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저들은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 하지 않는가. 국민을 아무리 우습게 봐도 이건 너무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디에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있단 말인가. 이 같은 사실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른바 발췌본이라는 걸로 저들이 무슨 장난을 시도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이 결국 그 말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그것은 싸구려 신문들이 제목 뽑을 때나 쓰는 어물쩍 과장 수법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여기에 끌어다 쓰는 것을 극락에 계신 성철 스님께서는 용서하시기 바란다.
 

‘정의사회 구현’이 떠올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외쳤던 구호. 그 ‘정의사회’의 마지막 실체이자 ‘29만원의 진실’이 현재 검찰에 의해 베일을 벗고 있다. 구호와 실체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청와대에 지하벙커를 만들고 야전점퍼를 즐겨 입던 이명박 정부는 바다에서, 육지에서 이리저리 얻어터지며 생때같은 젊은 목숨들을 희생시킨 치욕을 남겼다. 서해에서 북쪽 함정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히고도, 동쪽에서는 금강산 관광을 계속할 수 있었던 김대중 정부 시기가 겹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떠올랐다. 야간 모의 끝에 존스 씨를 몰아내고 농장 주인이 된 동물들. 몇 파인트씩 맥주를 마시고 벌겋게 취하던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 간부들. 인근의 인간 농장주들을 초대해 합의하고 파티 열고, 급기야 고래고래 욕지거리 퍼부으며 싸움을 벌이다가 돼지 얼굴과 사람 얼굴이 엇갈리는 장면. NLL 논쟁 중단하고 민생을 챙기자고? 두 문제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기에, 하나를 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중단한단 말인가. 특검 혹은 국정조사를 통해 NLL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국민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최소한의 예의다.

미상불 상황이 러시안 룰렛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다 보면, 혹은 윗사람 눈치만 살피다 보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인식의 혼란에 빠지기 쉽다. 러시안 룰렛을 하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혼동하는 이들이 보인다. 제발 정신들 차리고 먼 곳을 바라보자. 치고 빠지고, 일희일비하는 유치한 정치놀음에서 벗어나자.

(편집국장이 휴가 간 사이 발행인이 너무 구시렁거린 게 아닌가 싶어 독자 여러분께 송구하다. 심사가 어수선하고 마음이 초조해서 나온 이야기니 해량하시기를….)

기자명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