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휑하니 뚫린 가슴의 공허가 많이 아물고 있는 느낌이다. 텅 빈 심중을 어루만져준 손길은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낮은 자세로 빈자와 약자들에게 보여준 진정 어린 사랑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교황은 취임 후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 머물면서 ‘빈자를 위한 교회’를 실천했다. 지금도 그는 지구촌 곳곳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기도와 봉사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얼마 전 교황 권고문인 ‘사제로서의 훈계’를 발표하면서 밝힌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특히 가슴을 울린다. “주가지수 2포인트 하락은 뉴스가 되면서 집 없는 노인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세태를 개탄하며, 그는 사제와 신도들이 “사회통합과 인권, 시민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작금의 현실을 “통제받지 않는 자본이 ‘새로운 독재자’로 잉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 그는 사제들이 정치 문제에 적극 관여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가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한 교황의 발언을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것이 자국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여길 법하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또 있으랴. 세밑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고 분신자살한 이남종씨 사건 관련 경찰의 왜곡 시도, 국사 교과서를 두고 정부와 집권 여당이 집요하게 보여주는 퇴행적 행보, 국정원·군부대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그 은폐 의혹, NLL 문제를 둘러싸고 집권당과 정보기관이 벌인 현란한 꼼수들, 코미디 같은 종북 놀음, 수서발 KTX 자회사 운영 및 민영화 논란 등 무서운 일들이 일상화되어 감으로써 내일이 더욱 두려워지는 나라.

근저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핵심은 ‘거짓과 꼼수’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이 두 가지는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다. 약국에서 흔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경구를 볼 수 있다. 이 약국 버전을 정치인 버전으로 바꾸면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가 되지 않을까. 건강한 사회나 국가를 떠받치는 대들보는 ‘돈’이 아니라 ‘신뢰’다.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 은퇴하여 낙향 생활을 하는 한 언론계 선배의 시니컬한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입법기관이라고 하는 집권당 의원들이 요새는 꼭 홍위병으로 보인단 말이야. 장관들은 모두 장기판의 졸로 보이고….” 이것은 선배의 냉소주의인가, 아니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노년의 혜안(慧眼)인가?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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