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 마을 택배 일꾼이 되다
  • 송주민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 활동가)
  • 호수 298
  • 승인 2013.06.0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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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택배’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업이다. 이웃이 배송하니 주민들도 안심하고, 손수레를 사용하니 친환경적이다.
동네를 떠돌다 보면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은? 단연 어르신들이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동네에 남아 하릴없이 골목을 거닐거나 폐지를 줍는 분들. 현대사회에서 노동력이 떨어진 노인은 심하게 말하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당하기 일쑤고,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아무런 역할 없이 지내는 것만큼 좌절을 주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마을에서 가장 자주 보는 어르신들이, 마을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마리가 있다. 성북구 길음뉴타운에 가면 ‘마을 택배’ 문구가 붙여진 화물차가 매일 드나든다. 차가 단지에 도착하면 백발노인들이 물건을 넘겨받을 준비를 한다. 동네 어른들이자 마을 택배회사 ‘(주)살기좋은마을’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이다. ‘우리 마을 택배는 우리가’라는 구호를 내건 이 작은 회사에서, 어르신들은 이웃의 물건을 나르는 최일선 일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움직임에서 다양한 가치가 파생된다. 개별 택배사에서 각자 어지러이 배송할 때 나타나는 중복과 비효율 환경을 개선한 것은 기본이다. 마을 택배는 대형 택배사들로부터 물량을 전달받아, 마을 현지에서 직접 도보로 배달하는 형태로 일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송주민 제공</font></div>(주)살기좋은마을이 운영하는 마을 택배의 어르신 배달원들.
역시 가장 큰 의미는 어르신 일자리가 생긴 점이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의 카메라를 들고 동행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올해 79세인 이의엽 어르신의 말. “할 일 없고 쓸모없는 노인이 갈 곳이 있고 일자리가 생겨서 좋지. 건강에도 좋고. 아내를 위해 쓰라며 용돈도 챙겨주고.” 그는 배달 물품이 한가득 실린 손수레를 너끈히 끌며 말했다.

수익으로 임대 단지 도서관 지원 계획

고령자가 하는 일인 만큼 업무 강도는 낮은 편이다. 대신, 여러 명이 일감을 나누어 돌아가면서 일한다. 현재 총 16명 어르신들이 하루에 2~4시간, 주 4일 일하며 30만~4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오범석 살기좋은마을 상임이사는 “향후 경영이 안정되면 50만원까지는 드리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안심할 수 있다. 주민 조금옥씨는 “(신원이 확실한 이웃이 배송하니) 집에 없더라도 아이들한테 ‘할아버지 오시면 받아놓아라’ 하며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친환경 사업’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종전에는 개별 용달차들이 수없이 오가며 매연을 뿜곤 했다. 그러나 마을 택배는 손수레만을 활용해 도보로 배송이 이뤄진다. 어르신들은 출퇴근은 물론 일을 하면서도 차 한번 타지 않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살기좋은마을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회사(작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지정)다. 수익 발생 시, 마을의 가장 낮은 곳으로 환원된다. 장차 사업이 안정되면 임대 단지의 작은도서관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장밋빛처럼 소개했지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오범석 상임이사는 “기존 시장에서 그것만 하는 사람들도 나가떨어지는 냉혹한 상황이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항상 고뇌한다”라고 말했다. 더디 가더라도 의미 있게 일하려는 회사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이 만들어가는 택배 시스템이 잘 정착된 마을을 상상해본다. 배회하던 노인들이 적정 노동을 하면서 용돈을 벌고, 그들이 만든 수익은 마을의 어려운 이웃에게 환원되는 구조. 참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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