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우고 또 메우고 사라지는 남해안
  • 변진경 기자
  • 호수 33
  • 승인 2008.04.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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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스식 해안이 사라진다. 지역경제개발 논리 앞에 남해의 수많은 만이 흙으로 메워지고 있다. 매립지에는 주로 조선산업단지가 들어선다. 수정리 분쟁은 그 중 한 사례일 뿐이다.

   

경남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 주민 김대길씨(27)는 중학생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바다낚시를 했다. 그가 다니던 구남중학교 구산분교는 수정만 과 접해 있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공이 바다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체육시간에는 수영과 낚시를 즐겼다. 그가 졸업하기 전, 바다는 매립되기 시작했다. 지금 구남중 구산분교 운동장 앞에는 잿빛 펜스 너머 23만㎡의 매립지가 펼쳐져 있다. 바로 그곳에 STX중공업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온다.

‘바다의 추억’을 잃은 남해 마을은 수정리 말고도 숱하다. 수정리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도착하는 난포리 앞바다에도 매립 계획이 잡혀 있다. 난포는 남해에 사는 물고기가 알을 까고 치어가 자라는 대표 산란지이다. 연안 옆 산 절벽에는 멸종위기종 수달도 산다. 경상남도 각 지자체에서 메우고 있는 남해 연안 면적은 총 4224만여㎡(2007년 8월 기준)에 달한다. 월드컵 경기장 5670개를 만들 수 있는 넓이다. 지리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남해 ‘리아스식 해안’ 설명 문구가 사라져야 할 판이다.

매립지 절반 이상에는 조선업 관련 공장이 들어선다. 최근 조선업계가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2007년 한 해에만 전세계 수주량 40.4%에 달하는 3200만CGT를 주문받았다. 2003년 이후에는 수주량 세계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경남은 일자리도 주고 세금도 내주는 조선업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선물 가운데 하나가 토박이들이 물장구치고 고기 잡던 ‘남해 앞바다’이다. 조선공장이 들어설 때마다 작은 바닷가 마을은 한바탕씩 뒤집어진다. 통영시 봉평·도난동, 고성군 동래면 큰구화포 마을, 사천시 남일대해수욕장 등에서 주민과 지자체, 주민과 기업, 주민과 주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조선 기업은 주민에게 충분한 보상과 피해 방지책을 약속하고 들어온다. 수정리에 자리 잡겠다는 STX중공업도 도로를 넓혀주고 복지·스포츠 타운을 지어주며 지역주민 자녀에게 공채시 가산점을 주는 등 웬만한 요구는 다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조선산업 유치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업계 활황은 지금이 최고 정점이라는 것이다. 마산·창원환경연합 김일환 사무국장은 “지금은 주문받은 배를 만들기에 급급해 곳곳에 공장을 짓지만 몇 년 뒤 물량이 소진되면 아예 안 들어온 것보다 더 무서운 ‘지역 공동화 현상’이 생길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자생능력을 잃은 바닷가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결국 외부인에게 주어지는 부동산 특혜만 남을 것이다.” 수정리 땅값은 1년 전에 비해 2배 올랐다.  

"애초에 땅을 메운 게 잘못이었다"

STX공장 유치 반대파든 찬성파든 수정리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동의하는 말이 있었다. “1990년대 애초 매립을 했던 게 잘못이었다.”  반대파 이석곤씨는 당시 유일하게 매립을 반대하던 주민이었다. 그는 “그때 저 매립지가 주택용지로 남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예견했었다. 찬성파 김영곤씨마저 “메운 땅을 다시 파낼 수 있는 다른 막강한 힘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중학생 때 운동장 낚시를 즐기던 김대길씨는 지금 수정리에 남아 아버지가 해오던 부동산 일을 돕는다. 마을에 변화가 없어 답답하다는 그는 STX중공업 공장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라는 어르신한테는 당연히 안 좋겠지예. 이해합니더. 지금도 바다가 있었으면 관광객도 찾아오고 더 좋지예. 근데 이미 메까버린 걸 우짭니까? 이대로 땅을 놀릴 순 없잖아예.” 이미 메워버린 바다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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