋진 양복을 입고 왔다. 나도 나름 차려입고 갔지만 그 회사는 나를 제외한 백인들만 모두 채용했다. 이런 경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늘 벌어지는 일이라 이제 놀랍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은 애초 나 같은 흑인 엔지니어가 필요 없었다. 구색 맞추기용 또는 장식품으로 나를 면접 장소에 데려다놓았을 뿐이다. 마치 자기 회사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광고하듯이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정규 직업을 구하지 못해 주유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이처럼 차별로 인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흑인이 많다. 또 다른 퍼거슨 시 주민 다나 우드 씨(24·흑인)는 “미국의 대통령도 흑인이지만 그는 싸구려 햄버거를 먹는 이런 빈민가의 실업자가 아니다. 명문대를 나오고 변호사를 하며 상류층으로 산 흑인은 진짜 흑인 사회의 고통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백인들은 법과 제도 때문에 대놓고 차별할 수 없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지니고 있다. 워싱턴 주 시민인 엘리스 씨(89·백인)는 “예전에는 식당에도 백인용과 유색인종 특히 흑인 전용을 표시했다. 또한 흑인은 내 이웃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 구역 안에 살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내 옆집에 흑인이 산다면 나는 우리 가족의 안전 문제부터 걱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월26일 CNN은 “퍼거슨 사태 이전에도 백인과 소수 인종 간 차별 문제를 논의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백인과 소수 인종이 차별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즉 백인은 KKK(백인 우월주의 단체)처럼 인종 적대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거나 백인들 입에서 흑인을 차별하는 명백한 단어가 나와야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직접적인 행동 없이 마음속으로만 차별을 했다면 이는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색인종들의 견해는 다르다. KKK 같은 과격 단체뿐 아니라 유색인종을 피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모든 언행을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퍼거슨 사태의 배경에는 이런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외에도 실업난과 빈곤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 도시의 빈곤층 인구 비율은 2000년에 10.2%였다(미국에서 빈곤층을 정하는 기준은 4인 가족 연소득 2만3492달러다). 그러나 2012년에는 빈곤층이 22%로 급증했다. 퍼거슨 시에 사는 사람 4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AP Photo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다가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에릭 가너의 친척이 부축을 받고 있다(위).

퍼거슨 시의 실업률도 2000년 5%에서 최근 13%로 뛰었다. 미국 전체 평균 6.2%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2008년 이후 불어닥친 미국의 경제위기 여파였다.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이 흑인 사회였다. 콜린 고든 아이오와 대학 교수는 “과거 흑인 시위를 일으킨 주원인은 인종차별이었지만 이번 퍼거슨 사태는 소득 차별에 따른 빈부 격차가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퍼거슨 시 주민들은 지난 10여 년간 실업으로 인한 소득 감소, 그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빈곤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청년의 총기 사망 사건은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문제는 미국 전역에 퍼거슨 시와 비슷한 교외 도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의 불균형이 본격화된 것이 영향을 주었다. 돈이 없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심 외곽으로 밀려났다. 링컨 퀼리언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는 “대도시의 집값은 오르고 있지만 교외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침체 상태다.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도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사회 불안 요인으로 등장한 ‘교외 빈곤화’

브루킹스 연구소가 2000~2012년 미국 95대 대도시와 인근 교외의 빈곤층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교외 빈곤층 증가율은 도심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만 하더라도 도심과 교외 빈곤층 인구는 1000만명가량으로 엇비슷했다. 그러나 2012년에는 교외가 1650만명, 도심은 1350만명을 기록했다. 이 현상은 경제적 불평등이 미국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니번스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교외 빈곤화가 미국 사회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교외로 밀려나는 계층의 상당수는 흑인이다. 제2, 제3의 퍼거슨 사태가 다른 교외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연방정부의 본격 개입으로 퍼거슨 사태는 진화되고 있으나 부의 불평등과 실업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없이는 미국 내 대도시 주변의 슬럼가에서 언제든지 인종 갈등의 불길이 치솟을 수 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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