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계절이다. “제발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가버렸다. 학생들은 기울어진 배에서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그러냐”라고 울면서 하소연할 뿐이었다. 코앞에 있던 해경은 그들에게 “나오라” “뛰어내리라”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앳되고 착한 목숨들이 그렇게 버려졌다. 생존 학생들의 법정 증언으로 악몽 같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

시간이 멎었다. 탐욕과 부패, 무능이 결탁해 아이들을 바닷물 속에 묻은 뒤 부모들의 시계는 멈췄다.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목소리와 체취를 느낀다. 가방 멘 아이가 골목길 안으로 막 들어설 것만 같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이가 입던 옷에 엄마는 얼굴을 묻는다. “하늘에서 엄마 보고 있니?” 중얼거리며 하늘을 본다. 눈이 짓무르고 가슴이 찢어진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가족들은 걷는다. 단식을 한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가슴 아픈 장면이 요즘 자꾸 떠오른다. 영화에서 재연된 조선 백성들의 모습 때문이다. 무수한 백성들이 청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잡혀간다. 혼례를 올리던 신랑 신부도 밧줄에 목이 매여 짐승처럼 끌려간다. 보면서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사실(史實)일 거라 직감했다. 그런데, 실제 그랬다. 더 참혹하고 더 억울했다.

〈병자호란〉(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펴냄)이 그걸 보여준다. 청나라에 끌려갔던 안단(安端)이라는 사람은 38년 노비 생활 끝에 탈출한다. 구사일생으로 의주(義州)에 다다랐지만 조선 관리에게 붙잡혀 청나라 칙사에게 넘겨진다. 의주부윤 조성보(趙聖輔)가 직접 고변했다. “고국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 왜 나를 죽을 곳으로 내모느냐!” 그의 절규가 허망하게 메아리쳤다. 도망 노비는 십중팔구 처형됐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 됐던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시대적 배경도 똑같다. 부자, 권력자들의 탐욕과 부패가 극에 달했다. 백성은 핍박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백성과 권력의 관계, 그 본질적 속성이 지금은 달라졌을까?

‘세월호 침몰 참사’는 그 오래된 관계가 약간 업데이트되었을 뿐이란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눈언저리가 짓무른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고압적 언사를 보인 의원들의 모습에서 ‘병자호란’과 ‘민란의 시대’의 그림자를 본다.

7·30 재·보선 결과를 두고 정치권의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나 간과하면 안 될 것이 있다. 민심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더 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이 보인 눈물이 앞으로 정말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봄이 가고 여름도 고비를 넘는 지금, 잠에서 깬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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