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를 막으려면 전쟁이 필요할까
  • 금정연 (서평가·<서서비행> 저자)
  • 호수 300
  • 승인 2013.06.1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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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 이론과 좀비>/대니얼 W. 드레즈너 지음/유지연 옮김/어젠다 펴냄
“세계 정치에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스러운 원인이 많다. 예를 들어 테러 공격, 치명적인 세계적 유행병, 자연재해, 기후변화, 금융공황, 핵 확산, 민족 분쟁, 국제 사이버 전쟁 등이 있다. 그러나 시대적 문화 사조를 살펴보면 기이한 문제 하나가 국제관계에서 가장 빠르게 걱정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맞다. 좀비 얘기다. 그게 아니면 뭐겠는가”(<국제정치 이론과 좀비> 15쪽).

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는가. 좀비와 함께 최근 10년간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을 사로잡았던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생각해보라. 외계인, 유령, 뱀파이어, 마법사, 마녀, 호빗…. 이들의 위협은 강력하지만 동시에 국지적이다. 한마디로, 운 나쁜 조연들과 죽도록 고생하는 주인공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란 말이다.

반면 좀비의 위협은 국경을 뛰어넘는다. 좀비는 인간을 공격하고, 그들에게 물린 인간은 누구든 반드시 좀비가 되기 때문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영화 <컨테이젼>에서 그렸듯, 주방장 한 명이 손을 안 씻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은 창궐할 수 있다. 좀비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를 멸절 직전으로 몰아넣는 데는 오직 한 구의 되살아난 시체로 충분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월가 점령 시위대가 좀비 퍼포먼스를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에 대한 대처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좀비 문제는 전통적으로 소설과 영화에 의해 다루어졌는데, 주로 소규모 지역사회나 가족 관계를 배경으로 좀비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한정되었다. 영화나 소설은 “한 나라의 중앙정부나 국제관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시체가 ‘어떤’ 식으로든 정책 대응을 야기할 거라는 게 논리적인 판단일 텐데도 말이다”(<국제정치 이론과 좀비> 34쪽).

하나의 ‘주의’보다 유연한 사고를

미국의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좀비 연구학회’ 선임연구원인 대니얼 W. 드레즈너는 국제관계학이야말로 좀비 폭동 대처법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빠져 있는 연결 고리라고 주장한다(이 책은 국제정치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좀비가 등장하는 가상의 이야기로 풀어낸 국제정치학 입문서다). 영화나 소설이 그리는 전통

적인 좀비 이야기는 금세 종말로 치닫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전까지 활발한 정책적 대응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좀비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책은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신보수주의 등 현존하는 국제정치 이론들을 검토함으로써 좀비라는 위협에 대응하는 각각의 이론이 어느 지점에서 유효하고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는지를 시뮬레이션한다. 말하자면 국제정치 이론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인 셈이다. 결론은 이렇다. 하나의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으니, 하나의 ‘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 너무 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누군가는 저자의 논의를 한가한 지적 유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비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심각한 위협이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은 심각한 테러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1%라도 있으면 극단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을 사랑하는 한국의 정책전문가들 또한 하루빨리 좀비 예방과 대처 매뉴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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