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마저 무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29일 안산에 차려진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후,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희생자 가족과 국민에게 사과했다. 세월호 침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에 시달리던 국면이었다.

효과는 청와대의 기대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사과 이후 비판 여론이 더 들끓었다. 유가족 대표단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실천과 실행도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유가족까지 정면 비판에 나서면서 청와대는 더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위기 국면을 반전시키는 카드의 성격이 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의 사과는 사적 관계에서의 사과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일종의 위기관리 메시지 전략이 필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네 차례 사과(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과, 기초노령연금 공약 후퇴 사과, 국정원 증거조작 사과, 세월호 재난대응 사과)는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대체로 역풍을 불렀다.
 

ⓒ연합뉴스4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번번이 핵심을 놓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와 뇌과학자 정재승이 함께 쓴 〈쿨하게 사과하라〉에서는, 성공하는 사과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로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는 태도’를 든다. ‘죄송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잘못이 있었고, 그것이 왜 자신이 사과해야 할 문제인지, 정확하게 책임을 인정해야만 사과의 효과가 생긴다.

만약 책임 문제를 피해간다면? 식민 지배 역사를 둘러싼 한·일 관계와 같은 꼴이 된다. 한쪽은 이미 사과했다고 생각하는데 반대쪽은 사과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상황을 계속 꼬이게 만든다. 식민 지배의 책임 인정을 생략해버리는 ‘일본식 사과’는 동아시아 외교의 오래된 골칫거리다.
박근혜식 사과에서 늘 빠져 있는 대목이 책임 인정이다. 세월호 사과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해 한스럽다”라고 말했다. 책임 소재가 자신이 아니라 과거 정권으로 이동한다.

책임 소재가 모호한 ‘유사 사과’

윤창중 사과와 국정원 사과는 더 노골적이다.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을 두고는 “관련자들은 응당한 책임을 져야”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라고 했다. 국정원 증거 조작 사과 때는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심판자로 올라가버린다.
박근혜식 사과는 책임을 아래로 하청 준다. 사과 표현은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법은 없다. 이럴 때 듣는 이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책임 소재가 모호한 이런 사과를 김호와 정재승은 ‘유사 사과’라고 부른다.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의 예를 들어보자. 2008년 5월,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자신에게 질문을 한 여기자를 “스위티(sweetie)”라고 부르는, 성희롱 논란이 일 만한 실수를 했다. 오바마는 여기자에게 사과 메시지를 남긴다. “나는 당신에게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을 사과합니다. 저의 나쁜 말버릇일 뿐 비하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번 실수를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전화 한번 주세요. 제 홍보팀을 통해 당신에게 보답할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책임 떠넘기기도, 주어가 모호한 표현도 없다. 오바마는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사과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공감’은 ‘책임’만큼이나 중요한 키워드다. 어정쩡한 사과를 보며 여론은 “대통령이 과연 슬픔을 느끼고는 있을까?” 하고 묻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공감능력이 의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연합뉴스4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유가족으로부터 항의를 듣고 있다.

 


사과가 피해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려면, 피해자가 보기에 가해자도 어느 정도 상처를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피해자 앞에서 책임을 인정하면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상처다. 김호와 정재승은 이를 ‘상태의 평등화’라고 부른다. 사과를 통해 가해자도 상처받은 처지가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감을 형성하는 평등한 사이가 된다는 의미다.

대통령의 사과는 ‘상태의 평등화’ 과정도 생략했다. 취임 이후 네 차례 사과는 모두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나왔다. 사과를 받을 대상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언론을 통한 간접 대면도 피했다. 사과 발언을 듣는 이들은 대통령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이었다.

‘피해자 앞에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대통령의 사과에 전혀 공감하지 않게 되었다. 4월29일 분향소에 온 대통령은 유가족 앞에서 사과하는 대신, 다음 일정인 ‘마음 편한’ 국무회의를 사과 장소로 택했다. 외면당한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분향소에 그냥 광고 찍으러 온 것 같았다”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왜 늘 실패할까

책임 인정도 공감 형성도 없는 박근혜식 사과 메시지는 허겁지겁 해결책 제시로 내달린다. 박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를 보면 용서를 구하는 대목은 없거나 아주 소략한 반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해결책에 메시지 대부분을 배치한다. 세월호 사과 때도 박 대통령은 총리실 산하의 재난 컨트롤타워 신설 계획을 길게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왜 늘 실패할까. 진정성 부족, 오만, 독선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의미 있는 지적이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무능이다. 사과는 밀도 높은 메시지이고, 정치인에게 메시지의 실패는 무엇보다 무능의 증거다.

 

 

 

 

ⓒ시사IN 신선영4월29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정홍원 국무총리가 보내온 조화가 유족들의 요구로 정부 합동분향소 밖으로 내보내져 놓여 있다.

 


대통령의 사과는 희소한 자원이다. 5년 임기 동안 몇 차례밖에 쓸 수 없는 위기 극복 카드다. 하지만 청와대는 임기 14개월 동안 네 번 사과 카드를 쓰면서도 국면 반전은커녕 사태를 악화시키는 무능을 되풀이했다. 형식과 내용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고 듣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쿨하게 사과하라〉의 공저자 정재승 교수는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대중의 승인을 얻어서 대통령의 리더십도 오히려 강하게 만들었을 텐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보좌진이 무능해서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 캠프가 내놓은 사과 메시지는 그리 무능하지 않았다. 2012년 9월24일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문제를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5·16, 유신,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등을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라며 직접 책임을 인정했다. “가족을 잃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공감을 형성하는 노력도 했다. 기자회견과 질의응답도 최대한 수행했다.

당시는 박 후보가 역사관 때문에 지지율 추락을 겪던 때였다. 박근혜 캠프의 대응은 기민했고, 사과 메시지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법 두루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집권 이후, 박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철저하게 박근혜 본인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가 있다. 책임을 인정하는 메시지는 가차 없이 잘라낸다. 국민이든 유가족이든 피해 당사자 앞에 대통령은 나서지 않는다.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9월, 보좌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유권자의 뜻이었다. 2014년 4월, 이제 보좌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대통령 박근혜의 뜻이다. 메시지 생산자가 만족시켜야 할 ‘주 고객’이 달라져버렸다. 메시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위’의 선호에 맞춰 구성된다. 그 결과, 유권자의 관점에서는 놀랍도록 무능한 사과 메시지가 연이어 등장했다.

‘위’만 쳐다보다 무능을 노출하는 장면은 어느 새부턴가 박근혜 정부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대통령이 세세한 부분까지 깨알같이 챙기고, 장관들이 고개를 숙이고 받아적기만 하는 기묘한 국무회의 풍경도 되풀이되고 있다(〈시사IN〉 제346호 커버스토리 ‘구명조끼 홀로 입은 최종 책임자’ 참조).
모두가 대통령만 쳐다보는 구조로는 시스템이 무능해지기 쉽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정부 조직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해경,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심지어 청와대까지 책임이 어디로 튈지 몰라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의 발언록에서 세세한 일까지 깨알같이 지시하는 성실함을 찾기란 쉽다. 4월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은 “3000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동하는지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고를 보면 이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라고 질타했다. 4월29일 국무회의에서도 이 지시를 다시 상기시키는 말을 했다.

모두가 대통령만 바라보는 시스템이 낳은 무능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해야 원활히 작동할 것인가 하는 고민,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해야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하는 총체적인 사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대통령이 지시를 하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자신의 아버지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단순한 접근법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4월29일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이 “실천과 실행도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대통령의 사과를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은,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깨알 리더십’이 실제로는 거대한 무능을 낳는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깨알 지시-지시만 챙기며 눈치 보는 관료-자율성과 책임감 실종-무능’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민낯을 드러냈다. 이렇게 보면 사과 메시지에서 드러나는 무능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특유의 ‘박근혜식 무능’에 사례 하나를 더한 것에 가깝다.

유가족들의 ‘사과 수용 거부’ 기자회견이 나온 다음 날인 4월30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굉장히 유감인데”라고 말했다. 유가족의 발언을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변인이 ‘방어’를 하는 격이었으니, 대변인이 피해자와 국민 눈높이에서 보는 대신 대통령의 심기를 기준 삼은 꼴이었다. ‘모두가 대통령만 바라보는 시스템’은 어디서든 불쑥불쑥 무능을 노출한다.
여론 반발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는 세월호 수습이 끝날 때쯤 대통령이 ‘2차 사과’를 하는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보호를 최우선으로 했던 세월호 사과 메시지는, 특유의 무능 때문에 ‘한 건으로 두 번 사과하는’ 굴욕적인 상황으로 대통령을 밀어넣을지 모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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