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KKK’ 부활? 미국이 떨고 있다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23
  • 승인 2019.08.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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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잠잠하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인종 테러’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급증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이 인종주의적 정권을 세우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AFP PHOTO지난 8월3일 백인우월주의자 패트릭 크루시어스가 총기를 난사해 20명을 살해한 엘패소 사건 현장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한 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살해한 딜런 루프(21),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집회에 맞선 맞불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자동차를 돌진시켜 1명을 숨지게 한 제임스 앨릭스 필즈(22), 2018년 10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에서 총을 마구 쏘아 11명을 숨지게 한 로버트 보어스(46), 지난 8월3일 엘패소 월마트에서 총기를 난사해 20명을 숨지게 한 패트릭 크루시어스(21). 지난 몇 년간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범인들이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점이다. 이들의 악행에 미국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우려는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의회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엘패소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열흘 전 그는 상원 법사위원회 증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의 상당수가 백인우월주의 폭력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했다. FBI가 파악한 미국 내 테러 사건 가운데 40%가 인종혐오 범죄인데 범인 대부분이 백인우월주의자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잠잠하던 백인우월주의가 반(反)이민 기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미국 사회의 고민이 깊다. 먼저 전문가들은 백인 인구 감소와 히스패닉 등 이민자의 급증으로 인한 인구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즉 1964년 민권법 발효와 이민 문호 개방으로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비백인 인구의 비율이 높아졌다. 미국 사회 곳곳에서 이들의 힘도 점차 커졌다. 상대적으로 백인 기득권이 줄어들면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위기감이 높아졌다. 엘패소 사건의 범인 패트릭 크루시어스는 “나는 그저 내 나라가 히스패닉의 침공으로 벌어진 문화적·인종적인 대체를 막고자 했을 뿐이다”라며 히스패닉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그가 지목한 히스패닉은 멕시코와 중남미 이민자들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7월 현재 미국 인구는 3억875만명. 이 가운데 백인은 60%이고, 히스패닉이 18.3%를 차지해 두 번째로 많다. 흑인은 13.4%, 아시아계는 5.9%이다. 히스패닉 유권자는 3200만명으로 3000만명가량인 흑인 유권자를 앞지른 상태다. 지난해 6월 브루킹스 연구소의 인구 증가 추산치 보고서에 따르면, 2045년에는 백인이 전체 인구 대비 49.7%로 뚝 떨어진다. 히스패닉은 24.6%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미국 통계국은 2100년 미국 인구를 5억7100만명으로 추산할 때 백인이 40%, 히스패닉이 33%에 이르리라 전망한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이 같은 인구 변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비백인 지역 사회에서 전략적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복스> 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 목적을 “백인을 급진 세력화해 미국에 좀 더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정권을 세우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시카고 대학의 인종문제 전문가인 캐슬린 벨루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백인 다수의 지배가 아닌 나라로 바뀌어가는 인구 변화를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라고 썼다. 그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목적을 ‘백인 파워 회복운동’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을 백인 다수 사회로 환원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백인 일색의 ‘아리안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AP Photo지난 8월7일 엘패소 총기 난사 사건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앞에서 시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병원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백인우월주의 사이트 ‘에이트챈’ 급성장

캐슬린 벨루 교수는 엘패소 사건 범인이 테러 8분 전 백인우월주의자 커뮤니티 사이트 에이트챈(8chan)에 행동강령을 올린 점에 주목한다. 백인 파워 회복운동의 주류인 그가 극우 사이트를 통해 동조자들의 동참을 적극 호소했다는 점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에이트챈은 2013년 한 프로그래머가 개설했다. 개설 당시 규모가 작은 사이트였다. 에이트챈은 게시물 내용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반이민주의자들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몰려 폭발적으로 커졌다.

다른 전문가들도 에이트챈 같은 극우 성향 사이트가 백인우월주의를 고취하고 확대 재생한다고 본다. FBI 대테러 전문가인 클린트 와츠는 <워싱턴포스트>에 “에이트챈은 백인우월주의자들과 폭력을 저지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극단화되고 계획을 짜며 선언문을 공유하는 장소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엘패소 사건 뒤 에잇챈에는 범인을 “우리 친구”라며 두둔하거나, 총격 사망자가 늘어나자 “고득점을 달성했다”라며 칭찬하는 글이 올라왔다. <뉴욕타임스>는 “에이트챈은 범인의 메시지가 더 멀리 퍼지게 하는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엘패소 총격 사건과 관련해 “우리 국민은 한목소리로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본질적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자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대권 주자들은 “트럼프야말로 백인우월주의자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대통령으로부터 공격을 승인받았다고 느낀다”라며 그를 비난했다.

CNN의 존 애블런 선임 정치분석가도 “대통령이 인종혐오 문화에 기여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기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줄리엣 케이엠 전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트럼프가 자극적인 언어로 백인우월주의 폭력을 증가시켰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 그의 언행이 백인우월주의 폭력을 조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비난하지도 않아서 양비론으로 흐르는 게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로드 로젠스타인은 <타임> 최근호에서 “경찰이나 검찰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이 백인우월주의 확산과 폭력을 조장하는 원인을 분석해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라며 정치권에 화살을 돌렸다. 엘패소 사건을 계기로 백인우월주의 테러가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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