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먹지 말라고? 염장 지르는 소리 말라
  • 천관율 기자
  • 호수 34
  • 승인 2008.05.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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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자가 원하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산이 들어오면 먹지 않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안이한 문제의식은 광우병보다 더 무섭다.
   
ⓒ시사IN 윤무영
수많은 가공 식품(위)의 원료인 젤라틴은 소가죽으로 만든다. 잠재적 위험에 대비한 관리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거다. 미국산 쇠고기, 원하지 않는다면 안 먹을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쇠고기 수입업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미국산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우의 절반밖에 안 되는 가격도 그렇지만, 맛 또한 국내산과 비슷해 호주산보다 더 경쟁력이 있으리라는 평가다.

정부는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제가 있으니 안심하라는 태도다. 하지만 현행 규정대로라면 면적 300㎡(약 90평)가 넘는 음식점만 원산지 표시 의무를 진다. 전체 음식점의 2% 수준이다. 오는 6월에 100㎡(약 30평)가 넘는 음식점까지 대상에 포함되도록 규정이 강화되지만, 그래도 전체의 20% 정도다. 서민이 즐겨 찾는 영세한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4월21일부터 원산지표시제 일제 단속을 벌이고 있다. 4월30일까지 열흘 동안 238개 업소 가운데 26개(11%)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300㎡ 이상의 대형 음식점만 단속한 결과가 이러니, 약간의 단가 차이에도 민감한 영세 식당은 값싼 미국산 쇠고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에서 한우 전문 정육점을 운영하는 정 아무개씨는 분식집ㆍ만두가게 같은 주위 식당의 요청에 못 이겨 1년 전부터 호주산 쇠고기를 판다. 요즘 정씨는 미국산이 들어오면 취급을 해야 할지 갈등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소 부산물’이다. 소뼈나 내장 같은 부산물은 단가 차이가 더 심하다. 수출국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큰 쓸모가 없는 부산물이 국내에서는 식용으로 높은 값에 거래된다. 또 다른 수입업자는 “사골의 경우 국내산과 호주산 단가 차이가 심하면 10배씩 난다. 육수를 내는 식당치고 국내산을 쓰는 집은 찾기 힘들다”라고 귀띔했다. 뼈, 내장 등의 광우병 위험 수준이 살코기보다 몇 배 높아 처치곤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현지 축산업자에게 한국은 매우 ‘고마운 시장’이 될 전망이다.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광우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될까? 확신하기 힘들다. 소를 재료로 만든 2차 가공품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젤라틴과 쇠고기 분말이다. 젤라틴은 소나 돼지 가죽으로 만들고, 쇠고기 분말은 소뼈 등을 고아낸 원액을 건조해 제조한다.

“젤라틴이 안 들어가는 식품이 없다고 보면 된다.” 젤라틴 생산업자의 말이다. 젤리, 마시멜로같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곳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나 알약 캡슐, 심지어 와인에까지 들어간다. 식품의 접착력과 점성을 높여주는 ‘증점제’로 요긴하기 때문이다. 쇠고기 분말 역시 우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먹는 라면과 조미료에 섞인다.

학교와 군대는 '광우병 무방비 지대'

지금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들 쇠고기 가공품이 들어간 식품 리스트가 ‘광우병 위험 식품’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일종의 공황 상태마저 엿보인다. 젤라틴이 들어가는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오리온은 허겁지겁 “초코파이에 들어가는 젤라틴은 전량 돼지 가죽으로 만든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수의학)는 “확률로만 보면 이들 2차 가공품이 SRM(광우병 특정 위험물질)과 같은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다”라며 과잉 반응을 경계했다.

안전하다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광우병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거다”라고 우교수는 말한다. 예측할 수 없을 때는 확률을 따질 게 아니라, 최대한 모든 위험을 배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이 공포에 떨 이유는 없지만 당국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식약청은 “(쇠고기 수입 관련) 농수산부 고시가 나오기를 지켜보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연합뉴스
급식업체의 이윤이 우선인 학교 위탁 급식은 청소년을 미국산 쇠고기에 무방비로 노출할 위험이 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상황은 또 있다. 급식이다. 학교와 군대는 미국산 쇠고기를 피해갈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지난해 홍문표 의원(한나라당)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사용한 비율이 86%에 이른다. 특히 학교 직영 급식은 29%만이 수입산을 사용한 반면, 외부 업체가 들어오는 위탁 급식에서는 94%가 수입산을 썼다.

이윤을 추구하는 위탁 급식업체가 값싼 수입산을 선호하리라는 사실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건 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 때문인지 이 대통령은 4월26일 “학교 급식에는 한우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급식운동본부 배옥병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급식에 한우를 내려면 정부가 예산을 대야 하는데, 그러면 국내산에 정부 보조를 금지하는 WTO 협정 위반이다. 이것이 얼마나 학교 급식운동 현장을 괴롭혔던 문제인지 잘 모르고 즉흥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

군대도 거대한 사각지대다. 현재 군부대에 공급되는 쇠고기는 1인당 35g이 정량이다. 이 중 20g이 수입산으로 잡혀 있다. 광우병에 특히 취약한 음식인 꼬리곰탕의 경우 100% 수입산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내산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지만, 그랬다가 정부가 수입통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WTO 체제에서 급식의 안정성을 확보할 정책 수단이 우리 정부에는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체급식과 관련해 특별한 안전장치 하나 마련하지 않고 협상을 체결했다. 졸속 협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국내외 각계 전문가가 입을 모아 위험을 경고하는데도 정부는 덮어놓고 안전하다고만 강변한다. 그 탓에 시민은 여러 ‘괴담’에 휩쓸리며 공황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일본 농림부는 10년 안에 광우병 쇠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광우병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내부 목표로 ‘검역 주권’을 틀어쥔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이유다”라고 소개했다. 우리 정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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