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홍대 마녀’ 그 무덤덤한 절실함
  •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300
  • 승인 2013.06.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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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격한 노래로 ‘홍대 마녀’라는 별명을 얻은 가수 오지은(사진)이 4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한층 성숙한 분위기로 불편하면서도 절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 화려한 세션들이 세 번째 이야기의 &
시간은 아날로그로 흐르지만 우리는 디지털로 인식한다. 그 흐름에 눈금을 긋고 1년마다, 10년마다 한숨을 내쉰다. 1981년생인 오지은이 30대의 자신을 인지한 건 지난해의 일이었다. “더 이상 오르막길이 없을 것 같았어요.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떨어지는 것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까지 쓰던 방식대로 곡을 쓸 수 없겠구나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소설가 김연수에게 털어놓았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햇병아리가 왜 그래?”

정신을 차렸다. 2007년의 1집, 2009년의 2집은 모두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노래한, 자전적인 앨범이었다. 그때 풀어놓은 이야기와 감정에 대한, 30대의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2집을 내놓은 뒤 조금씩 다음 앨범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프로듀서로서 ‘시와’의 데뷔 앨범과 프로젝트 밴드 ‘오지은과 늑대들’의 앨범도 내놓았다. 오지은과 늑대들을 내놓고 1년 뒤인 2011년 여름, 그이는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 헬싱키로. 가라앉은 데 가면 분위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시내를 걸으며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렀다. 캐럴 킹의 ‘이츠 투 레이트(It’s Too Late)’. “가사가 갑자기 너무 슬프게 들리더라고요.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어요. 그런데 정작 부르는 사람은 그 감정을 깨질 듯 표현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부르더라고요.”

그 경험은 다음 앨범의 실마리가 되었다. ‘홍대 여신’들이 판치는, 흡사 그리스 시대 올림푸스 같은 곳에서 오지은의 별명은 ‘홍대 마녀’였다. 지난 시간, 그이가 들려준 음악들 덕이었다. 가사는 독하고 감정은 격했다. 오지은의 세계에서 나긋한 창법과 예쁜 가사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이의 음악을 들었다. 데뷔 이후 쌓여온, 자기 얘기를 듣는 것 같다는 반응에 헬싱키에서의 경험이 더해져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오열하며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무덤덤하게 ‘헤어졌어. 그런 거지 뭐’가 전부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 몇 단어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겠어요? 그동안 감정의 진폭을 크게 만들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노멀라이징(normalizing)하려 했어요. 캐럴 킹의 표현 방식에 경외심을 갖게 된 거죠.” 굳이 감정을 싣지 않고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공감과 상상의 여지를 남기려 한 것이다.

4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이자 30대에 풀어낸 첫 앨범인 오지은의 <3>은 그래서 한결 듣기 편해졌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에 감정을 쏟아 부었던 1집, 풀 밴드 편성으로 긴장감을 끝까지 몰아붙인 2집에 비하면 확실히 성숙이라 할 수 있는 뭔가가 담겨 있다. 듣는 사람과의 타협이 아닌, 배려가 담겨 있다. 보컬 때문만은 아니다. 각각의 곡이 각각의 사운드를 갖는다. 그것은 장르의 문법보다는 노래들이 표현하는 정서, 그리고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스토리와 연출에 맞는 미장센들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장면들로 구성된 영화와 같다.

그런 사운드를 만들어낸 이들은 화려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세션이다. ‘낯선 사람들’ 출신인 고찬용,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로다운30의 윤병주, 디어클라우드의 김용린 등 올스타급 기타리스트들이 오지은의 요청을 받고 기꺼이 명연을 펼쳤다. 원펀치의 서영호, 프릴류드의 고희안이 건반에 손가락을 얹었다. 이상순이 편곡을 거들었고, 린·정인·나인 등 오지은의 친구이자 ‘보컬 귀신’들이 함께 마이크 앞에 섰다. 이이언, 스윗소로우의 성진환 역시 그이의 남자가 되어 같이 노래했다. “이 앨범 하나로 은퇴해도 될 만큼” ‘어벤저스급’의 화려한 출연진이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그들과의 작업 방식은 일종의 선문답 같았다. “고찬용씨에게는 어쿠스틱 기타가 찍은 점 위에 수채화를 칠한다는 느낌으로, ‘어느 날 깨닫다’를 신윤철씨에게 부탁하면서는 1970년대 가장 평범한 록 밴드 스타일에 30%의 그런지를 섞어달라 했고요. 윤병주씨에게는 도끼 한 자루를 풀 스윙으로 휘두르듯 연주해달라고 했어요.” 연주자 처지에서는 뒤통수를 잡을 만한 이야기지만, 과연 고수들이었다. 허튼 설명을 하지 않기 위해 점검한 뒤 발화된 공감각적 주문은 음악 그 자체가 되어 돌아왔다.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들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리라. 오지은의 가사가 명확한 영감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은에게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멜로디도 사운드도 아니다. 이야기다. “사운드는 거들 뿐이에요. 레스토랑으로 치면 조명이나 테이블 높이 같은 것들이죠. 핵심은 말하고 싶은 이야기에 있어요. 그래야 곡을 쓸 동력이 생기거든요. 멜로디가 먼저 있는 경우에도 어떤 감정을 떠올리며 그 멜로디를 만들고요.”

<3>의 많은 곡이 사랑 노래다. 세상 노래 대부분이 사랑 노래다. 하지만 굳이 사랑 노래가 아니어도 되는 노래들이다. 막 사랑에 빠졌을 때나, 막 이별을 겪었을 때 절실하게 와 닿을 뿐이다. 다른 일상의 순간에는 가사가 그저 소리로 들릴 뿐인 그런 노래들이다. 오지은의 사랑 노래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랑 노래가 사랑과 이별의 단층을 그릴 때, 그이는 그 단층과 단층 사이에 흙이 섞여 있는 지점을 헤집는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그리워하지만 굳이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그리움, 사랑과 이별이라는 단어로 규정될 수 없는 상태의 표현 불가능한 감정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흔히 만나기 힘든 그 이야기들은 오지은의 음악 세계를 관통해온 언어이자 감정이다. <3>에는 달달한 데이트, 푸념 섞인 수다 같은 노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노래는 역시 그 불편한, 그래서 절실히 와 닿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저라는 사람은 안정적인 연애를 해도 핵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겉은 신록이 우거지고 토끼가 뛰어놀아도 내부는 시베리아랄까요. 사람은 다 그런 게 있잖아요.”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그런 속내를 그이는 노래해왔다. 그럼에도 <3>이 한결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이번 앨범은 더 이상 자전적이라 할 수 없어요. 내 얘기와 남 얘기의 중간인, 화자가 나일 뿐인 소설 같은 거죠. 20대에 했던 생각들이 재료가 되어 30대의 내가 내린 결론이랄까요.” 1집과 2집 커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던 오지은은 <3>에서 눈을 감았다. 20대 중반 인터넷에 자작곡을 올리며 음악을 시작했던 한 뮤지션이 만들어온 트릴로지(3부작)의 완결 같다. 스스로를 리부트(Reboot)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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