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새정연)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두 세력의 통합을 선언했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안철수 위원장을 비롯해 새정연 핵심 인사들이 통합은커녕 선거연대마저 거듭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새정연에서 독자 생존 노선을 대표했던 윤여준 의장은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통합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지러운 수 싸움이 이어졌던 통합의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김상곤 카드가 살아 있어야 한다”

창당 절차를 밟던 새정연이 처한 최대 난제는 인물난이었다. 수도권에서 신당의 간판으로 내세울 만한 광역단체장 후보를 찾지 못하면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르기 어려웠다. 안철수 의원 본인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비상대책이 주위에서 거론될 정도로 수도권 인물난은 심각했다.

개혁색이 분명하고, 인지도와 득표력과 당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민주당 소속이 아니어야 했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후보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새정연은 김상곤 경기교육감에 주목하고 일찍부터 공을 들였다. 언론이 여론조사를 진행할 때 새정연의 경기도지사 가상 후보로 김 교육감을 추천하기도 했다.

안철수 위원장은 김상곤 교육감을 따로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김 교육감의 출판기념회(2월17일) 며칠 전이었다. 이 자리에서 “함께하자”라는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김 교육감은 응하지 않았다.

김상곤 교육감과 꾸준히 교감해온 민주당의 한 핵심 인사는 당시 김 교육감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했다. “김 교육감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퇴행을 막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안철수 측이 자신을 영입 대상으로 고려하니, 야권통합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야권 분열을 해소할 ‘카드’로 쓰겠다고 결심했다는 얘기다. 김 교육감 측 관계자의 말도 결이 같다. “원래 도지사 도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까지 가지 않고 무소속 연대 형식으로만 선거를 치렀어도 출마하는 일은 없었다.”

이후 김 교육감은 ‘3자 구도’로는 도지사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1대1 구도’가 되어야만 나설 것이라는 신호를 꾸준히 보냈다. 하지만 새정연은 계속해서 독자 노선을 천명했다. 2월24일, 안 의원과 김 교육감이 두 번째로 마주앉았다. 이 자리에서 김 교육감은 교육감 3선 도전 의사를 알렸다. 삼자구도 아래의 새정연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한 셈이다. 이미 다음 날(2월25일) 기자회견까지 잡아둔 터였다. 김 교육감이 사실상 유일한 카드였던 안 의원은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민주당도 움직였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이날 김 교육감을 만나 “며칠 시간을 달라”고 설득했다. ‘김상곤 카드’가 살아 있어야만 새정연과의 협상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 교육감이 만일 도지사 선거에 나서려면 교육감 사퇴 시한은 3월6일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당 지도부와의 교감 속에 김 교육감을 붙들어놓는 데 성공했다. 지도부도 이 시점(2월24일)에서는 새정연과의 야권연대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얘기다. 한때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려했던 이종걸 의원도 한몫을 했다.
 

ⓒ시사IN 이명익3월5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지도부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3월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연 위원장이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가진 ‘상견례’ 성격의 자리였다.

김 교육감은 2월25일로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이로써 그는 한 번 체면을 구겼다. 우왕좌왕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를 고맙게 생각하는 기류가 민주당 일각에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그분이 야권연대를 위해 한 번 희생해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육감은 3월5일 교육감직을 사퇴하고 경기도지사 경선 준비에 착수했다.

‘김상곤 카드’를 살려놓은 덕분에, 민주당은 야권연대 협상의 고리를 걸어둘 수 있었다. 그런데 2월24일은 새정연이 공세적인 독자 노선을 거듭 밝히던 국면이었다. 야권연대 전망은 대단히 어두워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시점에 어떻게 야권연대 협상에 자신감을 갖고 김 교육감을 만류할 수 있었을까?

안철수의 ‘기초 무공천 선언’에서 기회 포착

새정연의 또 다른 딜레마는 “새정치의 정체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거듭 시달렸다는 점이다. 새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거셌다. 창당 선언과 예비 당명 확정 이후, 새정연의 지지율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몇몇 조사에서는 새정연 지지율이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기초단위 선거의 후보군도 생각만큼 모이지 않았다.

안철수 위원장은 새정치 논의를 주도할 만한 몇몇 새롭고 강력한 어젠다를 꽤 깊숙이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지율 정체와 후보군 부실 문제가 너무 빨리 발목을 잡았다. 2월24일, 안철수 위원장은 익숙한 카드를 다시 손에 들었다. 이날 안 위원장은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기초 단위 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겠다”라고 발표한다. 대선 당시의 기초단체선거 공천 폐지 약속을 단독으로라도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민주당은 겉으로는 혼란에 빠진 모습이었다. 당내 논란도 증폭됐다. 하지만 지도부는 안 위원장의 ‘기초 무공천 선언’에서 협상 공간이 열릴 가능성을 읽었다. 지지율 하락과 구인난이라는 이중고에 내몰린 안 위원장이 협상의 ‘고리’를 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상곤 교육감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설득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이런 상황 인식에서 나왔다.
 

ⓒ시사IN 이명익2월17일 김상곤 경기교육감(가운데)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안철수 새정연 위원장(왼쪽)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

지도부는 이틀 동안 혼란스러운 행보를 연출했다.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과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은 잇따라 기초 단위 공천 강행을 시사했다. 김한길 대표도 공천을 하는 방향으로 결심했다는 전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틀 뒤인 2월26일, 김 대표는 돌연 ‘결정 유보’ 선언을 한다. 다음 날인 27일,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이 기초 공천을 의제로 양자 회담을 했다.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핵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초 공천 문제를 고리로 연대협상 테이블을 편다는 전략을 미리 세워두고도 이틀 동안 갈지자걸음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론을 무공천으로 모아내는 것이었다. 이게 안 되면 김 대표에게도 협상 카드가 부족했다. 지도부는 모호한 포지션을 잡고 당내 논의 기류를 봤다. 무공천 기류가 높아지며 한숨을 돌렸다. 2월28일, 김한길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 대다수가 기초 무공천에 동의하는 것을 확인하고 안철수 위원장과의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

둘째, 안철수 위원장이 며칠 동안 이슈를 주도하는 모양새가 민주당으로서도 중요했다. 안 위원장이 주도하고 민주당이 끌려들어가는 그림이 되어야 협상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민주당으로서는 통합 자체가 최고의 대의명분이었지만 새정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정연 처지에서 보면, 안 위원장 본인까지 거듭 천명해온 독자 노선을 뒤집을 이유가 절실히 필요했다. 김상곤이라는 실리와 새정치라는 명분, 그리고 판을 주도한다는 모양새까지 모두 갖추지 않으면 방향 전환이 쉽지 않았다. 지지율 하락과 구인난의 이중고를 맞이해서도 새정연이 단독 노선으로 ‘고난의 행군’을 선택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었다.

김상곤과 새정치라는 두 고리가 동시에 걸리면서 결국 협상의 공간이 열렸다. 새정치의 상징이 기초공천 폐지여야 했느냐는 논란은 안 위원장 주위에서도 있었지만, 안 위원장은 익숙한 카드를 다시 뽑아드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통합 합의를 이루어내며 눈앞의 위기를 동반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은 샅바 싸움, 본게임은 따로 있다

통합 선언 이후 첫 주는 샅바 싸움에 가까웠다. 통합 형식(새정연 창당 후 당대당 합당이냐 민주당 해산 후 신당 창당이냐) 등 큰 틀에서 결정적이지 않은 문제를 두고 진도가 더뎠다. 정치권의 관찰자들은 새정연 측의 ‘내부 단속’이 핵심 과제라는 분석을 내놓곤 한다. 새정연이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하면서 내부 인사들과 지지층의 동요가 간단치 않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 선명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종종 등장한다는 얘기다. 3월7일 양측은 ‘제3지대 신당 창당 후 민주당과 합당’을 골자로 하는 통합안에 합의했다. 신당추진단을 김한길·안철수 공동단장 체제로 꾸렸다.
 

ⓒ연합뉴스2월21일 민주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요 이슈를 다룰 분과위원회 세 개를 설치했다. 경제정책과 대북정책 등 당의 정체성을 규정할 정강정책 분과, 지도체제와 공천제도 등 권력 배분의 핵심 원리를 다루는 당헌당규 분과, 그리고 새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넣을 새정치비전위원회로 나눴다. 이 외에 총무조직 분과와 정무 분과도 설치했다.

세 테이블 모두가 만만치 않다. 정강정책 분과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주목받는다. 안 위원장은 안보를 강조하고 종북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내려오는 대북협력 정책을 지켜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당헌당규 분과는 당의 권력구조라는 핵심 이슈를 건드린다. 통합 당시 천명한 ‘5대5 정신’을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서부터, 민감한 문제인 신당의 지도부 임기까지 현안이 산적해 있다.

통합신당은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으나, 임기가 언제까지인지를 못 박지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한길 대표의 잔여 임기(2015년 6월까지)를 이 투톱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신당이 생기는 것이므로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를 새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모두 있다. 다만 2016년 4월로 예정된 20대 총선 공천권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 직후에 임기 2년의 지도부를 새로 뽑는 것은 서로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번 합의의 양 축인 민주당 내 비노(비노무현) 블록과 새정연은 물론 친노(친노무현) 일부에서도 총선 공천권이 걸린 ‘본게임’은 2015년에 하는 편이 낫다는 정서가 있다.

새정치비전위원회는 새정치의 내용을 채워넣는 일을 맡았다. 새정연 측에서 어떤 혁신안이 나올지가 핵심 관심사다. 3자 구도였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정치 혁신안의 주도권은 새정연이 쥐고 있다.

문제는 결국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 측의 한 협상 관계자는 “새정연이 원하는 게 분명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비전위원회가 제일 걱정이다. 대선 때의 ‘의석 수 100석 축소’ 같은 엉뚱한 안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국회의원 100석 축소안을 정치혁신안으로 던졌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대세를 그르친 바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한림대 최태욱 교수는 새정치 논란을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 정치의 문제를 정교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안 위원장이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줄기차게 말해온 만큼, 독일식 비례대표제나 대선 결선투표제와 같이 양당제를 완화하는 제도개혁안을 던지는 것이 논리에 맞다.” ‘기득권 내려놓기’ 같은 목표가 모호한 개혁안보다는, 정확한 문제의식과 뚜렷한 목표와 합리적인 전략이 함께 나올 때에만 ‘새정치’의 내용을 채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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